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이맘때 충북 영동에서 볼 수 진풍경

감나무 가로수길이 아름다운 숲 대상을 받은 비결은?

by 현우

추석 명절에 고향인 전북 무주에 다녀왔다. 엄마가 장을 볼 겸 영동에 가보자고 제안했다. 충북 영동은 무주에서 자동차로 약 20분 거리에 있다. 영동군은 인구 5만 명이 되지 않는 지역이다. 시장이 크진 않아서 이것저것 구경하면서 특산품인 포도도 사고 식재료도 샀지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IMG_3442.JPG 울창한 소나무숲 풍경의 송호관광지


그대로 집으로 돌아가는 게 아쉬워서 울창한 소나무 숲길로 유명한 송호유원지에 가보기로 했다. 운전하며 송호유원지로 가는 길에 신기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영동군 내 가로수는 거의 감나무였다. 감나무 가로수길이라니. 내가 알고 있는 가로수는 벚나무, 은행나무, 느티나무 정도다. 도시를 둘러보다 보면 일반적으로 보이는 나무들이다. 간혹 플라타너스 나무 가로수길이 있는데 흔치 않다.


이날 송호유원지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학산면과 양강면을 지나쳤다. 영동읍내뿐만 아니라 영동군에 속한 학산면과 양강면 일대 가로수도 감나무였다. 주렁주렁 열린 주황색, 노란색 빛깔의 감 열매와 초록빛깔의 감나무잎이 완연한 가을을 알리는 듯했다. 가을이 되니 영동은 완전히 감나라가 되었다.


아름다운 숲 대상을 수상한 영동의 '감나무 가로수길'


가로수는 도로구역 안 또는 그 주변 지역에 심는 수목을 뜻한다. 자연적으로 번식한 나무가 아니다. 법률과 계획에 따라 식재되는 나무다. 가로수 계획 및 관리는 도시계획과 도시설계 영역, 엄밀히 말하면 조경에 해당한다. 그렇게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와 농산어촌의 구성요소가 된다.


영동군 가로수길은 2000년에 열린 제1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대상(생명상)을 수상할 정도로 인정받은 아름다운 명소다. 감나무 가로수가 심어진 지는 꽤 오래되었다. 영동군은 1975년 읍내 시가지 30여 km 구간에 2800여 그루를 처음 심었다. 감나무를 심은지 벌써 50년이나 흘렀다.


IMG_3448.JPG 영동읍내 감나무 가로수길


이후로도 추가적으로 예산을 들여 읍내뿐만 아니라 군내 지역에 감나무를 심어왔다. 2040년 영동군기본계획에도 영동의 이미지를 나타낼 수 있는 감나무 가로수를 확대하여 식재할 계획을 수립했다.


감나무 관리 주체는 누구일까? 영동군과 군민이 함께 관리하고 있다. 영동군은 2004년 가로수 조례를 제정했고 2023년 도시숲 조례를 새롭게 제정하면서 가로수에 관한 관리에 신경을 쓰고 있다. 읍내 상가나 집 앞은 상인 또는 주민들이 관리하고 있다. 이맘때면 나뭇잎이나 감 열매가 떨어지면 청소할 일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또한 농촌마을 가로수는 마을회나 노인회 등이 대리 관리하면서 수확한다고 한다.


지난 15일 영동군은 2만 2천 그루 감나무에서 감을 수확해 이웃과 나눴다고 밝혔다. 종종 감이 열릴 때면 감 따기 행사를 군 주도로 열고 있고 열린 감은 군민들 사이에서 나눈다고 한다.


지자체가 주도하지만 군민들이 함께 관리하는, 일종의 '커먼즈'로 볼 수 있다. 커먼즈는 여러 말로 번역되지만, 이 글에서는 공유 자원으로 번역하는 게 편하다. 커먼즈의 핵심은 함께 관리하고 운영하고 생산한다는 점(참고 기사: https://omn.kr/243e7)이다.


