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과 영국에서의 따로, 또 같이, 사는 삶
2021년은 참으로 좋은 해였다. 지긋지긋한 영국의 락다운이 풀리고 백신도 맞으면서 일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많이 건강해진 한 해였다. 어제는 영국인, 미국인, 프랑스인 등등 다양한 친구들과 모여 다 같이 크리스마스 쿠키도 굽고 칵테일도 만들어 마셨는데 순간 '내가 참 좋은 사람들 곁에 있구나.' 하는 따뜻하고 몽글몽글한 감정이 느껴졌다. 오후 3시 반부터 해가 지는 유럽의 겨울은 참으로 길고 고독하다. 이럴 때 아늑한 크리스마스 장식과 트리 아래서 함께 친구들과 보내는 순간은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다.
하지만 항상 내가 이렇게 행복한 연말만을 보낸 것은 아니다. 해외 살이 도합 3년 차. 나는 유럽에서 총 두 번의 겨울을 가족과 친구 없이 홀로 보내본 적이 있다. 뉴 이어 이브 (New Year's Eve)에 미친 듯이 음악소리를 높여 파티를 해대는 이웃들 사이에서, 깜깜한 방안 홀로 침대에 누워 오지 않는 잠을 청해본 적이 있다.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인턴 생활을 할 때는 참으로 주말이 싫었다. 뭘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딱히 만날 친구도 없고 밖에 나가서 혼자 커피 마시는 것도 지겹고 주변에 이렇다 할 Gym이나 Yoga studio 도 없었다. 어떨 때는 일주일 내내 사람과 대화 한마디도 한 해 본 것 같은 날들도 있었다. 바닥 밑바닥까지 뚫는 것 같은 고독을 나는 성취로 달랬다. 공부를 하고,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고, 포트폴리오를 정리했다. 하지만 고독을 성취로 메꾸는 방법은 그 효과가 오래가지 못했다. 결국, 사람은 사회적 관계를 통해 행복을 얻을 수밖에 없는 동물이라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아무리 성취를 했어도, 그 성취를 같이 기뻐해 줄 타인이 없는 삶은 참으로 공허했다.
그런데 우리가 채우고 싶은 사회적 관계 욕구를 오로지 '연인 관계'라고만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친구관계에서는 연인만큼의 정서적 깊이를 바라기가 쉽지 않을 수 있지만, 또 그렇지만은 않다. 친구관계에서도 연인 못지않은 정서적 공감과 안정감, 깊은 유대감을 느낄 수 있다. 내가 그런 친구관계를 만들 준비가 돼있기만 하면 말이다.
스웨덴에서 홀로 살이에 익숙했던 내가 이곳 영국 런던에서 코로나를 거쳐 현재 지금의 친구관계를 어떻게 형성하게 되었는지 그동안의 나의 경험을 나름 공유해보고자 한다.
나는 현재 데이팅 앱을 끊은 지가 2년이 넘어간다. 영국 도착하고 8개월쯤 후 첫 힌지 Hinge (영국의 데이팅 앱) 데이트를 나간 후 전 남자 친구를 만났고 이별 이후에도 딱히 하지 않았다. 현재 데이팅 앱을 하지 않는 지금의 나의 삶이 훨씬 더 만족스럽고 좋다. 우선 데이팅 앱을 안 하니까 친구관계에 더 많은 시간과 감정적 투자를 하게 되고 그로 인해 친구관계의 질이 더 높아졌다. 그리고 좋은 친구를 한번 사귀어 두면 영국은 파티나 사교모임을 통해 친구의 친구를 자주 소개해주기 때문에 친구관계가 계속해서 넓어진다.
솔직히 철없을 적 나도 그렇고 많은 이들이 친구보다 모르는 낯선 이성의 관심에 헤까닥 더 많은 시간과 감정을 쏟고는 한다. 그러나 연인이 생겨도 친구관계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아니, 연인 없이도 건강한 친구관계가 있어야 건강한 연인관계도 가능하다.
