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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ppy Flight Jun 15. 2020

# 승무원과 "꿈"

- 10년 전 비행 일기 -

https://pixabay.com/ko/illustrations/



2009년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해마다 이맘때면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고 새롭게 다가오는 시간들을 계획한다. 지난 한 해 동안 부족했던 것은 없는지, 소홀하게 대했던 사람들은 없는지 반성하고 새해에는 부족한 것을 채우고, 주변 사람들에게 좀 더 따뜻하게 다가가는 사람이 되자 마음을 먹는다. 물론 그 결심들은 작심삼일로 끝나기도 하지만 말이다.


연말이 되니 여기저기서 모임 소식이 들린다. 엊그제는 입사동기들로부터 10주년 기념모임을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입사한 지 벌써 10년이 지났다니 시간이 정말 빨리 지나간 것 같다. 여전히 나는 입사 때의 열정과 패기를 간직한 신입사원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는데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해 주지 않는 것 같아 왠지 씁쓸하기도 하다.


10주년 기념모임 연락을 받고 나니 문득 입사 교육을 받을 당시 추억이 떠올랐다. 그해 겨울 우리는 회사 연수원에서 교육을 받고 있었다. 그때 잠깐 휴식을 이용하여 동기 두 명과 캔커피를 마시던 중 내가 엉뚱한 제안을 했다. 캔커피를 다 마신 후 빈 깡통에 10년 뒤 꿈을 담은 종이를 넣어 연수원 소나무 아래에 묻어 두고 1년에 한 번씩 이곳을 찾아 우리들의 꿈을 되새기고, 우리들의 꿈이 잘 자라는지 확인하자는 제안이었다.


무엇인가 목표가 필요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지쳐가는 직장인은 되고 싶지 않았다. 가슴속 꿈을 간직하고, 꿈을 향해 나아가는, 열정을 간직한 칼(KAL)맨이 되고 싶었다. 우리는 커피를 다 마신 뒤 종이에 각자의 10년 뒤 꿈을 적었다. 커피캔에 우리의 꿈을 담아 땅에 묻고 굳게 다짐했다. 우리들의 꿈을 잊지 않겠다고, 꿈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이다. 아직도 그 기억이 생생한데 벌써 10년이 지나다니 세월 참 빠르다.


그 동기 중 한 명은 회사를 그만두었다. 나머지 한 명은 현재 중국 상하이(上海) 지점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승무원으로 비행을 하고 있다. 사실 내가 커피캔 속에 적었던 10년 뒤 꿈 리스트에는 승무원이 없었다. 나는 지금 10년 전 내 꿈과 다른 길을 가고 있는 셈이다.


사람들이 모두 각자의 꿈을 이루었다면 아마 모두가 대통령이 되어 있지 않을까?


나는 비록 입사초 꿈꾸던 길과 다른 길을 가고 있고, 이제는 그 길로 돌아갈 수 없지만,그렇다고 후회스럽거나 아쉬운 것은 없다. 


몸 건강하게, 안전하게, 만나는 사람들에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따뜻한 미소를 간직한 승무원이 되기 등.. 나는 여전히 그 당시 뜨거웠던 가슴으로 새로운 꿈을 꾸고있기 때문이다.

 



* 2009년, 비행 일기에 적었던 글이다. 저 글을 쓰고 10년이 지났다. 올해가 입사 20년 차다. 일기를 쓸 당시 10년 뒤 꿈은 '몸 건강하게, 비행 안전하게, 만나는 사람들에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따뜻한 미소를 간직한 승무원이 되는 것'이었는데, 지금 나는 그렇게 살고 있는가?


* 몸은 크게 건강하지는 않으나 아픈데 없으니 나름 양호한 것 같다. 단, 저 글을 쓸 때보다 체중이 거의 10kg 불었다. 결혼 후 몸과 마음이 평온하다 보니 살이 쪘나 보다. 아내의 맛있는 음식도 한 몫했다. 승무원은 몸이 재산인 직업이다. 틈틈이 등산하고, 운동하며 건강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생활하고 있다.


* '안전한 비행'측면에서는 지금까지 딱 한번 아쉬운 일이 있다. 언젠가 이 곳에 그 얘기를 풀어놓을 수 있으면 좋겠다. 아무튼 안전한 비행은 예외를 허락하지 않는다. 비행 안전은 '모 아니면 도' 99% 안전한 것은 전혀 안전한 것이 아니니 항상 100%를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 '만나는 사람들에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따뜻한 미소를 간직한 승무원'측면에서는 반성이 많이 된다. 따뜻한 미소는 진심에서 우러나오기 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나오는 것 같다. 그만큼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것인가? 반성해 본다. 그래도 나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10년 전 일기가 있어 다행이다. 그때의 일기를 읽으며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아 본다.


* 코로나라 쭈욱 쉬고 있는 요즘, 비행과 동료들, 승객들이 그립다. 다시 비행을 시작한다면 진짜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따뜻한 미소를 간직한 승무원'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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