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 에피소드, 플렉시테리언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은 무엇이든 그러하지 않을까. 스스로 쌓은 벽돌을 몇 개 걷어내 보니 전보다는 담벼락을 넘나드는 게 한결 쉽다. 비인간동물을 생각하면 불의한 타협일지 모르겠지만 별다른 수가 없다. 간혹 실제로는 비건을 처음 만난다는 이들을 만난다. 비건을 향한 부정적인 인식과 오해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비건과 논비건은 더 자주 식탁 위에서 만날 필요가 있다. 이 불편한 밥상의 시간들이 어쩌면 더디더라도 이해와 존중으로 내딛는 발판이 되어줄 거라 믿는다.
회사에 입사한 지는 1년 5개월이 되었다. 출근일의 절반 정도는 도시락을 쌌다. 먹고 싶은 비건 식단으로 준비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현미밥으로 영양을 가득 채운 밥과 입맛에 맞도록 조리한 두부 요리나 대체육 요리를 먹을 수 있다.
하지만 퇴근 후 복싱도 하고 TV도 보다 보면 도시락 싸기가 귀찮아질 때가 있다. 그럴 때 다음날 점심은 외식을 한다. 서울 망원동, 이태원, 대학가나 부산 광안리와 같은 도심지에는 비건 전문음식점이나 비건 옵션이 제공되는 식당이 꽤 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 회사는 그 동네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절대 회사 탓을 하는 게 아니다.
비건 지향인의 직장생활 생존법
비건의 사회생활은 실로 어렵다. 사회(社會)라는 것이 무엇인가. 한자어의 뜻대로 모이고 모이는 것 아닌가. 비건인 필자에게는 음식이 사람 사이에 쌓인 벽돌 같았다. 벽돌로 높게 쌓아 올린 논비건 사람들과의 담을 조금은 허물어야 했다. 그 높은 벽돌담을 넘으려면 나도, 논비건인 상대도 힘겨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비건의 사회생활은 삼박자가 맞아야만 한다. 비건 당사자의 유연함, 회사 동료의 배려 그리고 인근 채식식당 환경. 안타깝게도 회사 동료와 인근 채식식당은 주어진, 그리고 변하지 않는 상수다. 선택할 수도 없고 내 의지대로 변화시키기도 어려운 영역이다.
비건 지향 식단의 유연성을 늘리는 것이 성공적인 '비건 사회생활'의 방법이다. 척박한 대한민국에서 나름 오랜 시간 동안 비건 지향인으로서 살다 보니 나만의 기준이 생겼다. 외식할 때면 고무줄처럼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늘어난다. 낮에는 플렉시테리언이 되었다가 밤에 집으로 돌아오면 비건이 된다. 어느새 채식계의 회색분자가 되었다.
비건 지향인 필자가 외식할 때 논비건 음식을 허용하는 기준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버릴 바에 먹는다. 음식물 쓰레기로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긴 단순한 기준이다.
다만, 덩어리 진 고기는 절대 먹지 않는다. 이 게 두 번째 기준이다. 가치관에 따른 선택이라기보다는 학습된 본능에 가깝다. 시각과 후각이 거부한다. 이제 내 눈에 '고기'는 '살점'으로 보이고 내 코를 자극했던 향은 역한 냄새로 받아들여진다. 더 이상 먹을 수 '없는' 몸으로 변화했다.
예를 들면 해물짬뽕을 먹으면 모든 살점을 빼내고 식사한다. 덩어리 고기를 먹지 않는 ‘비덩주의‘라는 신조어가 생겼는데 고무줄 채식의 마지노선이 비덩주의다.
셋째, 우유나 치즈, 계란이 들어간 요리는 먹지 않는다. 우유, 치즈, 계란을 먹지 못하는 이유는 심리적인 거부감이 크다. 뇌리에 박힌 소, 닭의 고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넷째, 동물성 육수로 조리된 음식을 먹더라도 사골국, 순댓국, 찜요리 등은 절대 먹지 못한다. 냄새가 역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러한 반응은 심리적인 거부감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오랜 기간 먹지 않은 식습관 때문에 몸이 변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거부감은 스스로도 신비하게 느껴진다.
어느덧 채식 6년 차다. 페스코 베지테리언으로 시작했고 비건을 거쳐 지금은 비건 지향 플렉시테리언이다. 페스코 베지테리언은 육류와 가금류는 먹지 않는다. 비건은 모든 동물성 식품을 먹지 않는다. 비건을 지향하기로 결심하고 2년이 넘게 엄격하게 비건 식단을 지켜왔다. 나라고 논비건 음식을 먹고 싶겠는가. 회색분자가 되고 싶었겠는가.
K-비건이 일반식당에 갈 때 준비해야 할 말
국내 채식 환경은 매우 열악하다. 채식할 수 있는 식당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채식 옵션조차도 표기되지 않는 현실에서 플렉시테리언이 최선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두드리면 열린다고 하지 않았는가. 대체로 한국에서 어느 지역에 가든 비건이 먹을 수 있는 비밀의 메뉴가 있긴 하다.