외국에 오자마자 데이팅 앱을 시도해서 외로움을 채우는 케이스는 홀로 해외살이를 하는 여성들에게서 너무 많이 봐왔고 너무 흔하게 보는 패턴이다. 아무래도 그게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 데이팅 앱으로 만난 모든 관계가 나쁘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내가 마음 붙일 친구가 현지에 없는 상황에서 남자로 외로움을 해결하려고 하려는 게 위험하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도 가스 라이팅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지 않은가? 가스 라이팅의 특징은 우선 본인을 주변 사람들로부터 고립시킨다는 것이다. 나를 보호해줄 사회적 지지망이 없는 상태에서의 연인관계는 그 연인관계가 Toxic 할 경우 빠져나오기도 힘들고 알아차리기도 힘들다. 내가 지금 안정적인 친구관계가 있다면, 데이팅 앱 언제든지 해도 좋다. 그러나 내 목적이 지금 사람이 그리워서인지 정말로 연애를 할 준비가 되서인지는 스스로에게 미리 질문해봐야 한다.
홀로 해외생활을 할 때 가장 큰 어려움은 바로 '고독'이다. 이럴 때 같이 살고 있는 누군가가 있으면 참 많은 도움이 된다.
나는 스웨덴 교환학생을 가기 전 기숙사 배정 한참 전에 학교 기숙사 측에 미리 이메일을 해서 어떻게 방 배정이 되고 누구와 살게 되는지를 물어봤다. 그때 가장 흔한 교환학생 기숙사 구조는 혼자 방 (일반 스튜디오 좁은 원룸)을 쓰고 큰 부엌을 나눠 쓰는 구조였는데, 나는 일부러 1명과 함께 더 큰 집을 둘이서만 나눠 쓰는 현재 영국의 플랏 셰어와 비슷한 형태의 집을 요청했고 그렇게 프랑스인 룸메이트를 만나게 되었다. 일반 기숙사는 사실 복불복이라 좋은 기숙사 메이트를 만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안 좋은 경우는 서로 방에만 틀어박혀 인사도 하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1명과 더 큰 집을 나눠 쓰는 게 공간적으로도 더 넓고 서로 같이 지내게 되니 친해질 일이 많을 것이라 판단했고 실제로 그렇게 만나게 된 프랑스인 룸메이트와는 한 학기 동안 동거 동락하며 많은 추억을 쌓게 되었다.
현재 영국에 와서는 첫 1-2년간 좋은 하우스메이트를 만나는 게 참으로 힘들었다. 영국의 셰어하우스들은 1. 집주인이 하우스메이트들과 1:1 계약을 하거나 2. 내가 직접 하우스메이트를 구해서 집 전체를 계약하는 경우 이 두 가지인데 나는 처음에 아는 사람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1번 형태의 셰어하우스에 살았다. 그러나 이런 집들은 보통 하우스메이트들이 계속해서 바뀌니 친해지기도 쉽지 않고 미리 살고 있는 애들도 정을 잘 안 준다. 그리고 집주인들은 보통 하우스메이트들이 월세를 매달 낼 건지만 관심 있고 개개인의 성격이나 청소 성향 등등을 따지기 않기 때문에 나와 맞는 이들을 만나기도 힘들다. 그러나 2번의 경우에는 하우스메이트들과 같이 살기 전 인터뷰도 좀 하고 사람을 거르는 편이라 나와 좀 더 비슷하고 잘 맞는 성향의 이들을 만나기가 쉽다.
나는 현재 2번의 형태의 집에서 한 명의 그리스인 플랏 메이트와 살고 있는데, 함께 보드게임도 하고 같이 저녁도 만들어 먹는 재미가 참으로 쏠쏠하다. 서로의 친구를 데려와서 만나는 것도 또 다른 재미다.
유학을 하지 않고 유럽에 온 나의 경우 친구를 만나기 가장 쉬운 건 솔직히 일-직장을 통해서다. 그러나 나는 개인적으로 공과 사를 확실히 구분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그리고 현재 취업비자를 받은 지금도 나는 직장에 무슨 일이 생기면 영국을 떠나야 하는 신분에 묶여있기 때문에. 직장에서 과도하게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나는 과거가 아닌 현재 직장동료들은 업무시간 외에 잘 만나지 않는 편이다.
