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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황작물 Apr 25. 2024

십 년 전 나는 2XL 옷을 찾아 헤매고 다녔다

십 년 전 나는 투엑스라지 옷을 찾아 헤매고 다녔다. 옷이야 그냥 사면되지 뭘 헤매냐고 묻는다면, 빅사이즈 옷을 한 번도 안 사본 사람일 테다. 대한민국에는 다양한 사이즈의 옷이 없다. 평균치를 벗어나는 옷을 입는다면 옷을 살 때마다 괴로운 나머지 옷에 몸을 맞추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이 사회는 이렇게 어떤 몸은 스스로를 긍정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고, 반려인의 옷을 찾아 헤맬 때마다 절감했다. 


당시 그의 무게가 백 키로였던가. 그는 나를 처음 만났을 때 70kg가 되지 않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30kg를 증량했다. 나는 사람이 짧은 시간 내에 그렇게 살이 찔 수 있다는 것이 너무도 놀라웠는데 그가 고백했다. 이것이 인생 최대 몸무게도 아니라고. 그는 그의 인생에서 가장 살이 빠졌던 기간에 나를 만났고 다시 찌워버렸다. 


변한 몸도 내 눈에는 귀엽고 사랑스러웠지만 옷을 사러 가면 한숨이 나왔다. 그는 쇼핑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내게도 딱히 대신해 줄 것을 요구하지 않았지만 그가 후줄근한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건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나 역시 쇼핑이라면 질색하면서도 여러 스포츠 브랜드를 돌아다녔다.


스포츠 브랜드를 고집한 이유도 간단하다. 투엑스라지 옷이 있을 가능성이 그나마 더 높기 때문에. 몇 번 허탕을 치고 난 뒤부터는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옷을 보지도 않고 물었다. 

"투엑스라지 옷 어떤 게 있어요?"


안내받은 옷이 아주 밉상만 아니면 더 볼 것도 없었다. 

"그거 주세요."


점원은 원하는 색상을 묻곤 했는데 이 또한 (그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함정인 경우가 많았다. 원하는 색을 말해봤자 그 색이 있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찾아보니 아무것도 없다는 경우도 허다했다. 나중에는 나도 한 발 앞서 이렇게 말했다.

"이 옷, 있는 색깔 다 주세요." 


그래봐야 내 손에 쥐어지는 건 기껏해야 한 장뿐. 대체로 회색이었다. 투엑스라지는 회색을 즐겨 입는다는 편견이나 통계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색깔이 잘 팔려서 마지막까지 남는 게 회색뿐인지 아직도 영문을 모르겠다. 그렇게 남편의 옷장엔 회색 티셔츠가 겹겹이 쌓였다.


© hansott, 출처 Unsplash


십 년 전 그렇게 나를 애먹인 남편은 현재 63kg. 연달아 회식을 하면 65kg가 되기도 하지만 며칠 내로 다시 63kg로 돌아온다. 옷 사이즈는 당연하게도 미디엄. 어떤 종류의 옷은 스몰을 고려하기도 한다. 그는 이제 쇼핑을 좋아한다. 


그가 스몰 사이즈를 고려한다는 것에 도취되어 있는 동안, 나는 내 안의 너저분한 성 편견을 느끼며 짐짓 놀란다. '남자가 라지 정도는 입어야 되는 거 아니야?' 곧 정신을 차리고 생각을 입 밖으로 내지 않은 것에 안도하며 나는 그에게 박수를 보낸다. 이건 거저 주어진 게 아니라 노력의 결과이므로.


그러니까 나는 한때 뚱뚱한 남자와 살았고 지금은 날씬한 남자와 산다. 뚱뚱하거나 날씬하다는 것은 사람마다 기준이 다를 테고 그런 표현 자체가 누군가에는 거슬릴 수도 있겠지만 나는 오브리 고든의 말에 힘을 싣고 싶다. 몸은 몸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키가 크고 작은 것처럼 뚱뚱하다는 것도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그 말을 꺼리는 것 자체가 혐오를 드러낸다고. (<우리가 살에 관해 말하지 않는 것들>)


뚱뚱한 남자는 언제나 여유로웠다. 내가 그에게 붙인 별명 중에는 '팔짜 좋은 애기'라는 말도 있는데 말 그대로 세상 걱정할 것 없는 아기 같았기 때문이다. 예민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고 늘 평온했다. 내가 신경질을 내도 잠깐 움찔할 뿐, 어느새 개의치 않고 활짝 웃으며 말을 걸었다. 맛있는 걸 먹자는 말에는 당연히 콜! (지금 보니 내가 육아를 해보지 않았다는 티가 역력하다. 어디 아기가 세상 평온하기만 할까.) 


날씬한 남자는 민첩하고 부지런하다. 내 스마트폰 속엔 뚱뚱한 남자가 달게 잠든 모습이 많이 찍혀 있는데 날씬한 남자의 모습은 거의 없다. 그는 이제 내가 자는 동안만 잔다. 날씬한 남자는 가끔 술을 먹고도 달린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제자리걸음도 한다. 뚱뚱한 남자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던 모습이다. 


날씬한 남자는 혈압까지 낮아져 나를 기쁘게 하지만 다소 예민하다. 내가 신경질을 부리면 맞받아치기도 한다. 뚱뚱한 남자에게서 본 적 없는 모습이라 하극상을 마주한 기분마저 든다. 맛있는 걸 먹자고 하면 길게 고민하거나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나라고 안 먹고 싶겠어? 살찔까 봐 그러지."

그의 폭발적인 잠재력을 아는 나는 얼른 말을 거둬들인다. 그래, 정크푸드 치우고 고구마나 쪄 먹자. 


나는 가끔 뚱뚱한 남자를 그리워하지만 쇼핑몰을 헤매던 것을 떠올리며 이내 망상을 떨쳐낸다. 다행히 나는 구황작물을 아주, 아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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