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개월, 이렇다 할 변화 없이 살았다. 일상을 크게 벗어나는 일 없이 최대한 틀을 유지하면서. 크게 아픈 이후로 몸과 마음에 에너지가 없었고 일상을 유지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가던 곳에 가서 늘 보던 이들만 보았고, 그마저도 최대한 하지 않기 위해 집을 나서지도 사람을 만나지도 않았다.
물론 내 의지와 무관하게 일어나는 외적인 변화들은 어쩔 수 없었다. 갑자기 일어나는 사건 사고들은 나와 나를 둘러싼 환경을 무참하게 뒤흔들었다. 그때마다 감당하기 버거운 어마어마한 스트레스가 따라왔지만 휘청이되 무너지지 않기 위해 악을 쓰고 버텼다. 그렇게 몇 달 동안 겨우겨우 일상을 지켜냈다.
그런 내가 자의로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무언가를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기까지는 꽤 큰 용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한참을 망설이고 주저하고 고민을 거듭한 끝에 아주 큰 마음을 먹고서야 몇 가지 변화를 시도했다. 그 시작점을 넘어 변화의 흐름을 따라가고 있는 요즘, 내가 선택한 삶의 변화들에 대해 나눠볼까 한다.
마음의 변화를 위한 시작
마음이 무너졌을 즈음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나를 가장 괴롭힌 것은 끊임없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부정적인 생각이었다. 특별한 자극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산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좋지 않은 생각들은 그 뒤를 따라 부정적인 감정들을 불러일으키며 온종일 매 순간 나를 압도했다.
통제되지 않는 생각과 감정은 언제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 있는지에 상관없이 계속되었다. 이대로는 일상생활은 물론 이 삶 자체를 유지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다 우연히 마음챙김과 명상에 관한 수련과정을 알게 되었다. MBSR과 MSC, ACT와 사운드배스를 국내외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에 배울 수 있는 과정이었다.
심리학을 전공하며 배운 지식들과 세계여행을 하면서 갖게 된 웰니스 분야에 대한 관심들을 바탕으로 지원서를 적어 해당과정을 신청했다. 그리고 운 좋게 지원금을 받으며 전문가 과정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매주 주말 동안 마음챙김에 관한 이론과 실습을 함께 배우고 있다. 아직 명상이라는 행위에 익숙하진 않지만 오롯이 나의 마음과 지금-여기에 집중하는 시간들 덕분에 마음이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는 중이다.
상담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나는 생각보다 나를 깊이 혐오한다는 것)은 명상의 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나의 감정과 생각을 알아차리고 자연스레 흘려보내는 것이 명상의 핵심인데, 나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든 일단 부정적으로 평가부터 하고 들기 때문이다. 모든 과정이 끝나고 난 뒤에 나와의 관계가 변화될지 궁금하다. 부디 지금보다는조금이라도 좋아져 있기를 바랄 뿐이다.
몸의 변화를 위한 도전
몇 년 동안 마음을 빼앗긴 운동은 서핑이었다. 좋아하는 바다에 몸을 담그는 것도, 속도감을 느끼며 물살을 가로지르는 기분도 나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서핑을 배우기 위해서는 이른 새벽 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 30분 넘게 차를 타고 가야 했지만 서핑의 매력에 빠진 나는 한동안 매일 바다로 향했다.
그러나 작년 겨울 호되게 아픈 이후로 거의 삶의 모든 것에 흥미를 잃었다. 기존에 하던 여러 운동은 물론이고 새롭게 무언가를 배우거나 시작하고 싶은 욕구 자체가 생기지 않았다. 체력을 키우고 마음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라면 뭐라도 해야 한다는 걸 알았지만, 기꺼이 나를 잡아 일으킬 운동이 떠오르지 않았던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상담을 받던 중 나의 여성성에 대한 이슈를 다루게 됐다. 그리고 내가 가진 '나는 남성적인 모습이 잘 어울리며 그래서 여성성을 드러내선 안 된다'는 고정관념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그것을 깰 수 있는 방법이 뭘까 고심한 끝에 벨리댄스를 떠올렸다. 그것은 여성성을 드러내다 못해 내 안에 내재된 모든 농염함을 끌어내야만 겨우 시도할 수 있는 분야였다.
꽁꽁 싸매고 숨겨왔던 몸매를 드러내고, 부끄러워하지 않고 내 몸을 바라보는 것이 아직 익숙하지 않다.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있는 탓에 표정과 동작들을 따라 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언젠가 나도 다른 회원들처럼 부드러운 곡선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하며 노력하고 있다. 사고로 다친 골반과 척추를 운동하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스스로 이런 내 모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 이번 운동의 궁극적인 목표다.
삶의 변화를 위한 시도
첫 번째 책을 만든 이후로 앞으로도 계속해서 책을 쓰며 살고 싶다는 마음이 분명해졌다. 그러나 한 권의 책을 만들기까지 들어가는 어마어마한 노고를 경험하고 나니 선뜻 두 번째 책을 쓰기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시간만 흘려보내는 중에 독립출판 워크샵에 관한 지원사업 공고문을 보았다.
해당 수업은 기존에 어느 정도 기획의 방향과 원고 작업능력을 갖고 있는 이들을 대상으로 모집하고 있었다. 책을 만드는 프로그램인 인디자인을 가르쳐 주는 것은 물론 9월 중 출간을 목표로 하는 수업이었다. 올해 내로 첫 번째 책의 2쇄와 두 번째 책을 출간하여 북페어에 나갈 꿈을 꾸고 있는 나에게 이보다 좋은 조건이 있을까 싶었다.
지난 한 해 혼자서 글을 쓰고 책을 만들면서 느꼈던 막막함과 외로움이 떠올랐다. 그런데 함께 책을 만들고 고민을 나눌 동료들이 생긴다니 그것만으로도 큰 힘과 동기가 솟아오르는 것 같았다. 정말 간절하게 염원한 결과 운 좋게도 합격통지를 받았고 그 이후로 매일 머리를 쥐어뜯어가며 출간기획서를 작성하고 있다.
기획서가 완성되는 대로 브런치에 연재하는 형식으로 원고 초안을 작성해 볼까 한다. 책이 될 글은 읽어주는 이들이 있고 공감을 얻어낼 수 있을 때 비로소 빛을 발할 수 있을 테니까. 오래도록 쓰고 싶었던 여행에 관한 이야기들을 끄집어내려니 두려움과 설렘이 교차하는 묘한 기분이다.
지난 몇 달간의 나는 삶의 사소한 변화조차도 원치 않아 모든 시도를 거부하며 지냈다. 그런 나에게 지금 몇 주 사이 일어나고 있는 변화들(물론 모든 변화들이 내 선택으로 인해 일어난 것이니 만큼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기 보단 '변화를 일으켰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지만)은 삶 전체를 뒤흔들 만큼 크게 느껴진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낸 시간이 긴 만큼 하루 1개의 스케줄도 소화하기 힘들고, 주어진 기한 내에 누군가와 함께 해내야 할 일들이 생기는 것 자체로 부담이 크다. 무엇보다 나에 대한 믿음과 애정을 많이 잃은 뒤라 과연 내가 이것들을 해낼 수 있을지 의문스럽고 불안한 마음이 든다.
그러나 나에게 나타난 모든 상황들은 단순한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원했고 나에게 필요해서 주어진 운명일지도 모른다. 오래도록 방치해 왔던 내 삶이나에게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변화를 망설이는 나의 마음에게 필요한 것이 뭘까? 그것은변화되기 위한 동기와 새로운 삶을 시작할 용기뿐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