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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선희 May 21. 2024

homesick

요즘의 나는 난데없이 기무라 타쿠야에 빠져서 토요일엔 밤새 기무라 타쿠야의 지난 드라마를 정주행했다. 졸려, 졸려 하면서도 한 편만 더, 한 편만 더, 그러다가 11회를 다 보고 말았다. 나 자신조차도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어리둥절한데 기무라 타쿠야도 좋지만 일본어를 듣고 있는 게 좋다. 일본에서 돌아온 그해, 그리고 그다음 해까지 나는 문장을 머릿속에서 계속 일본어로 바꾸는 놀이를 했었다. 요즘 어떻게든 매일 일본어를 찾아 듣고 있는데 일본어를 듣고 있으면 안심이 된다. 그리워진다. 뭘 그리워하는지도 모르게 그리운 기분에 빠진다.

예전에 남편이 혼자 일본어 공부를 할 때 자기가 좋아하는 일본 노래를 틈틈이 나에게 보내주곤 했다. 그 당시의 나에게 일본어라면 고등학교 때 배운 히라가나가 전부고 그 역시도 겨우 외운 기초 중의 기초였어서 들어도 무슨 노랜지 알 길이 없었다. 한창 오타쿠처럼 일본어에 빠져 있던 남편은 가사를 번역해서 함께 보내주었다. 따로 도착한 가사들은 아름다웠다. 낯선 발음의 그 노래들이 이런 아름다운 세계를 담고 있었구나, 가사를 보며 노래를 들었다. 그래도 그때는 잘 몰랐다. 어디에서 끊어지고 어디에서 이어지는 건지 음을 길게 늘이고 있는 이 단어의 뜻이 무엇인지 몰라서 온전히 누리지 못했다. 모르는 단어가 많은 건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일본어에 대한 감각은 익혀서인지 이제는 노래를 듣다 보면 어떤 대목에서 뭉클해진다. 지금 듣고 있는 미스터 칠드런 노래의 이 대목 같은 것.

忘れないで 君に宿った光.

(잊지 마, 너에게 깃든 빛)

いつまでも消えぬように 見守りたい.

(언제까지나 꺼지지 않도록 지켜보고 싶어)

mr.children의 사쿠라이 카즈토시. 사쿠라이의 가사는 詩다.

미스터 칠드런은 남편이 그 시절 가장 자주 보내주던 노래. 남편은 마지막 날까지 미스터 칠드런의 노래를 들었었다. ‘祈り涙の軌道(기도, 눈물의 궤도)’는 내가 오사카에서 즐겨듣던 곡인데 오랜만에 찾아 재생 버튼을 누르고 전주가 흘러나오는데 그 순간부터 벅찼다. 듣는 내내 그 시절의 모습이 길고 커다란 그림자가 되어 나를 뒤덮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눈을 천천히 몇 번 깜박였다. 나는 오랫동안 내가 울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잘 안 우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던 것 같다. 내 마음은 아주 쉽게 구겨졌다 젖었다 말랐다 펄럭인다. 가끔은 당황스럽지만 나는 그 모든 감정들을 온 마음을 다해 있는 그대로 누리려고 한다.

노래가 흐르는 5분 43초 동안 나는 과거의 몇 년을 빠르게 되감기 해 순식간에 다시 살았다. 다시 살아 보았다. 그게 아프고 좋았다. 지금의 내가 그때로 돌아갔다. 그때의 내 마음에 지금의 내 마음을 포갰다. 그러자 그때의 나는 더 행복해졌고, 그때의 음악은 더 깊어졌다. 지금의 나는 쓸쓸한 만큼 어느 쪽으로든 한발 더 나아간 것 같다.

반복해서 일본어를 찾아 들으며 내가 느끼는 이 감정도 향수라고 할 수 있을까. 이름을 붙이고 보니 잘 찾아낸 것 같다. 이 감정은 더없이 향수다. 그 시절의 나를, 우리를 아마도 나는 그리워하는 것 같다. homesick, 돌아갈 집도 없는데 집이 그리워. 이런 마음도 빛이 될 수 있다면 잃어버리지 않고, 잊어버리지도 말고, 품고 있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이 노래의 마지막 가사는 이렇다. 슬픔이나 외로움이 때때로 흘러넘쳐도 눈물로 이룬 궤도는 아름다운 강으로 바뀔 테니까 그곳에 작은 배 같은 기도를 띄우면 된다고.

그때가 되면 두 손을 모으고 어떤 기도를 해야 할까. 눈물이 아름다운 강으로 바뀌는 것이라면 더 바랄 것이 있을까. 그저 작은 배를 띄우고 내가 띄운 그 배가 바람을 타고 물살을 따라 기분 좋은 나들이를 되도록 오래, 아주 오래 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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