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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 Hoult Dec 26. 2015

90년대 펑크의 재림, 선봉장에는 그린 데이가 있었다.

그리고 오프스프링도 있었다.


펑크 록은 1970년대 중후반 짧고 강렬하게 전성기를 마감하였고, 이렇게 사라졌던 펑크가 1990년대에 부활하게 되는데 그 선봉장에는 그린 데이(Green Day)가 있었습니다.  


펑크에 대해 좀 더 알아볼까요? 펑크 록의 전성기는 70년대 중후반이지만 이미 이전 - 60년대 말부터 - 에 뉴욕의 음악 씬을 중심으로 시작되고 있었는데 전성기는 바다 건너 영국에서 맞이하게 됩니다. 당시 영국은 정부의 정책 실패가 이어져 사회문제가 심각하였지요. 특히 청년 실업 문제는 상상을 초월했다고 하는데, 아무런 해결책도 내어놓지 않은 채 전통만 고집하는 공공의 적을 향해 분노를 표출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펑크 록은 젊은이들의 극심한 좌절과 분노의 목소리를 대신했습니다.


대표적인 펑크 록밴드 하면 누가 떠오르나요? 클래쉬(The Clash), 댐드(The Damned),  라몬즈(Ramones) 

... 그리고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가 있습니다. 펑크 록에 대해 논하려면 섹스 피스톨즈의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 싱글 및 라이브 앨범을 제외한 스튜디오 앨범은 단 한 장이고, 이 한 장의 앨범이 펑크 록의 모든 것을 말해줍니다. 


펑크가 자리 잡기 전 1970년대 초 대중음악은 헤비메탈, 하드 록의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을 비롯해 프로그레시브 록의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가 견고한 음악적 완성도를 보여주고, 인기 록밴드의 공연은 수많은 관객으로 넘쳐났습니다. 그야말로 록의 전성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상업화라는 어두운 이면을 드리우게 되지요. 이후 DIY(Do it yourself, 스스로 해라)와 쓰리 코드(3 Chord,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음악) 주의를 외치며 펑크 록이 등장합니다. 3개의 코드만을 이용해 작곡했기 때문에 누구든 섹스 피스톨즈만큼 연주할 수 있다는 조롱을 듣기도 했습니다. (DIY. 지금도 흔히 쓰이는 재료와 도구를 구해 스스로 만드는 것을 일컫는 do it yourself의 약어인데, 이것은 2차 세계대전 후 영국에서 시작된 자신의 일은 자신이 하자라는 사회운동이라고 합니다.)


섹스 피스톨즈의 일화는 예전 게시글에 소개하였지만, 1977년 7월 15일 여왕 즉위 25주년을 맞이해 소속사에서 선상 파티를 기획하였는데 무정부주의를 전면에 내걸었던 그들은 퀸 엘리자베스 호가 국회의사당 앞에 도착하자 'God Save the  Queen'을 외치고 의원들을 향해 'Anarchy in the U.K.'라는 곡을 열창하여 모두 경찰에 연행된 사건, 일명 '템즈강 대소동'은 매우 유명한 일화입니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베이시스트 글렌 매트록(Glen Matlock)을 77년에 해고하였는데, 이유가 글쎄 훌륭한 연주 실력과 비틀스를 좋아하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새로 영입한 시드 비셔스(Sid Vicious)는 연주 실력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시드 비셔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21세의 나이로 사망하고 글렌 매트록이 다시 복귀합니다.)

2002년 영국의 인터넷 업체에서 조사한 가장 괴기스러운 로커 3위에 시드 비셔스가 오르기도 했는데, 

알렉스 콕스(Alex Cox) 감독의 1986년 영화 'Sid and Nancy'가 그의 이야기를 소재로 하였습니다. 

영화 속 'Too Fast to Live, Too young to Die (살기에는 너무 타락했고, 죽기에는 너무 젊다)'라는 문구가 나오는데, 이후 티셔츠에 프린트로 혹은 타투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문구가 되었지요.


1970년대 좌절과 분노를 대변한 펑크는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엄청난 바람이 부는데 세상일은 돌고 도는 것인지 1980년대로 넘어가면서 펑크에서 파생된 여러 장르와 디스코가 등장해 변질이라는 순서를 밟게 되고 쇠퇴기를 걷게 됩니다. 이후 조이 디비전(Joy Division)을 시조로 포스트 펑크가 등장하지만 이미 이전에 짧고 굵었던 펑크의 시대는 저물었다고 봐야 하겠지요. (포스트 펑크는 비상업적, 실험적인 음악으로 장르라기보다는 조금 더 포괄적인 의미입니다.)


