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큐레이터를 꿈꾸게 된 이유
북큐레이터라는 직업을 알게 된 건 어느 독립서점 주인을 통해서였다. 북큐레이터 세계로 입문하게 한 위인(?)은 합정역 근처 독립서점 운영자인 김소영 전 아나운서. 본인은 한때 그녀의 별 그램에서 살았던 팔로워였다. 그녀는 책 한 권을 집필할 정도로 글솜씨가 좋은데, 인별 그램에 올린 서평을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래서인지 그녀 자신을 북큐레이터로 소개하는 프로필은 당위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무엇보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들어봤을 법한 큐레이터가 책 분야에서도 존재한다니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큐레이터라는 타이틀이 주는 근사함만으로 북큐레이터를 꿈꾸게 된 건 아녔다. 누군가에게 좋은 책을 추천하고 추천받는 것이 좋았을 뿐이다. 추천받은 책을 위해 기꺼이 시간을 할애하는 것 자체가 멋진 일이라 생각됐다. 가령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라는 책을 추천해주었을 때 '몰입감이 좋고 술술 넘어가더라. 현실에도 그런 고민상담소가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한 줄 평에서 오는 작은 뿌듯함으로 시작된 것이다. 누군가에게 추천하는 것이 책이 될 수도, 음악이 될 수도 또한 음식일 수도 있는 것처럼 가볍게.
북큐레이터를 꿈꾸게 된 또 다른 이유는 무수히 쏟아지는 책의 홍수 속에서 좋은 책을 고르기 수고로워진 현실 때문이기도 하다. 여러 대형서점의 북 큐레이션을 보며 느낀 건 이제 전문가뿐만 아니라 평범한 사람도 작가가 될 수 있는 세상이 열렸다는 것. 책이라는 것은 출판사의 기획력과 작가만의 특별한 색깔이 덧입혀진 글이라면 소비할 수 있는 콘텐츠로 인식되고 있다. SNS에 올라온 글까지도 책으로 출판되는 등 무수히 많은 책이 쏟아지고 있다. 작가라는 사람은 마땅히 사회의식을 갖고 살아가며 대중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지성인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이미 고물처럼 여겨지는 세상이다.
좋은 책을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인데, 가판에는 사람들의 눈을 현혹시키는 책들이 널려있다. 가끔 제목과 표지에 혹해서 펼쳐보았지만 기대에 못 미치는 책을 보면 당혹스럽다. 읽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드는 현실에서 출판사와 서점도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었으리라.
독자들에게 많은 선택지가 주어진 게 축복인 것일까? 알맹이를 골라내야 할 수고가 많아진 것일까? 판단은 독자들 각자의 몫이기는 하다. 좋은 책을 읽는 것만큼이나 좋지 않은 책을 읽지 않은 것도 중요하다는 어느 작가의 말이 생각난다. 본인처럼 책을 통해 위안과 위로를 얻고, 잠시 쉬어가는 시간이 중요한 사람들이 더러 존재한다. 책은 우리 같은 사람에게 쉼인 것이다. 북큐레이터로서 누군가를 독서의 한 자락에서 쉬게 하면 좋고, 나아가 그 사람의 인생까지 바뀌게 한다면 더더욱 좋다. 사람이 책을 만들고 책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처럼, 내 추천 책이 한 사람의 인생을 나락에서 천국으로 끌어올리는 꿈을 꾼다면 너무 허황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