다만 커먼즈 관리가 늘 수월하지 않듯 영동 감나무 가로수 관리도 만만치 않다. 영동 감나무 커먼즈의 비극이라고 해야 할까. 사실 오래전부터 영동군에서는 감을 몰래 따 가는 사건이 여러 번 발생했다. 화물차까지 동원하여 가로수 감을 따다가 절도 혐의로 입건된 사례도 있다.


영동군에서 감 절도를 막기 위해 단속반을 편성할 정도로 문제가 되기도 했다. 인적이 드문 지역은 시가지처럼 자연스럽게 감시되지 않기 때문이다. 성숙한 시민 의식 또한 필요한 부분이다.


영동군 감나무 가로수를 관찰하고 관련 정보를 찾아보면서 가로수가 아름다운 도시의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영동 하면 포도만 떠올랐었는데, 이제는 영동을 감나라로 기억할 것 같다. 자료를 찾다 보니 과일나무를 가로수로 사용한 게 영동군뿐만이 아니다. 제주도는 귤나무, 충주는 사과나무가 가로수다. 스페인을 비롯한 서유럽 남부 도시에서는 오렌지나무를 가로수로 사용한다고 한다.


잘 가꾼 가로수길도 도시의 매력이 된다


도로는 시민과 자동차가 통행하는 길로서 도시의 혈관과 같은 존재다. 가로수는 매연과 산업 현장에서 뿜어내는 공기를 정화하기도 하고 도시 경관을 아름답게 하는 요소다. 그런데 과일나무는 과일까지 수확할 수 있으니 모범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특히 영동군처럼 지역민이 함께 감을 관리하고 나누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이뿐만이 아니다. 도시에 함께 사는 새들의 먹이가 되기도 한다.


더 나아가 잘 가꾼 감나무 가로수길은 교육 자원이자 관광 자원이 될 수 있다. 지방소멸 위기에 외부 지역민을 초대하여 감나무길을 산책하며 감을 따는 체험 행사를 포함한 관광 코스를 만들어도 좋지 않을까? 특히 어린이가 있는 가족에게는 인기 만점일 것 같다. 농장 체험 프로그램이 아닌 도심지에 있는 가로수에서 감을 따는 체험은 진귀한 경험이 되지 않을까? 자연스럽게 도시를 소중히 여기고 시민 의식을 증진시키는 교육이 될 것이다.


IMG_3449.JPG 가로수에 주렁주렁 열린 감


필자가 영동의 감나무를 가로수의 모범 사례로 주목한 이유는 1975년부터 감나무를 지속적으로 심고 관리하는 방안도 변화해 왔기 때문이다. 오래 거주했던 주민들은 감나무와 관련된 추억 하나쯤은 가지고 있지 않을까. 이렇게 오래된 가로수는 자연스럽게 시간이 베어 장소성을 형성하고 지역 애착심을 갖게 하는 데도 효과적일 것이다. 가로수와 같은 도시 인프라를 활용하여 도시 이미지를 만드는 일은 절대 짧은 시간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부디 '튀는 도시'(정석의 <튀는 도시보다 참한 도시가 좋다>의 책 제목을 인용)가 되기 위해, 기존 가로수를 모조리 뽑아버리고 새로운 종의 가로수를 심는 실수는 범하지 않길 바란다. 영동군 사례가 보여주지 않는가. 감나무라는 과일나무의 특성도 중요하지만 반드시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가로수가 아름다운 길은 명소가 된다. 가을날 나들이 장소를 찾는 이가 있다면 영동에 들러보길 권한다. 혹시 가로수길을 걷게 된다면 휴대폰을 바라보고 걸어서는 안 된다. 떨어진 감을 밟지 않도록, 그리고 머리에서 떨어질 수도 있는 감을 주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자동차를 가지고 간다면 근처에 무주와 진안도 방문해 보면 좋을 것이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으로 선정된 바 있는 '무주 나제통문 길'과 높은 가로수가 매력적인 '진안 부리면 메타세콰이아길'도 한번 보면 잊히지 않기 때문이다. 인근 주차장에 주차하고 여유롭게 산책로를 걸으며 가을 정취를 느껴보길 권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프로산책러가 추천하는 '섬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