그린 데이의 구성원은 빌리 조 암스트롱(Billie Joe Armstrong, 보컬, 기타), 마이크 던트(Mike Dirnt, 베이스), 트레 쿨(Tre Cool, Frank Edwin Wright III, 드럼), 제이슨 화이트(Jason White, 기타 / 2012년부터 합류, 1999년부터 2012년까지 투어링 멤버)입니다.


암스트롱, 던트, 트레 쿨은 동갑내기로 초기 멤버이고, 투어링 멤버였던 화이트가 2012년에 합류했습니다. 1987년 친구사이인 암스트롱과 던트가 'Sweet Children'이라는 밴드명으로 결성하여 암스트롱의 어머니가 일하고 있던 캘리포니아 발레이오(Vallejo, California)의 Rod's Hickory에서 첫 공연을 하고 이듬해 아이사크러시(Isocracy)의 드러머 존 클리프마이어(John Kiffmeyer, Al Sobrante라고도 불림)가 합류합니다.


그린 데이의 공연을 봤던 인디 레이블 Lookout! Records가 이들과 계약해 첫 EP앨범 1,000 Hours를 녹음하고 앨범 출시 전 로컬 밴드 'Sweet Baby'와 혼란을 막기 위해 그린 데이로 밴드명을 바꿉니다. 초기 멤버인 트레 쿨 역시 10대 초반의 나이로 밴드 The Lookouts의 드러머였는데, 클리프마이어(알 소브란테)가 대학 진학을 이유로 떠나자 트레 쿨이 임시로 드러머 자리를 메꾸었고 이후 클리프마이어가 밴드에 전념할 수 없게 되어 트레 쿨이 그린 데이에 정식 드러머가 됩니다.

인디 레이블 Lookout! 에서 정규 1집 39/Smooth (1990)2집 Kerplunk (1992)을 발매하였고, 1집은 시선을 끌지 못했으나 2집은 미국에서 5만 장가량이 판매되어 관심을 모으게 됩니다. 이후 타 레코드사에서 관심을 보이고 Lookout! 과는 좋은 관계로 정리한 후 메이저 레이블 Reprise Records와 계약하는데, 대형 레이블로 옮겨간 것을 두고 일부 팬들의 눈에는 배신행위처럼 보였을 거예요. 그도 그럴 것이 펑크 하면 저항과 분노인데 정통 펑크 팬과 평단의 눈에는 곱게 보일 리가 없었겠지요.



그린 데이의 음악이 진정한 펑크가 아니라고 못마땅해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반대로 90년대를 강타했던 그런지의 우울함에서 벗어나고픈 사람들은 유쾌함을 원했고, 그 자리에 그린 데이가 있었습니다. 많은 우여곡절 끝에 네오 펑크의 전성기를 이끄는 이들의 3집 앨범 Dookie (1994)가 탄생합니다. 앨범 수록곡 중 5주간 1위를 차지한 'Basket Case'는 모두 아실 거예요.


94년에 열린 우드스탁에서 안전요원이 던트를 무단 난입한 팬으로 오인해 이를 부러뜨리는 사고가 있었지만 그린 데이를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고, 95년 그래미 시상식에서는 앨범 Dookie로 최우수 얼터너티브 앨범상을 받았으며, MTV 뮤직비디오 시상식에서는 9개 부분에 후보로 올라 네오 펑크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1995년 발매한 네 번째 앨범 Insomniac은 Dookie와 종종 비교되곤 하는 앨범으로 전작에는 뒤지지만 음악적 성숙도와 상업적 성공까지 잡은 앨범입니다. 2년 뒤 1997년 5집 앨범 Nimrod는 그린 데이의 고민과 노력을 엿볼 수 있는 앨범이라고 할 수 있겠고, 2000년에 발매한 6집 앨범 Warning은 눈에 확 띄는 곡은 없지만 진지함이 느껴지는 앨범입니다. 



4년 만인 2004년에 발매한 일곱 번째 앨범 American Idiot은 3집 Dookie 이후 조금 주춤하는 느낌이 있었지만 이 앨범으로 그린 데이의 화려한 부활을 알렸습니다. 그래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록상을 수상하였고, 스토리가 있는 콘셉트 앨범으로 그린 데이의 음악적 역량을 한 단계 끌어올린 앨범입니다. 그리고 5년 후 2009년에  발매한 8집 앨범 21st Century Breakdown에서 그린 데이의 음악적 진화는 폭발하였지요. (아메리칸 이디엇은 뮤지컬로도 만들어졌습니다.)



