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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선희 Mar 26. 2023

안녕, 오사카의 우리

지난 1월과 2월 나는 오사카에 두 번 다녀왔다. 5년 만이었다. 두 번째 오사카에 갔을 때 남편이 오사카에서 가깝게 지냈던 선생님을 만났다. 재일교포인 선생님은 오랫동안 시를 써왔는데 남편이 그 시를 번역해서 한국과 일본에서 시집을 내기도 했다. 남편의 장례에 오지 못한 일이 내내 마음에 걸렸었다는 선생님은 만나자마자 내게 머리를 숙여 사과를 했지만 나는 오랜만에 만난 남편의 친구가 뭉클하게 반갑기만 했다.

자리에 앉은 우리는 천천히 그간의 안부를 나누었다. 안부는 5년 전 그날의 일을 전하는 것부터 시작되었고 나는 곧 울음을 터트렸다. 한동안은 그렇게 운 적이 없었는데 눈물을 닦으면서도 나는 이 눈물의 의미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미리 인사말을 써 둔 내 책을 꺼내 선생님께 건넸다. 오사카의 동화에게 의지가 되어주어 고마웠다고 썼다. 동화의 친구가 되어주어 고마웠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내가 책을 냈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라고 기뻐했다. 남편을 보낸 이후의 일을 쓴 세 번째 장의 첫 번째 글을 훑어보던 선생님은 ‘우리 노래하듯 헤어지자’라는 제목을 가리키며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나는 일본어로 대답해 주었다. 선생님은 잠시 말을 멈추고 얼굴을 손에 묻었다. 탁자 위로 눈물이 툭툭 떨어졌다.

‘우리 같은 사람에게는 이 말이 더없는 구원입니다.’

선생님은 구원이라고 말했다. 최근 몇 년간 가족과 친한 친구들이 차례로 세상을 떠났다고 선생님은 말했다.

‘우리 같은 사람에게는 이 말이 더없는 구원입니다.’ 그 말이 내게도 구원이었다. 선생님은 한국어가 서툴렀고 나는 일본어가 서툴렀지만 그날 우리는 천천히 깊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생님과 남편 사이에 있었던 이런저런 에피소드들을 들으며 울고 웃었다. 오랜만에 남편의 표정, 목소리, 걸음걸이를 만난 것 같았다. 그날의 모든 것들이 완벽했다고 지금도 느낀다. 그때도 나는 그 순간이 묘하리만치 완벽하다고 느꼈다. 어째서일까, 어째서 이렇게 완벽한 걸까.

그건 아마도 우리의 언어가 불일치하는데서 오는 것일지도 몰랐다. 서로의 말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묘한 신비로움이 오히려 그 순간을 완벽하게 만든 것일지도 몰랐다. 우리의 언어는 서로에게 좀 더 베일에 싸인 듯했고 그 의미를 가늠하며, 어쩌면 내가 갖고 있는 의미 중 가장 아름다운 의미를 부여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선생님의 태도, 합장을 하고 기도를 올리던 모습이라든가 허공을 보며 남편의 이름을 나지막이 부르던 모습 같은 것, 그것이 어우러져 기묘하리만치 아름다운 위로의 시간을 만들어냈다.

부족한 언어로 완벽하게 설명하려고 애쓰던 그 마음, 애써서 귀 기울이던 마음, 한 글자도, 하나의 호흡도 놓치지 않으려는 애씀, 최선을 다해서 우리는 서로의 말을 이해하려 했고 그 제스처나 기세가 서로에게 전달이 되어서 나는 나중에는 나의 모든 기를 쏟아부은 기분이었으나 어떤 면에서는 충만했다.

우리가 앉은자리 바로 앞에는 넓은 창이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바람이 점점 세져서 나뭇가지가 더 깊게 휘어졌다. 하늘이 어두워졌다가 밝아지기도 했다. 요동치던 공기, 나무의 휘어짐, 눈이 내렸다가 비가 오고 다시 해가 비치던 그 모든 날씨까지 이상하게 완벽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남편이 우리와 함께였다는 생각이 든다. 바람으로 눈으로 비로 햇빛으로 당신도 우리와 함께 했구나. 그날은 남편의 양력 기일이었다.

선생님과 헤어져 숙소로 돌아가며 나는 이제 벤텐초는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하나의 의식을 치렀구나 싶었다. 이제 그만 와도 될 것 같아. 벤텐초의 우리는 그때 그곳에 그대로 둬. 아오키 빌라 301호에, 후짱의 가게가 있는 골목에, 벤텐초 역의 플랫폼에, 이소지코엔의 벤치에 그때의 우리를. 우동을 후루룩거리며 지호의 그릇에 카라아게를 덜어주던 그 손길을, 입가를 닦아주던 그 사랑은 그곳에 그대로 두고. 그곳에 우리를 두고 우리의 오사카에 안녕이라는 말을 흘려보냈다.

멈추어 선 안녕이 아니라 흘러가는 안녕. 모든 것이 흘러가는 것처럼 우리의 안녕도 흘러간다. 지금으로부터 안녕을 다시 말하고 싶을 그날까지. 그러니 언젠가 다시 안녕이라고 말하고 싶어지면 그때 다시 찾으면 돼. 안녕 벤텐초의 우리, 벤텐초의 당신.

안녕, 벤텐초의 이동화. 벤텐초 플랫폼에 앉아 한 글자, 한 글자 온마음을 다해서 말하는데 눈물이 툭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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