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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ppy Flight Jun 04. 2020

# 승무원과 '입양아 승객'

- 아기야, 나중에 꼭 찾아줘 -

사진 출처 : 구글 검색


미국 댈러스 행 비행기 안. 한 아기가 큰 소리로 울고 있다. 주변 승객들은 식사 후 한창 주무시고 계신데, 아기 울음소리에 몸을 뒤척이는 분들도 계신다. 주변 승객들을 위해서 그리고 아기를 위해서라도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겠다.


아기 좌석으로 가보니 한국인 아기인데 돌보는 사람은 미국인이다. 혹시나 싶어 물어보니 역시나 보모란다. 아기는 미국으로 입양되어 가는 중이고 댈러스 양부모님께 데려다주는 일이 자기 임무란다. 그래서 그런지 우는 아기를 적극적으로 돌봐주지 않는다.


양해를 구하고 내가 아기를 안았다. 친부모 곁을 떠나 좁은 비행기 안에서 낯선 이의 품에 안겨 가는 아기도 가슴에 무언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미국 보모에게 통하지 않았나 보다. 아기의 울음소리에는 어떤 서글픔 같은 것이 담겨 있었다.


아기를 안고 승무원들이 근무하는 갤리에 데려오니 아기는 금세 눈물을 그치고, 갤리가 신기한지 눈을 여기저기 돌린다. 아기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아기한테 갤리 구경을 시켜주기로 했다.


“여기는 냉장고야. 냉장고 안에는 승객들이 마시는 음료가 가득하지. 오렌지 주스 좋아해? 한잔 줄까? 근데 안되지. 지금은 우유를 마셔야 돼. 좀 더 크면 주스 많이 줄게.”


“이 부스럭거리는 빨강 봉지 안에는 땅콩이 들어있어. 땅콩은 맛이 고소하지. 땅콩 하나 줄까? 안되지. 지금은 이유식을 먹어야 돼. 땅콩은 나중에 크면 줄게.”


“이 기계는 커피를 만든단다. 커피 좋아해? 안되지. 커피 마시면 잠을 못 자고, 잠을 못 자면 키가 안 크지. 나중에 어른 되면 커피 만들어 줄게.”


아기랑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다. 아기도 한국말이 편하게 들리는지, 갤리가 신기한지 더 이상 울지 않는다. 동료 승무원들도 아기를 안고 싶어 한다. 아기를 두 명이나 키운 엄마 승무원이 능숙한 솜씨로 아기를 안아 가슴에 품으니 아기는 금세 잠이 든다. 아기를 보모 좌석 앞에 설치된 아기 침대에 눕히니 편안한 모습으로 새근새근 잠을 잔다.


댈러스 도착 후 제일 먼저 입국 심사를 받고 밖으로 나갔다. 저 멀리 한 무리의 사람들이 그 아기 주변에 몰려있다. 아기와의 첫 만남을 기념하기 위하여 양부모 일가친척이 다 모인 것 같다. 다들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아기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데 그들 사이에 내가 끼어들었다.


“나는 13시간 동안 아기의 비행기 아빠(Flight Dad)였습니다. 아기를 잘 키워주시기 바랍니다. 아기가 나중에 커서 대한항공을 타게 된다면, 그리고 그때까지 제가 비행을 하고 있다면 아기에게 저를 찾아 달라고 해주세요. 아기가 꼭 훌륭한 사람으로 자라길 바랍니다.”


가족들과 아기와 마지막 기념 촬영을 한 후 아기 볼에 살짝 뽀뽀를 하고 아쉬운 작별을 하는데 낯선 양부모 품에 안겨 울고 있는 아기 모습에 내 눈가에도 살짝 안개가 드리워진다.


“아가야, 양부모님 말씀 잘 듣고, 건강하게 잘 크거라. 그리고 나중에 커서 꼭 비행기 아빠(?) 찾아줘.”




* 17년비행을 하면서 비행기에서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중에는 후보 시절의 문재인 대통령 (내가 '다음에는 대통령 되시는 겁니다'고 말했다), 영화배우 전지현 (빛이 났다), 가수 성시경 (나보고 '느끼하게 생기셨네요' 이런 농담을 하시다니!), 심지어 내 블로그 독자도 있었다.


그중에 가장, 가~ 장 기억나는 사람을 한 명 뽑으라고 하면 이 글의 '아기 승객'을 꼽을 것이다. 그만큼 이 아기 승객을 만났을 때 안쓰럽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나뿐만 아니라 주변 승객들도 아기의 입양을 가슴 아파했다.


그렇지만 그건 나의 '오만과 편견' 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기 승객은 좋은 엄마 아빠를 만나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 것 같다. 입국 장에는 아기 승객의 도착을 환영하기 위해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아빠, 그리고 (이복) 형제들이 나와 있었다. 감탄의 눈빛으로 새 식구를 바라보던 그들의 표정이 눈에 선하다.


아기 승객을 만난 지 14년쯤 지났다. 처음 미국에 도착했을 때 가족들이 촬영한 비디오를 본다면 비행기 아빠에 대해 궁금해할 것 같다. 지금쯤 그는 15살 혹은 16살의 늠름한 청년으로 자라 있겠지. 한국말은 다 잊어 버렸겠지? 나중에 자기의 뿌리가 궁금하면 한국을 찾아오겠지? 그때, 비행기 아빠도 찾을까? 생각만 해도 입가에 미소가 그려진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는 승무원. 비행기에서 내리면 서로 잊혀지지만 이 아기 승객은 절대 잊혀지지 않을, 작지만 지구만큼 큰 여운을 내게 남겨주었다. Hello baby, Hope we meet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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