가장 최근작은 2012년에 3부작으로 발매한 9집, 10집, 11집인 ¡Uno!, ¡Dos!, ¡Tré!입니다. 빌리 조 암스트롱은 인터뷰에서 'AC/DC 와 비틀스의 중간지대 어디쯤에서 한층 강한 펀치력으로 완성된 파워 팝 레코드이다'라고 밝혔지만, 그러한 음악은 아니고 그린 데이의 투어링 멤버와  의기투합한 개러지 록 프로젝트 밴드 폭스보로 핫 텁스(Foxboro Hot Tubs)의 기타리스트 제이슨 화이트(Jason White)를 정식 구성원으로 하여 만든 앨범인데, '그린 데이 + 폭스보로 핫 텁스'의 색채로 보시면 무난할 것 같습니다. 총 서른일곱 개의 트랙을 한 장의 앨범에 담기가 부담스러웠는지 스페인어로 1, 2, 3을 뜻하는 우노, 도스, 트레로 타이틀을 정했지만 기대에 미치지는 못 했습니다.



그린 데이의 앨범 Dookie가 있다면 같은 해에 발매한 오프스프링(The Offspring)의 기념비적인 3집 앨범 Smash (1994)가 있습니다. 그린 데이와 함께 1990년대 중반 펑크 록의 부흥기를 이끌어낸 밴드입니다.

구성원을 살펴보면, 덱스터 홀랜드(Bryan Keith Holland, 보컬), 누들스(Kevin John Wasserman, 무대명 Noodles, 기타) 그렉 크리셀(Gregory David Kriesel, 무대명 Greg K., 베이스), 피트 파라다(Pete Parada, 드럼)입니다. 


고교 시절 기타 홀랜드와 베이스 크리셀이 Manic Subsidal이라는 밴드명으로 결성하여 더그 톰프슨(Doug Thompson)을 보컬로, 그의 친구인 짐 벤턴(Jim Benton)을 드러머로 영입하고 학교에서 일하던 누들스도 합류하였는데,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합류 이유가 홀랜드와 크리셀을 대신해 나이가 많았던 누들스가 술을 살 수 있었기 때문이랍니다... 헐;;;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벤턴이 팀을 떠나 톰프슨 역시 탈퇴하고 덱스터가 보컬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후 드러머 벤턴의 자리에 제임스 릴리아(James Lilja)가 합류, 1985년에 밴드 매닉 서브사이덜(Manic Subcidal)에서 오프스프링으로 바꾸고 1986년 7인치 첫 싱글 I'll Be Waiting을 이들이 만든 레이블 Black Label에서 발매 후 릴리아는 개인적인 이유로 탈퇴하여 오프스프링에서 가장 긴 드럼 연주자로 자리매김한 론 웰티(Ron Welty)를 영입, 이들은 최고의 라인업을 구성하게 됩니다.


오랜 기간 함께해온 드러머 론 웰티가 2003년 얼터너티브 그룹 Steady Ground에서 활동하기 위해 팀을 떠나는데, 멤버들이 웰티의 탈퇴에 대해 자세하게 언급한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아톰 윌라드(Atom Willard)가 대신하였고, 현재는 Face to Face와 Saves the Day의 멤버였던 파라다가 2007년부터 드럼을 맡고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펑크 록의 마스터'라고 불리는 섹스 피스톨즈의 단 한 장의 정규앨범 Never Mind the Bollocks, Here's the Sex Pistols (1977)을 끝으로 펑크 록은 짧은 전성기를 마감합니다. 당시 자국 내에서 공연 금지, 방송 불가 처분이 내려졌지만 거세게 불어온 펑크 록의 바람을 막지 못했지요. 하지만 뾰족한 대안이 없는 정부처럼 이들의 분노와 저항 또한 대안이 없기는 마찬가지였고, 이 때문에 강력하게 불타올랐던 펑크는 금방 한계에 부딪혀 종막을 고하고 맙니다.


90년대에 들어서 또다시 거세게 몰아쳤던, 음악의 상업화에 반대한 비타협적인 얼터너티브(그런지)의 광풍도

어찌 보면 제2의 펑크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린 데이와 오프스프링 등의 네오 펑크는 영국의 펑크를 계승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상업적이고 좀 더 대중과 가까워서 비난의 목소리도 있지만, 어쨌든 네오 펑크의 성공적인 등장으로 펑크는 록 씬의 중심부로 들어섰고 블링크 182(Blink 182), 위저(Weezer) 등 수많은 후계자들이 생겨났으니까요.  


위에 소개한 그린 데이와 오프스프링의 앨범이 94년도에 발매되었는데, 그해에는 유난히 명반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사후 많은 아티스트와 대중을 제프 버클리 덕후로 만들어버린 제프 버클리(Jeffrey Buckley)의 유일한 앨범 Grace를 비롯해 사운드가든(Soundgarden)의 Superunknown, 오아시스(Oasis)의 Definitely Maybe, 블러(Blur)의 Parklife, 포티쉐드(Portishead)의 Dummy, 위저(Weezer)의 Weezer(The Blue Album)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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