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단점이 있듯 장점도 있다
예전 글에 남의 의견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비판적인 사고 과정을 거쳐 자신에게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의견을 받아들이는 자세에 대해서 적었다. 이때 자신이 가진 단점을 무조건적으로 없애면서 성장하는 방식보다, 자신이 가진 고유한 장점을 더 활용하고 극대화시키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최근 그걸 뒷받침할 수 있는 좋은 일화를 겪어 여기 공유하려고 한다.
지난 브런치 글 참조: https://brunch.co.kr/@silver-rain/147
행복한 소녀가 행복한 할머니가 된다. 어린 시절 10년에 가까운 학창 시절을 희생하며 대한민국에서 말하는 최고의 대학을 갔건만, 행복이 뭔지 몰랐던 나는 20대 중반, 더 이상 내 현재를 미래에 올지도 모르는 불확실한 행복을 위해 희생하며 살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마음먹은 대로 살기 시작한 내 20대 후반은 완벽하진 않지만 대체적으로 만족스러운 날이 더 많고, 슬프고 우울할 때도 있지만 그 기분이 크게 오래가거나 나 스스로를 완전히 잠식해버리지는 않는 편이다. Learn how to live with different weather. 내 인생에서 맑은 날, 비 오는 날을 내가 선택할 수는 없지만 비 오는 날 전에는 나름 우산을 미리 사서 대비하고 비 오는 날이 되면 우비도 입고 물 웅덩이에서 첨벙첨벙 노는 법을 배울 수 있게 됐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한국은 뼈 빠지게 노력해서 정신과 육체가 극한으로 고통스러워야만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실제로도 그렇게 노력해야만 성공이 가능한 초경쟁사회이기도 하다. 그러나 과정도, 결과도 행복하길 원했고 일도 열심히 하고 싶지만 노는 시간도 잘 확보되어 놀 수 있는 자유를 원했던 나 같은 욕심쟁이 한량은 그런 삶의 방식이 좀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유럽으로 와 정착했다.
물론 여기서도 사내정치, 입사 및 승진을 위한 경쟁이 존재하긴 하지만 최소 1년에 한국을 두 번은 갈 수 있는 여유로운 휴가, 내 목소리와 의견이 회사에 적극적으로 반영되는 문화, 출근이 오로지 개인의 선택/선호사항일 뿐인 전 직원 재택근무, 내가 원하는 만큼 업무 조정이 가능하기에 원하는 시간에 일을 마칠 수 있는 저녁이 있는 삶, 내 사생활을 지키는 것이 가능하고 사생활이 업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회사 환경 등등을 누리며 나름 만족스럽게 살고 있다.
나는 과정에서도 행복하고 싶었다. 과정이 곧 내가 피부로 느끼는 내 삶의 매일매일이니까. 인생에서의 중요한 이정표들, 대학, 입사, 결혼, 승진 등등을 위해 우리 모두 노력을 하고 매일매일을 알차게 살되, 그 과정을 즐기면서 행복할 순 없는 걸까? 결과를 얻기까지 자신의 인생은 불완전하다고 느끼며 온갖 맘고생을 한 사람의 10년과, 그 과정을 파도 타듯이 즐기며 길가에 핀 꽃도 보고 새소리도 들으면서 천천히 걸어온 사람의 10년은 차이가 다른 삶의 질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이렇게 보낸 10년은 그들이 결과적으로 어떤 사람이 되는지에 큰 차이를 만들어 낸다. 어떤 결과나 인생의 반짝 이벤트들이 주는 행복은 평생 지속되지 못하지 못하다는 걸 나는 대학을 들어간 만 18살의 어린 나이에 깨달았다.
지속 가능한 행복의 삶. 이것을 성취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오늘 소개하고 싶은 그중 하나는 자신의 단점을 없애기보다는 장점에 집중하고 그걸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삶이라 생각한다.
내가 브런치에 자주 언급하는 동료 P는 굉장히 여성스러운 성향의 매니저이다. 인터넷에는 여자들에게 '여성적인 언어'를 쓰지 마라, 비즈니스 세계에서 살아남고 싶으면 '남성의 언어와 대화방식을 써라'라는 비즈니스 팁이 넘친다. 여자들은 주로 "미안한데 이것 좀 봐줄 수 있어?" "내 질문이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는데 내가 궁금한 건.." 등등 이런 식으로 사과나 자신을 낮추는 표현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공격적으로 자기표현을 하는 것이 드물고 남의 말을 끊거나 방해하는 횟수도 적다. 그러나 P는 자신이 여성스러운 사람이고 그렇다는 걸 받아들였다. 굳이 자신을 억지로 남자의 문화에 맞춰 바꾸려 하지 않았다. P는 굉장히 높은 레벨의 매니저가 된 지금도 그런 말투를 사용한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여성적인 강점을 최대한 활용해서 사람들을 매니징 했다.
