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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dame Kyu Nov 09. 2023

나만의 서재. 나만의 세계

첼로가 있는 서재


작가의 삶을 사는데 필요한 게 '자신만의 방'과 '약간의 돈'이라고 한 버지니아울프. 나는 그녀의 문학적 깊이나 지적인 고찰은 잘 모르지만, 독자의 상상력으로 본 그녀는 다정하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곁에 있으면 깊은 나락으로 빠질 것 같은 여자였다. 그 시대의 '여자'로 사는 버지니아 울프의 삶에 드리워진 곤궁한 열망, 웃음기 하나 없는 비련한 얼굴,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의 글과 생각에서 배여 나는 지독한 고독을 마주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버지니아 울프가 그녀만의 방을 온전히 가졌기를 바란다. 그 방은 단순히 그 시대의 여성들이 처한 불평등을 의미하는 것 이상의 어떤 비전이기를. 방의 소유를 통해 자유롭게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고 싶은 염원이기를. 어둡고 깊은 고독으로 점철된 삶일지라도 그 중심에 자리 한 창작이 생명력 있는 에너지이기를.


우리집 설계를 할 때 애초에 내가 바랬던 건 나만의 서재였다. 은 땅에 탑처럼 짓는 집이라서 층별로 쓰임을 촘촘히 설계하는 게 필요했다. 그래서 한 층은 아티스트인 남편의 작업실을 우선적으로 계획한 후 자투리 공간을 내 서재로 만들기로 했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 남편의 공간이 내 서재 때문에 구조와 면적이 애초 예상했던 것보다 어쩐지 옹색해지는 것이다. 남편과 건축가는 내 눈치를 살피며 서재 면적을 좁히거나 구석진 곳으로 위치를 바꾸는 등 방법을 찾으려고 했다. 나만 이 서재를 포기하면 남편의 작업실이 넓고 괜찮아질 텐데... 그래서 서재를 포기하겠다고 했다. 대신 주방이 있는 층을 내 공간으로 삼으면 된다고. 하지만 남편은 이 집을 짓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아내가 갖고 싶어 하는 서재를 반드시 만들겠다는 뜻을 밀어붙여 결국 내 서재를 가질 수 있었다.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랬다. 아내의 서재가 남편의 작업실보다 우선할 수 없다는 것, 내 서재의 처지 버지니아울프의

[자신만의 방]과 다름이 없는 것 아닌가... 물론 투쟁하듯 소유할 수 있는 강도는 아닐지라도, 어쩐지 동등한 인간이, 동등한 꿈을 꿀 수 있는 자격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내가 남편을 위해 오랫동안 원했던 서재를 포기하려 한 게 그다지 아름다운 양보 같게만 느껴지진 않았다.

버지니아 울프와 다른 점이라면 나는 삶에 드리운 곤궁한 열망도, 비련한 얼굴도, 지독한 고독을 지니지 않은 인간이며, 작업실을 소유하며 미지의 것을 꿈꾸는 남편과 같이 나 또한 서재를 소유하며 내 세계를 꿈꾸는 하나의 인간이라는 점이었다.


손바닥만한 협소한 방일지언정 나는 '나만의' 공간을 갖고자 했다. 공간이란, 실은 시간을 품는다. 이 방의 문이 닫히면 나는 집과 분리된 세계, 크게는 익숙한 세상과 분리되며, 나만의 새로운 시공간을 만게 된다. 그래서 이 세계는 발견되거나, 창조되며 오롯이 나로 인해 소유되고 점유되는 무언가가 된다.


아늑한 빛온도와 따뜻한 촉감의 물건들. 넘치는 생각들을 진정시키려 찬찬하게 시작해 본 글쓰기는, 이 작은 나만의 세상, 태고의 기록이 된다. 꼭 읽어야 할 책들만이 손 닿는 곳에 놓인다. 책상 앞의 커다란 창문은 이 태동하는 작은 세계와 분리된 낯익은 세계의 경계선이 된다.


거기에 방 한켠에 놓인 첼로. 첼로의 울림은 이 세계의 시작은 아름다웠다고, 아름다울 거라고 축복한다. 빨간 케이스에 담긴 이 첼로는 내가 만드는 세계가 늘 이상적일 것이라는 소망의 상징 같은 것이기도 하다. 나의 방. 나의 세계. 아름다운 여정.


+쿠에른의 그림풍을 닮은 내 서재. 시선을 끄는 오늘의 오브제는 빨간 첼로 케이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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