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며느리가 되기로 마음먹다.
남편이 떠난 지 1달 즈음 됐을 무렵 형님으로부터 전화가 한통 걸려왔다. 이전에도 남편의 소식을 묻거나 나를 걱정하는 몇몇 이들의 연락을 받아왔던 터라 으레 걸려온 안부전화려니 했다. 그러나 형님의 입에서는 전혀 다른 주제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가까운 친척어른이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병원에서 가족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며 마지막 면회를 하고 돌아와 마음이 좋지 않다고 했다. 그녀는 그분과의 추억에 대해 이야기하며 감상에 젖어들었다.
한참 그 이야기를 들으며 위로를 건네던 중 그녀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하니 네 생각이 났다고. 나는 신혼여행에서 남편과 함께 당했던 교통사고 때문이려니 했다. 그러나 그 뒤로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 너희 어머니도 교통사고 당해서 돌아가셨다고 하지 않았나? 죽기 전에 상태가 어떠셨어? 뇌사 아니면 식물인간? 그럼 어머님은 몇 살 때 돌아가셨어? 아 30대셨겠구나 "
마치 '점심은 먹었냐'와 같은 대화를 주고받는 듯 가벼운 어투로 던지는 그녀의 질문들에 나는 돌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러나 나의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한 그녀는 계속해서 혼잣말들을 쏟아내었다.
" 우리 삼촌보다 딱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좀 위안이 되더라고. 삼촌은 나이도 많으시고, 자식들도 다 키워놨고, 돈도 많이 벌어놔서 걱정 없거든. 너희 엄마보다는 우리 삼촌이 훨씬 낫잖아. 우리 마을에는 30대에 자살한 사람도 있는데 뭘"
그 뒤로 어떤 이야기들이 이어졌는지는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게 혼자서 주절대던 그녀가 '아무튼 그럼 안녕' 하고 곧 전화를 끊었다는 것 말고는. 마치 길을 걷던 중 아주 세게 뺨을 얻어맞은 사람이 아무 대응도 할 수 없는 것처럼 나는 갑작스럽고 충격적인 상황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전화를 마쳤다.
그로부터 일주일을 호되게 앓았다.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도는 그녀의 말들을 지울 수 없었고 때때로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손이 떨렸다. 가만히 앉아 멍을 때리다가도, 자려고 침대에 누워서도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오는 울음에 눈물을 훔친 것이 여러 번이었다. 나는 여러 날을 밤이 늦도록 쉬이 잠에 들지 못했다.
사람으로부터 말로 상처받아본 것이 너무 오랜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누구에게라도 털어놓고 싶었지만 차마 그 이야기를 다시 내 입에 담을 자신이 없었다.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마음에 새로 생긴 생채기를 끌어안고 그렇게 몇 달을 힘들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