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하에서 이 남자와 행복해지는 법, 여전한 숙제다
지난번에도 밝혔지만 남편은 한국인이다. 당연히 한국어에 능숙하지만 가끔, 아니 자주 실수하고 나는 그 실수들이 너무도 웃기고 기가 막혀서 혼자만 알고 있기 아깝다. 가령 이런 식이다.
그는 자칭 '아부의 왕'이라고 했다. 상대가 만족할 때까지 아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아는 그는 답답하리만큼 착하고 순진할 뿐 처세술에 능한 사람이 아니기에 적잖이 놀랐는데, 그는 어느 날 예의 그 아부를 하기 위해 회사에 일찍 간다고 했다.
상사 한 명이 사무실 내 화분과 주변 집기들의 위치를 못마땅해한다는 거였다. 굳이 남편이 해야 하는 일은 아니었지만 그는 그 위치를 바로잡기 위해 이른 시간 출근했고 계획한 일을 모두 마쳤다. 며칠 뒤,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래서 칭찬은 받았어? 아부는 성공한 거야?"
"응? 칭찬을 어떻게 받아? 아무도 내가 한지 모르는데?"
나는 어이가 없어 물었다. 그럼 어떻게 아부할 수 있냐고. 그는 당황해하며 반문했다.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게 아부 아니야? 좋아하는 것 같았는데. 굳이 내가 했다고 밝힐 필요는 없어서 아무한테도 말 안 하고 나 아닌 척했어."
그럼 그렇지. 나는 '아부'란 누군가의 기분을 좋게 해서 내 이득을 챙기는 거라 설명했고 그는 히죽거리며 말했다. 그럼 한 번도 아부해본 적 없는 것 같다고. 문득 내가 세상에 너무 오염된 것은 아닌지 혼란이 오기도 했지만, 내 눈에 씐 콩깍지는 더 두터워졌다. 물론 처세술에 능한 사람이라 해도 엉덩이를 두들겨주며 기특해했을지 모르지만.
스치듯 지나가는 그의 어록들 역시 무수히 많다. 가령, 어딘가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그는 마른기침을 하는 나를 걱정하며 묻는다.
"목 마렵지? 물 사 올까?"
나는 폭소를 참으며 답한다.
"그래. 나 목 마렵고 오줌 말라."
그는 내 장난을 눈치채지 못하고 조금의 웃음기도 없이 스마트폰을 꺼내든다.
"내가 빨리 찾아볼게. 이 근처에 공중화장실 있을 거야."
어떤 날엔 하늘 위를 날아가는 새를 가리키며 호들갑을 떠는 그다.
"저기, 저기 봐. 참치가 나뭇가지 물고 날아간다!"
나지막하게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기에 잘 들어보니 동요 '아기염소'인데, 귀를 기울여 보면 이렇다.
"비둘기가 뚝뚝뚝뚝 떨어지는 날에는~"
그렇게 잔인한 동요가 있을 리가. 당연히 원곡에서는 '빗방울'이 떨어진다.
주말이면 키보드가 부서져라 게임을 하고는, 승리의 기쁨에 차서 양팔을 높이 들고 외치기도 한다.
"또 이겼다! 이 정도는 그림의 떡이지!"
이 창의적인 말실수에 나는 매번 놀라 뒤집어질 수밖에. 이렇게 기막힌 한국어 구사 실력과 달리 그의 재능은 다방면에서 발휘된다. 단시간 내에 각종 시험을 통과하는 것도 그중 하나지만 사람들의 얼굴을 놀라우리만큼 잘 기억한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수십 년 전 본 영화 속 조연 배우를 기억하는 건 그에게 무척 쉬운 일이다.
어느 날엔 배우 김인권이 TV에 나왔는데, 남편이 말했다. 저 배우 <광해>에서도 인상적이었다고. 그의 말을 신뢰하지만 <광해> 속 그 배우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아서 고개를 갸웃거리자, 남편이 힘주어 말했다.
"내가 기억한다니까. <광해>에서 두반장으로 나왔어."
고추장, 된장처럼 내가 애정해마지 않는 소스, 두반장. 내가 폭소를 터뜨리며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고 하자 그는 섭섭해하며 묻는다. 자기를 못 믿냐고. 사람 얼굴 하나는 기막히게 알아보는 거 아직도 모르냐고. 그의 말대로 <광해>에는 김인권 배우가 나왔고 역할은 '도부장'이었다.
영락없는 콩깍지가 씐 것일까. 나는 이런 그가 너무도 사랑스럽다. 말실수뿐인가. 나는 그가 바나나껍질을 벗기는 모습만 봐도 호들갑스럽게 예뻐하고 만다. 유난히 동그랗게 구부러지는 그 관절의 깜찍함이라니. 다른 일로 정형외과에 같이 갔다가 그의 유연한 관절들이 일종의 기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내적 탄성을 지르기도 했다. 내가 사랑한 것에 실체가 있었어! 내가 객관성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었어, 하며.
이렇게 나는 남편의 약점과 특징을 구체적으로 사랑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 생활이 만만치 않게 느껴질 때가 있다. 특히 자본주의 앞에서 우리의 취약함을 확인하게 될 때. 가끔은 그를 물들인 자본주의를 벗겨내고 싶고 가끔은 그의 욕망에 발맞춰줄 수 없는 나의 알량한 가치관과 도덕관념, 무능함이 모조리 원망스럽다.
그는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있는 힘을 다해 소위 '성공'하기를 원하고 나는 가능한 한 이 체제에서 비껴나고 싶다.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그는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사길 원하고 나는 수십 년 동안 아등바등하며 대출금을 갚는 삶을 원치 않는다.
그는 한국에서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는 유일한 방법이 부동산이자 아파트라 생각하고 나는 전국민이 부동산에 매몰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긴다. 누군가는 그 고리를 끊어야 한다. 나 하나 동참하지 않는다고 세상이 바뀌지는 않지만 이 역시 하나의 실천이고 운동이라 생각한다. 다들 현실을 탓하며 부동산에 뛰어든다면 대체 세상은 언제 정상이 될까. 물론 이 안에는 나의 경제적 무능함에 대한 인식도 포함되어 있다.
나는 오늘도 남편을 사랑스러워하는 한편 어디쯤에서 타협해야 우리 둘 다 행복할 수 있을까 생각한다. 노인빈곤율이 높고 복지가 허술하고 아무리 성실히 일하며 알뜰살뜰 돈을 모아도 그것으로는 안정적인 내 집 한 칸 마련할 수 없는 비뚤어진 세상 속에서.
또한 부부는 어디까지 서로의 꿈을 응원해 줄 수 있을까. 이 남자와 함께 한 15년, 여전히 내게 남은 숙제다.
사진: Unsplash의Brooke Ca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