사소한 뉘앙스나 사람들의 표정을 보고 그 사람이 불편한 것, 원하는 것을 빠르게 습득한다. 미팅을 장악하기보다는 미팅에서 소외돼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 직접 발언권을 준다. 파워와 자신감으로 사람을 강력하게 지도하는 리더보다는, 형제자매 같고 지난 주말 굉장히 이상한 데이트 상대에 데인 경험에 대해 같이 웃고 떠들며 편하게 지내는 팀 문화를 지향한다. 그녀는 심지어 자신이 재택근무를 하다가 최근 실제로 사람들 앞에 서서 발표를 하는 것이 얼마나 떨리는 일이었는지를 자신이 매니징 하는 팀원들 앞에서 말하곤 했다. 그런데도 그녀는 우리 회사에서 승진을 3번이나 했고 지금 거의 20명에 가까운 팀을 홀로 매니징 한다. 그녀 주변에는 그녀를 두려워서 따르는 사람이 아닌, 그녀가 정말 좋아서 함께 일하는 부하직원들이 많다.
"너는 문제를 계속해서 곱씹는 경향이 있어. 그냥 잊어버려!
- Just forget about it
나도 회사에서 일을 하다 보면 내 성과나 평소 일하는 방식에 대해 팀원들에게 크고 작은 피드백을 많이 듣는다. 이 중에서 아무래도 나와 가장 친하고 많은 시간 일을 하는 동료들의 피드백을 아무래도 더 주의 깊게 듣게 되는데, 6개월 전 나에게 이런 피드백을 준 동료 G가 있었다.
G와 나는 평소 굉장히 친했던 터라 나는 이 피드백을 받고 바로 나의 단점들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내가 너무 과도하게 문제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나? 내가 지나간 일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는 스타일이긴 하지. 어떻게 하면 쿨하게 잊을 건 잊고 흘려보낼 수 있을까? 그리고 G에게 문제들을 쿨하게 잊어버리는 법을 물어보았다. G는 그럴 때마다 자신은 베이킹을 한다고 했다. 그래, 나도 베이킹을 좀 시도해봐야지. G에게 레시피를 공유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고 나서 몇 주 후, 나와 G는 회사에서 어떤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내가 주도한 미팅에서는 우리는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하고 미팅이 끝났다. 그 미팅에 있었던 동료 G는 미팅이 끝나고 내게 메시지를 보냈다.
"거봐, 내가 안될 거라고 했잖아. 그냥 잊어버려. 나는 이 문제에서 손 뗄래."
그런데 어딘가 핀트가 맞지 않는 기분이 들었다. G의 말도 일리는 있다. 우리는 쿨하게 잊어버릴 건 잊어버리고 손 떼야할 건 떼야한다. 그런데 나에게는 두 가지 유형의 문제가 보였다. 1. 내가 노력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 2. 내가 지금 노력해도 해결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문제. 그러나 우리가 맞닥뜨린 회사 일은 1의 범주라고 나는 생각했다. 프로덕트 디자이너는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아닌가? 그러려고 나는 회사에 고용된 것 같은데? 그 문제가 당장 해결되지 않았다고 내가 시도했던 것이 의미가 없어지는 건가?
뭐가 맞는지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당시는 특히 우리 팀이 굉장히 내부적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였는데 내가 문제를 해결하려고 여러 가지 해결책을 제시할 때마다 G의 'Forget about it'이라는 말은 나의 힘을 쫙 빼놓았다. 나는 나 스스로에 대한 의심이 들었다. 내 해결책이 결국 먹히지 않았으니 스스로의 문제해결력도 의심스러웠고, 내가 너무 문제에 집착하는 스타일이라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나 싶었다. 나도 손을 놓아야 하나? 어떻게 쿨해질 수 있는 거지?
오늘 네가 제시한 것, 굉장히 좋은 제안이야! 이거 앞으로 우리 프로세스를 더 효율적으로 바꿀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나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듯, 나 또한 타고난 나의 이러한 성향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일에 휩쓸려 살다 보니 어느새 G의 '잊어버려라'는 피드백은 내 머릿속 창고 머나먼 구석으로 처박혔고, 정신 차리고 보니 나는 어느새 내 성향대로 일을 하고 있었다. 문제점들을 기록하고, 그걸 어떻게 해결할지 계속해서 브레인스토밍, 고민하고 다른 팀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 팀에서 사례를 찾을 수 없으면 다른 팀원을 찾아가서 의견을 듣고 해결책에 대해 고민했다.
