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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우 Jan 30. 2024

욕망의 합작품... '아파트'에 나타난 기묘한 현상

지난 21일(목) 서울시는 서울시청에서 '공동주택 명칭 개선 3차 토론회'를 열었다. 아파트명이 지나치게 길어지고 외국어가 많이 사용되면서 발생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토론회였다. 대표적인 사례로 '압구정 2구역' 재건축 설계안이 있다. 옥상정원 이름이 프랑스어로 지어지면서 온라인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궜다.


이번 토론회에서 서울시는 다섯 가지 가이드라인을 권고했다. 어려운 외국어 사용 자제하기, 고유지명 활용하기, 애칭(펫네임) 사용 자제하기, 최대 10자 적정 글자 수 지키기, 조사를 기반으로 한 다수가 선호하는 이름 제정하기 등을 권고했다.


아파트 명칭이 처음부터 길었던 건 아니다. 아파트가 지어지던 초반부에는 지역명이나 브랜드명 정도만 사용하는 정도였다. 얼마 전 동네 주변을 걷다가 우연히 '돈암아파트'를 발견했다. 돈암아파트는 1960년대에 지어진 3층짜리 아파트다. 이외에도 마포아파트, 반포아파트, 여의도시범아파트 등이 이 시기에 지어졌다. 아파트 이름에 지역명을 활용한 사례다.


이후로 1980-90년대에 준공된 아파트는 자연환경 등에서 유래한 순우리말로 이름을 지어졌다. 1기 신도시 개발로 지어진 아파트다. 대전광역시 둔산동 일대에 있는 아파트들이 대표적인 사례다. 샘머리아파트, 가람아파트, 햇님아파트, 청솔아파트, 보라아파트, 진달래아파트, 누리아파트 등 순우리말 이름의 아파트가 여전히 남아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아파트 이름은 길어졌다. 지역명, 건설사 이름, 브랜드명, 펫네임(상품의 특정 브랜드 앞이나 뒤에 붙는 이름) 등이 이름에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길이만 길어진 게 아니라 순우리말 사용 빈도도 함께 줄어들었다. 영어, 스페인어, 프랑스어까지 다양한 외국어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아파트 이름이 자꾸 길어지는 이 기묘한 현상은 어떤 관점으로 바라봐야 할까? 영어에 익숙한 젊은이들마저 익숙지 않은 아파트 이름은 외국어에 익숙지 않은 어린이나 노인에게 혼란을 가중시킬 뿐이다. 외국어 사용은 지양하고 순우리말 사용을 지향해야 한다. 


반면 시대의 흐름을 역행한 아파트 건설사도 있다. 바로 부영 그룹이다. 부영은 2006년부터 ‘사랑으로’라는 아파트 브랜드명을 쓰고 있다. 부영 아파트는 건설사명, 브랜드명, 지역명 정도로 보통 열 글자를 넘지 않고 대부분 순우리말로 쓰여 있다. 아파트 이름만 보고 따져보면 모범이 되는 사례로 볼 수 있다. 


세종시 사례도 주목할만하다. 세종시는 한글도시를 표방한다. 초기에 지어진 아파트는 'OO마을'과 같은 순우리말 이름으로 지어졌다.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외국어가 섞인 이름의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하긴 했지만 순우리말을 쓰는 좋은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서울시에서 공동주택 명칭과 관련하여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건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가이드라인은 권고안에 불과하다. 의무사항이 아니므로 법적 제재의 대상이 아니다. 그렇다고 아파트 명칭을 법적 제재의 대상으로 규정하는 것도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왜 우리는 아파트의 길어진 명칭을 문제 삼았는가. 아파트 이름을 쉽게 알아차리기 어려웠기 때문일까. 이전 글(https://omn.kr/24yqa)에서도 언급했듯, 아파트는 주거보다는 상품 혹은 자산으로서 기능과 목적이 커져갔다. 이와 더불어 아파트 명칭도 길어진 것이다. 그렇다. 진짜 문제는 단순히 '명칭'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품화된 아파트'에 있는 것이다.


이름이 길어지는 건 아파트의 개성을 드러냄으로써 자산 가치를 조금 더 높이기 위함으로 보인다. 도시 발전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욕망의 합작품일지도 모르겠다. 건설사 이름과 브랜드명에는 건설사의 욕망이, 브랜드명과 펫네임에는 입주민의 욕망이 담겨있다. 


안양 평촌 신도시에 간 적이 있다. 평촌자이아이파크아파트는 안양역으로부터 1km 떨어졌고, 평촌역과는 4km 떨어져 있다. 평촌 지역과는 꽤 거리가 있는 곳에 위치해 있다. 아마도 '평촌'이 갖는 지역 프리미엄 때문에 안양자이아이파크가 아니라 평촌자이아이파크아파트가 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사례는 여러 지역 곳곳에서 관찰할 수 있다.


서울시에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고 하더라도 아파트가 지닌 부동산으로서 본질적인 문제는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가이드라인이 소용없다는 뜻은 아니다. 가이드라인은 앞으로의 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깃발과 같은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명칭에 공을 들이는 만큼 주거의 공공성을 주제로 서울시와 건설사가 의미 있는 논의를 지속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마이뉴스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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