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의 온도
너도 알겠지만 나는 참 막내스럽다. 사람들이 막내에 대해서는 장녀나 장남보다 어떤 역할을 기대하지는 않은데, 어떤 쓸모를 느끼게 하는 종결어미 ‘~스럽다’라는 말을 붙이는 게 맞는지는 모르겠어.
막내스럽다는 건 베푸는 쪽보다는 받는 쪽이고, 내가 바라지 않아도 도움이 필요할 것 같은, 또는 도움을 주고 싶은 존재이긴 하지?
그런 내가 너한테 집 김치 같은 걸 담가주고 싶더라. 코리아 마트에서 파는 김치가 훨씬 맛있는데도 난 굳이 무를 썰고 양념을 만들어서는 중간중간 맛을 봐가며 정성을 들였고. 특히 너희 집에서 저녁 식사로 라클레를 해 먹던 날, 깍두기를 쓱 만들어 식탁에 한 접시 내어놓고, 나머지를 냉장고에 탁 넣어주고 보니 어쩐지 나를 따라다니던 그 막내스러운 꼬리표가 떨어지는 것 같았다.
네가 좋아해 주니 참 다행이었어. 다음에는 더 많이, 더 깊은 맛으로, 엄마 것 같은 프로페셔널함을 더해 보겠다는 결심까지 하게 되더라. 큰딸들이라면 어쩌면 같은 상황에서 정성이라는 마음만 신경 쓸 텐데, 나는 막내스러움을 벗어나 엄마 같은 마음을 흉내 내려니 조금은 어색할 것 같더라고.
물론 내 깍두기에도 진심은 가득했어. 곁에서 가족같이 챙겨주는 존재로서 우정을 다짐하고픈, 오랜 외국 생활에서 비워진 한국적인 정서를 친구로서 채워주고 싶은 마음. 알지?
12월 라클레. 뜨거운 치즈는 각종 재료들과 어우러져 입안 가득 풍미를 채우고, 꿀꺽하자 내장을 감싸고돌며 금세 몸이 데워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우리는 느끼해진 위장을 시원하게 달래줄 게 필요해서 보통 때라면 코니숑(cornichons)을 미친 듯이 집어 먹었을 텐데. 이 날은 내가 만든 엄마스러운 깍두기로 데워진 위장에 마음까지 훈훈하게 데웠었지.
친구야. 다시 파리에서 네 어린 딸들도 맛있어할 김치를 한 두어 박스 담가주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