그러던 오늘, 최근 다른 팀원과의 오해로 생긴 갈등을 해결하는 자리에서 내가 최근 2주간 보고 느끼며 생각해온 문제점들과 제안을 이야기했고, 상사로부터 굉장히 큰 칭찬을 받았다. 모든 사람들이 내 제안에 만족하는 눈치였다. 더할 나위 없는 희열을 느꼈다. 그냥 이것은 관점의 차이구나! 그리고 나의 이런 성향은 '장점'으로도 충분히 쓰일 수 있구나.
나는 문제점을 보면 그것이 해결될 때까지 먹이를 물고 늘어지지 않는 늑대처럼 집요하게 파고들어 문제를 기어코 해결해야 하는 스타일이다. 그것이 수년 전에 헤어진 전 남자 친구와의 이별 원인같이 지금 내게 영향을 주지 않더라도 나는 과거에 내가 궁금했고 이해가 되지 않은 점들은 어떻게든 스스로 명확한 설명과 이해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다. 물론 G의 말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게, 업무시간 외에도 끊임없이 일을 생각하거나,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고민하는 건 정신적으로 좋지 않다. 그러나 G에게 피드백을 받을 당시에 나는 이미 일 끝나고 일을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어떤 것이 해결 가능한 문제이고 해결 가능하지 않는 문제인가에 대한 관점이 달랐을 뿐이다. G는 우리보다 높은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는 우리가 해결책을 제시해봤자 해결이 안 날 것이라 생각했고, 나는 나보다 직급이 높든 낮든, 내가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오늘 그런 나의 성향이 보상을 받은 듯했다.
물론 나도 현재의 깨달음에 오는 과정에 있어서 내가 생각하는 나의 신념을 뚝심 있게 밀고 나가진 못했지만, 내가 만약에 G의 피드백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해서 나를 고치는 데 집중했다면 오늘 내가 제시한 솔루션이 받아들여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필연적으로 사람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것보다 단점을 고치는 데에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그 과정도 즐겁기 힘들다. 자신의 장점보다 단점을 더 많이 생각하며 하루를 보내는 사람이 과연 행복할까? 본인의 타고난 기질과 성향을 바꾸기도 쉽지 않고, 무엇보다 단점을 내가 아무리 없앤다 한 듯 완벽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으며, 또 내가 단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장점이라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내 장점을 단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그렇게 남의 말을 곧이곧대로 다 듣기 시작하면 본인 고유의 장, 단점도 없이 희끄무레하고 별 볼일 없는, 영어로 말하면 'Basic'한 사람이 된다.
Basic 한 사람은 영어권에서 긍정적인 의미보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는데 나는 처음에 누군가가 basic 하다는 영어 표현이 왜 부정적으로 쓰이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한국사회에서 자란 나는, 유행을 따르고 너무 튀지 않고 자기스타일이나 주장이 별로 없으며 특별히 모난 점 없이 섞여 들어간다는 건 좋은 사람이 아닌가? 싶기 때문이었다.
누구나 뭐 딱히 같이 일하기엔 나쁘진 않지만 그렇다고 나를 굉장히 좋아해 주는 사람도 없는. 누구나 싫어하지 않는 사람은 다르게 말하면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된다. 어떤 문제에 대해 확고한 관점과 의견을 가지다 보면 나에게 찬성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같이 따라오게 돼있다. 모든 이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다 보면 나를 잃게 된다. 나만의 관점과 생각을 확고히 가지자!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스톡홀름의 디자인 에이전시 SNASK의 캐치프레이즈는 이렇다. Make enemies & gain fans!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엄청 좋아하지만 싫어하는 사람도 있어. 근데 뭐 어때? 좋아하는 사람에게 집중하면 되는 것이다.
오늘 시간이 난다면 펜을 집어서 공책에 한번 써보자.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의 장점과 단점 표를 만들어서 한번 적어보는 것이다. 그리고 생각해보자. 내가 가진 장점들을 어떻게 최대한으로 활용할 수 있을까? 내가 가진 장점을 최대한으로 표현할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내 장점과 잘 맞는 사람 유형은 무엇일까?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내 단점이 잘 생각나지도,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