2-1. 카우치 서핑 (또는 에어비앤비를 통한 여행)
코로나로 인해 지금은 까다로워졌지만 카우치서핑 앱은 현지인을 만나기 참으로 좋은 방법이다. 나는 영국에서 카우치서핑으로 만난 호스트의 집에서 2일 정도를 함께 보냈고 지금도 현재 좋은 친구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카우치서핑을 할 때 안전을 위해 남자 혼자 있는 호스트보다는 일부러 커플, 여자들 위주로 찾았고 서로의 자세한 프로필 확인+ 대화를 통해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그리고 영국에서 임시숙소를 잡더라도 단독 호텔방보다는 친구를 더 만나기 쉬운 게스트하우스, 호스텔의 구조나 주인과 함께 있는 에어비앤비를 가는 것이 좋다. 특히 요즘은 에어비앤비 experience 가 잘 되어있어 체험이나 파티 등등을 통해 현지 친구를 만드는 이도 많이 보았다.
2-2. 범블 Bumble BFF 친구모드
지난번 내 브런치에도 소개했던 데이팅 앱 범블은 사실 데이팅뿐만 아니라 BFF 모드, 비즈니스 모드 등 여성들을 위해 다양한 인간관계를 만날 수 있게 해주는 소셜 앱이다. 나는 BFF 모드를 한 달 정도 했고 (온라인으로 누구를 만난다는 것 자체가 지쳐서 한달 이상은 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총 2명 정도를 만났고 한 명은 연락이 끊겼지만 다른 한 명과는 아직도 좋은 친구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2-3. 취미 생활
요가 스튜디오, 수영장, Gym, 댄스 또는 발레 수업, meet up 등등을 통해 만나는 것도 방법이다. 이런 곳들의 특징은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성실하고 자기 관리를 열심히 하기 때문에 대부분 친절하고 사람들의 질(?)이 좀 더 좋은 느낌이다. 그러나 나는 개인적으로 운동할 때는 운동하는 것만 좋아해서 여기서 친구를 딱히 사귄 적은 아직은 없다.
2-4.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에 열려있기
내가 소셜라이징을 하고 싶지 않다면 억지로 누군가를 만날 필요는 없지만, 확실한 건 집에만 있으면 친구는 절대 못 사귄다는 것이다. 해외생활을 하다 보면 주변인들의 권유로 자연스레 파티나 네트워킹 이벤트, 저녁 모임 등등 무언가를 같이 할 기회가 생기는데 우선 가보는 게 중요하다. 언어가 잘 안 통하고 문화가 다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당연히 나도 겪어봤다. 그러나 말을 별로 하지 않더라도 얼굴을 계속 비추다 보면 어느새 그들이 익숙해지고 편안하게 느껴지는 날들이 올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너무 또 내 성향이 파워 외향이 아닌데 억지로 다른 사람이 되면서까지 노력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나는 영국에서도 코로나 락다운 6-9개월간은 만나는 친구의 수가 거의 0에 가까운 수준이었는데 그때도 그냥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렇게 살았다.
스웨덴에 있을 때는 외향적인 척하려고 파티 가서 술도 많이 마시고 (나는 체질적으로 술이 안 받는다.), 활발해 보이려고 말도 많이 걸고 친구들도 매번 초대해서 밥도 먹이고 먼저 연락도 참 많이 했다. 그러나 나중에 지나고 보니 모든 게 허무했다. 나는 평생 다른 사람인 척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영국에 와서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부분ㅡ친구를 사귈 수 없는 코로나 락다운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 시기가 지나기를 기다렸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친구가 생겼고, 지금 내 주변에 있는 친구들은 내가 뭘 노력해서가 아니라 그냥 나 자체로 나를 좋아해 주는 친구들이다. 내가 내 자체로 받아들여지는 기분, 내가 타인이 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 주는 감정은 꽤나 뿌듯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편안하게 느끼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다.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정확히 알고, 자신의 부족한 점을 억지로 감추려 하지 않고 편안히 느끼며 그걸 자신의 일부로 잘 통합하는 사람..
여기 오늘 이렇게 나처럼 해외생활을 하는 이들을 위해 팁을 적어봤지만, 도움이 되면 실행해보되 또 너무 스트레스받고 너무 자기 자신을 몰아붙였으면 하지 않는 바램이다. 누구에게나 각자의 시간과 타이밍이 있기 때문에. 인간관계는 노력한다고 무조건 되지 않기 때문에. 몇 번 시도했다가 안되면, 그래도 괜찮다. 나의 때를 기다리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