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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들이 죽어가고 있다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매일 여기저기서 극단적 선택소식이 들린다.

지금까지 몆 명이 세상을 떠났는지 모르겠다.


세상과 단절한지라 뒤늦게 뉴스를 접했지만

소식을 듣고 나서도 크게 놀라지 않았다.


언제나 있었던 일, 암암리에 일어나던 일이

이제야 알려지기 시작했구나 싶었을 뿐이다.



분명 여기저기에서 계속 있어왔던 일이다.

혼자 애쓰며 무언가와 싸워오던 이들이

더는 버티지 못하고 손을 놓은 것일 테다.


'자신이 부족해서일까, 어떻게 해야 할까'

끝없이 고민하며 돌이켜 보았을 것이고

그 끝에 이제 그만해야겠다 생각했을 것이다.

 

나 또한 같은 생각을 해본 적이 있기에

감히 그들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신규발령지에서의 첫 1년은 쉽지 않았다.

관리자의 갑질과 가스라이팅은 지독했고,

학부모의 민원은 집요하고 다채로웠다.


잡부인지 교사인지 의문을 가질 때가 많았고

학생의 보호자인지 학부모의 쓰레기통인지

가끔은 스스로 헷갈려 질문을 던지곤 했다.


마음에 상처를 주는 무수한 말과 행동들로부터

나를 지키려고 해 봤지만, 작고 힘없는 나는

언제나 거대한 벽에 부딪히고 깨졌다.


아이들로 인해 힘들게 될 거라 생각했는데

나를 울게 만드는 것은 언제나 어른들이었다.



15년 넘게 키워온 본인의 자녀들이었음에도

아이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나쁜 일의 원인은

고작 몇 달간 다녀온 학교의 잘못 탓이 됐다.


대체 애를 어떻게 돌보고, 뭘 가르쳤길래

애들이 이 모양이 될 때까지 당신네들은

몰랐냐며 크게 분노하고 책임을 물었다.


증오에 찬 학부모는 해결책을 요구했고

관리자는 혹여 누가 될까 면피에 집중했다.


교사는 방패막이자 욕받이로 쓰임새를 다했다.  

고개를 조아리고 기꺼이 약자가 되어 사과했다.

누구도 우리편이 아니었고 보호받지 못했다.



괴롭힘은 학교 안에서도 조용히 이루어졌다.

시도 때도 없이 불러들여 온갖 소리를 하고

사람들 앞에선 돌려 까면서 수치심을 줬다.


오가며 던지는 비아냥들은 가슴에 남았고

그것들이 조금씩 쌓여 속이 곪아들어갔다.


부적응 전보로 학교를 옮길 생각도 해보고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도 해보았지만

크고 견고한 조직 안에서 피할 길은 없었다.


그 존재를 피해 휴직을 신청했던 그때도

'니 참 똑똑하네'라는 비아냥이 돌아왔다.

그러나 나는 무사히 도망쳐서 살아남았다.



마음을 다독여봐도 자꾸 앓는 소리가 나왔다.

힘들다 호소했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차가웠다.


'공무원은 연금에 철밥통인데 뭐가 문제냐'

'다들 직장 생활하는데 그 정도로 엄살이냐'

'그래도 너희는 방학이 있는데 뭐가 힘드냐'


아이들의 선생이며, 방학마다 노는 교사는

힘들어도 힘든 내색을 해선 안 되는 거였다.  


소명을 갖고 아이들을 사랑해야만 하는 사람,

언제나 모범적이고 긍정적이어야 하는 사람.

그 역시도 '사람'이었기에 그것은 쉽지 않았다.



마음속 덮어뒀던 질문이 떠오를 때가 있다.

'무얼 그리 잘못했을까. 정말 다 내 탓일까?'

잘못한 것이 있다면 그 길을 택한 것뿐이다.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이 되려 노력했고

많은 아이들이 나를 따르고 사랑해 줬다.


학교를 떠날 때도 남은 아이들이 눈에 밟혔

지나가다 학생들을 보면 여전히 맘에 걸린다.


그러나 돌아가야 할 날이 다가옴을 느낄 때마다

심장이 쿵쿵대며 나도 모르게 숨이 막혀온다.


돌아가면 무언가 조금이라도 바뀌어 있을까?

나는 그곳에서 다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확신할 수 없지만 더는 피할 방법이 없다.



죽어가는 교사들을 보며 생각에 잠긴다.

나부터 노력하고 움직였어야 하는 건 아닐까?


그냥 입을 다물고 그곳에서 도망치지만 말고

내부고발을 하고, 조직에 가입하고, 소리 내며

맞서 싸웠으면... 그랬다면 뭔가 달라졌을까?


그러나 체제에 순응하며 나 하나만 참으면된다

교육 받아온 이에게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거대한 옹성 앞에 홀로 선 개인은 무력하다.



그들도 아이들을 사랑해서 교사가 됐을 것이고

분명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문제에 맞닥드릴때마다 자기 힘으로 해결해보려

갖은 애를 쓰며 길을 찾았을 것이다.


그러나 해답도 희망도 보이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그 길을 선택한 것일테다.


그들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까?

아니, 또 다른 희생자가 생기지 않게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아직도 도무지 방법을 알 수 없지만

간절히 어떻게든 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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