바로 비빔밥과 김밥이 'K-비건'이다. 다만 일련의 확인 절차가 필요하다. 비빔밥에는 계란이나 다진 고기가 들어가는지 확인하고 빼달라고 요청해야 한다. 여기서 방심해서는 안된다. 마지막으로 고추장에 다진 고기가 들어가는지 확인한 후 주문한다.
김밥은 꽤 난도가 높다. 마법 주문을 외워야 한다. "햄, 계란, 맛살, 어묵이 들어가나요?"라고 묻고 빼달라고 요청한다. 이 외에도 필자는 된장찌개나 순두부찌개를 먹기도 한다. 멸치육수와 같은 동물성 재료가 들어가지만 여기까지는 허용한다.
경험상 빼달라고 요청하면 대다수 음식점 사장님들은 의심하는 눈초리로 날 쳐다본다. 쳐다보기만 하면 선방이다. 비건 지향인의 삶은 그리 평탄치 않다. 한번 더 되묻는 이도 있고 "왜 고기를 먹지 않냐"라며 "고기를 먹어야 건강하지!"라는 영양박사님들의 따뜻한 충고(?)와 걱정을 듣기도 한다. 이만하면 다행이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거절하는 음식점도 있다. 매뉴얼화된 음식점 시스템에서 어떤 식재료를 빼는 주문은 성가신 일일 테니까. 바쁘다 바쁜, 그래서 차가운 현대사회.
다행히도 1년 넘게 다닌 한 식당 사장님은 이제 말하지 않아도 안다. 정이 쌓였나 보다. 한 번은 순두부찌개에 계란만 빼달라고 요청드렸는데 바지락도 빼주셨다. 내가 단골손님이라는 사실을 나와 사장님 모두가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어느 날엔 "해물도 안 드시죠?" 하시더니 가쓰오부시 국물 대신 동치미 국물을 주셨다. 겉으로는 무뚝뚝해 보였던 분이 자주 방문하는 손님의 식성을 기억하고 섬세하게 신경 쓰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순간을 일일이 다 나열할 수 없지만 비건을 지향하면서 예기치 못하게 따뜻한 인정을 느낄 때가 간혹 있다.
첫 회식 장소는 비건 음식점이었다
사람들의 따뜻함은 단골식당에서만 느꼈던 게 아니다. 매일 보는 회사 선배들의 배려심은 더욱 감동적이다. 내가 출근하고 처음 회식을 했던 장소는 근처 비건 전문음식점이었다. 놀랍지 않은가. 비건 신입사원을 위한 고민이 묻어난 결정이다. 배려의 마음씨가 존경스럽고 앞으로 업무 외적으로도 배울 게 많은 선배들이라고 생각했다.
회사 동료를 잘 만난 건 큰 행운이고 복이다. 이후로도 늘 배려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음식점만으로 따지자면 내가 다니는 회사 주변 채식 환경은 열악하다. 하지만 팀 식사 장소나 회식 장소를 알아볼 때면 늘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는지도 함께 알아봐 주거나 내게 묻곤 한다. 업무 특성상 다른 지역으로 출장을 갈 때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현우가 먹을 수 있는 메뉴도 있다"
"(이 식당에) 현우 씨도 먹을 수 있는 게 있나요?"
한 번은 회사 워크숍에 갔을 때였다. 워크숍을 준비하는 동료가 내가 먹을 수 있는 비건 식품을 묻고, 장을 볼 때 함께 구매해 주었다. 워크숍 저녁 시간에 비건 음식을 요리해 준 선배도 있다.
팀원을 위해 도시락을 싸왔던 선배도 있는데 내 도시락만 비건 식단으로 따로 싸주신 적도 있다. 회사 동료들과 선배들의 배려를 다 쓰려면 끝도 없을 것이다. 감사일기로 썼다면 벌써 한 권은 되었을 터. 자연스레 나는 옆 동료를 얼마나 배려해 왔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한편 선배들의 선택의 폭을 줄이는 건 아닌지 미안한 마음도 든다. 하지만 미안함보다는 고마움을 가지고 또 다른 모양의 배려로 보답할 것을 스스로 다짐해 본다.
완벽한 비건 식단은 아니지만 나름 따뜻한 사회생활을 누리고 있다. 해를 거듭하며 다양한 상황을 맞닥뜨리고 대처하면서 터득한 유연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팀원을 비롯해 식당 사장님의 배려가 아니었더라면 유지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은 무엇이든 그러하지 않을까. 스스로 쌓은 벽돌을 몇 개 걷어내 보니 전보다는 담벼락을 넘나드는 게 한결 쉽다. 비인간동물을 생각하면 불의한 타협일지 모르겠지만 별다른 수가 없다. 간혹 실제로는 비건을 처음 만난다는 이들을 만난다. 비건을 향한 부정적인 인식과 오해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비건과 논비건은 더 자주 식탁 위에서 만날 필요가 있다. 이 불편한 밥상의 시간들이 어쩌면 더디더라도 이해와 존중으로 내딛는 발판이 되어줄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