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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dame Kyu Oct 07. 2022

오늘 날씨 맑음, 오늘 나는 늙음

싱글과 같은 결혼 생활을 하는 40대의 나. 삶은 시간과 경험의 축적의 산물이고, 우리를 둘러싼 외적인 변화와 시류를 자연스럽게 받아내는 때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 살아지는 대로 사는 것이 인생이라고 정의 내리는 게 그다지 어색하지 않다. 극복과 도전이라는 명제가 잘 사는 인생이라고

프로그래밍된 사회를 살아왔음에도, 나는 그냥 '살아낸다'보다는 '살아진다'가 삶 대한 더 가까운 정의 같다. 내 성격이나 성향을 분석해주는 MBTI나 이보다 더 전문적인 '자기 강점 테스트'의 결과를 놓고  봤을 때, 사실 나는 '살아진다'보다는 '살아낸다'에 더 적합해 보이긴 한다. 특히 '전략적 사고'의 영역에서 가장 높은 스코어를 보이는 결과만 놓고 보면 그렇다. 전략적 사고. 보이는 현상을 그대로 보지 않으려는, 즉 자연스러운 흐름을 거슬러 뒤집어 보고, 의심해보며, 더 나은 해법을 찾아가려는 기질인데, '살아진다'의 모양새와는 반대되는 것 같아서 말이다. 가진 기질은 삶을 정의하는, 혹은 정의하고픈 방식과는 차이가 있는 건가 보다.


만약 이 타고난 전략적 사고의 기질이 '살아내는 삶'으로 이어진다면, 나는 아마 지금쯤  야심만만하고 성공 지향적인 인간으로 살고 있겠지. 반면 그 기질이 '살아지는 삶'으로 이어진다면,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며 살고 있을 것 같다. 잘 모르겠다. 어떤 모양새로 삶을 대했는지는 헷갈리지만, 확실한 건 있다. 야심 찼으나 목적은 없었고, 몰입했으나 이 또한 목적은 없었다는 것이다.

 

마흔 넘은 지금 과연 나 스스로 계획한 것이 있었을까라며. 계획보다는 기분이 먼저였던 20대를 보내고, 30대에는 최소한의 삶을 지탱할 수 있는 독립에 연연했고, 부모를 떠나 독립하는 인간이 맞닥뜨린 정서의 불균형을 위해 자연스럽게 결혼을 선택하기도 했다. 그리고 40대. 여전히 '살아지는 삶'으로 내버려 두어도 될까. 구체적인 목적이 없었기에 목적을 달성했는지, 실패했는지 평가 내리지 못한다. 내 인생의 성적표는 세상이 평가해주는 대로, 때로는 기꺼이 수긍하고, 때로는 가슴 아프게 수긍하며 매번 무탈했으면 됐다는 결론을 내리곤 했다. 행복에 대한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벌어질 일은 벌어지고, 피해 갈 일은 피해 간다며 일희일비하지 않게 된 지금이기도 하다.

      

어깨동무하며 어우러져 지내는 사람들은 나의 자화상 같고, 나의 재능이라고 믿었던 것은 그것의 날이 무뎌질수록 오히려 편안해졌다. 혼자서 굳이 안 해도 되는 일은 같이 하고, 같이 나누고자 하는 사람이 되었다. 처음으로 맛보는 내 안의 변화, 이것이 나는 왠지 '늙음'의 느낌 같다. 나 자신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그저 몰아붙이기만 한 때가 지금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 것을 보면. 분명 이것은 '늙음'의 느낌이다.


비록 이토록 맑은 일요일 오후 나는 회사에 있지만, 오늘의 이 늙는 맛의 느낌은 신선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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