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Madame Kyu
Dec 26. 2021
“미안할 필요는 없고, 건승하셔라”
도시좋은사람
비꼬는 의도는 아니었어요. 예의를 갖춘 문자에 저도 예의를 갖춰 답변을 주려던 거였는데,
‘건승하십시오’라고 전한 제 의도가 사족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입찰에 함께 컨소시엄으로 들어갈 업체 대표가 막상 제안 준비 킥오프에서 못하겠다고 해서 일이 곤란해졌거든요.
비즈니스의 기본은 약속 아닌가요? 그런 수준의 사람을 뭘 믿고 이 중요한 입찰을 같이 해보자고 했는지 스스로가 한심스럽습니다. 업무 협약서를 쓴 것도 아니고, 서로 친분도 없는데 거절이야 할 수 있죠. 그런데도 말입니다, 왜 애초에 하겠다고 설레발을 쳐서는 남의 회사의 사업 기회를 망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정중한 거절의 언어를 쓸 줄 아는 인간을 존중합니다. 애석하게도 저 대표는 약속을 위배한 처지면서, 미안함을 전하는 언어가 경박했습니다. 다른 사업 기회가 생겼고 실질적인 돈 액수가 눈에 보인 모양입니다. 눈앞에 놓인 이득 앞에서 어쩌면 작은 사업을 하는 대표 입장에선 당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곤궁함 앞에서도 품위를 지키는 게 길게 가는 사업가의 면모라고 봅니다. 비즈니스에도 인격이 있으니까요. 사람끼리 하는 일, 사업의 태도는 대표의 인성을 담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가 보내온 문자는 퍽 예의를 갖춘 척하면서 빨리 이 불편한 거절의 과정을 끝내고 싶어 하는 게 느껴집니다. 저로부터 ‘알았습니다’라는 짤막한 회신을 받고 싶어 하는 조급함이 느껴집니다. 제 이득만 따져 남 피해를 주든지 말든지, 가짜 예의로 닳고 닳은 인간의 애처로움이 느껴집니다. 물론 사업하는 사람이 이득만 봐도 되죠. 이득만 보는 사람과 저는 비즈니스를 하고 싶지 않을 뿐입니다.
돈 되는 일, 열심히 좇아다니는 그를 응원하는 척, 저는 문자로 기회가 되면 다시 보자는 새빨간 거짓말을 했습니다. ‘건승하십시오’라는 한마디를 남기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