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황작물 Jan 21. 2024

애 안 낳으면 천만 원? 도대체 언제까지 이럴 건가요?

'인구부양의무세' 내건 예비후보, 저출생 원인도 모른 채 돈으로 해결하려

마흔을 훌쩍 넘긴 우리 부부는 요즘 부쩍 노화를 실감한다. 노화의 속도와 양상은 개별적이라 남편이 먼저 맞이한 것은 노안이다. 가까운 것을 볼 때는 안경을 이마 위로 쓱 올리니 어린 내가 이해할 수 없던 엄마의 모습 그대로다. 보기 위해 안경을 벗다니 말이다. 


나 역시 다르지 않다. 얼리어답터까지는 아니지만 신문물을 그럭저럭 잘 받아들이는 편이었는데 키오스크 앞에서 뒷걸음질 치게 될 줄이야. 나를 골탕 먹이기 위해 나온 기기가 아님을 상기하며 애써 침착하게 해보려고 했지만 뒤통수가 따가워 포기하고 말았다. 카운터에서도 주문을 받아주니 다행이지, 무인매장이었다면 뒷머리만 긁적이다 돌아올 뻔했지 뭔가. 


이 이야기를 하니 친구들이 어처구니없어하며 말한다. 요즘엔 애플리케이션으로 다 주문하는데 뭣하러 키오스크를 이용하냐고. 그러고 보니 키오스크는 쳐다보지도 않고 테이블로 직행하는 이들도 많이 보았다. 그중 태반은 자리에 앉아서 편하게 주문했으리라. 자주 가는 곳이었다면 나도 그 축에 끼었을 텐데 어쩌다 한 번 가는 곳이라 어리숙함을 드러냈다. 


내가 이럴진대 부모님은 오죽할까. 컴퓨터와 스마트폰 사용법을 알려드리느라 때때로 애를 먹기도 한다. 나에게는 너무도 간단한 것을 묻고 또 물어서 답답했던 기억들. 부모님에 대한 뒤늦은 이해와 연민에 잠기다 보면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나는 그럴 때 누구에게 물어봐야 하나. 


'비출산'이라는 선택엔 후회가 없다, 그런데 


ⓒ unsplash


우리 부부는 자녀가 없다. 분명 우리가 택한 것이지만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는 말이 더 정확하고 솔직한 답일 것이다. 매 순간 최선의 선택을 했을 뿐.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행복을 우선시했고 다들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같은 상황 속에서 우리와 다른 결정을 한 커플도 있고 그들의 선택을 존중한다. 때로는 그 결단력과 실행력이 부럽기까지 하다. 그러니 고된 육아에 힘겨워하는 친구들을 만나면 걱정과 함께 경탄의 마음도 든다. 생명을 만들고 책임진다는 것은 내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한 엄청난 일이니까. 


노파심에 덧붙이자면 이제와 후회하는 것은 아니다. 비출산으로 인한 득이 있듯이, 이것은 이거대로 내가 가져가야 할 삶의 무게라고 생각한다. 나는 부모는 되지 않았지만 어떻게 하면 좋은 어른과 이웃이 될 수 있을까 더 자주 고민한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했고 나는 좋은 마을의 일부가 되고 싶다. 이것이 내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더 생산적인 일이라 믿는다.


이런 내게 출산은 더 이상 큰 관심사가 아니지만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뒷목을 잡게 되는 일을 마주하고 만다. 이번에는 대구 달서구병 출마를 앞둔 남원환 예비후보의 의정활동 계획서가 그 주인공이다. (관련 기사 : [단독] 아이 안 낳으면 1000만원 벌금? '황당 공약' 출마자도 '적격').


그 안에는 인구 절벽을 막기 위해 인구부양의무세를 신설할 것이고 만 30세부터 결혼해 아이를 낳지 않으면 100만 원씩 누진적으로 세금을 부과해 만 40세가 되는 해에도 아이를 낳지 않으면 1000만 원을, 만 41세부터는 100만 원씩 줄여 50세에는 100만 원의 세금을 내도록 하자는 제안이 담겨 있다. 


어떤 각도로 보더라도 비출산에 징벌적 성격의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말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수저계급론이 일리 있게 느껴지는 이 시대에, 극복하기 어려운 환경의 대물림으로 인해 삶의 많은 것을 포기한 이들은 대체 왜 이중고를 겪어야 한단 말인가. 돈으로 출생률을 올리겠다는 생각 자체가 구태의연하다.


ⓒ 더불어민주당 홈페이지 갈무리


정치인이 할 일은 대한민국을 살 만한 세상으로 만들어나가는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일과 가정이 평화로이 공존할 수 있는 세상, 일하다 죽을까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생산성이 떨어진 뒤를 겁내지 않아도 되는 세상 말이다.


그러나 한국은 연평균 근로시간이 OECD 국가 평균보다 수백 시간이나 길고 산재로 사망하는 인구가 차고 넘치며 남성의 가사분담률은 꼴찌 수준에, 노인빈곤율은 1위에 이른다. 이토록 미흡한 환경을 손보지 않은 채 애먼 국민에게 철퇴를 내리겠다고 협박하는 것은 가당치 않다. 이 모든 것을 국회의원 한 명이 바꿀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징벌적 세금이 답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남원환 예비후보의 의정활동 계획서에는 인구절벽을 막기 위해 이민자들을 우선적으로 지방에 살게 한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그에게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아닌 것일까.


대체, 적격심사라는 걸 한 건 맞나 


이쯤 되니 일일이 반박하기에도 지쳐 혹시 구설수라도 만들어 이름을 알리려는 노이즈마케팅은 아닐까 의심스러워질 지경인데, 더욱 놀라운 것은 그가 이런 공약을 내걸고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예비후보 적격심사를 통과했다는 것이다. 대체 그 적격심사라는 것이 실재하기는 하는지 궁금하다.


그는 2022년에도 '남근탑 설립’을 내세워 물의를 빚고 공천이 취소된 적이 있지만 반성의 기미는 찾아볼 수 없다. 부디 각 정당은 예비후보 적격심사를 더 믿을 수 있는 방식으로 해나가길 바란다. 이런 식이라면 정당에 대한 신뢰는 바닥으로 추락할 뿐이다. 


(오마이뉴스 기고글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