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지금 살롱
점심밥도 못 먹을 정도로 일 많은 날. 밤 10시가 되어서야 간신히 숨을 돌린다. 이런 날, 몸은 삶은 야채처럼 늘어져 집에 갈 힘조차 없다. 그 와중에 근근히 추스린 정신력 같은 기운은, 맥주나 한잔?이라며 그 시각 남아 있는 동료들을 꾀어낸다. 그리고 몸담은 업의 성격상, 그런 날들이 줄줄이 이어질 때가 많아서 단골집이 하나 정도는 생기기 마련. 생각 없이 발이 향하는 곳.
이름도 촌스럽지. 우리의 단골집은 서울골뱅이다.
을지로에는 골뱅이 거리가 있다. 용두동에는 쭈꾸미가, 신당동에는 떡뽁이가, 신림동에는 순대가. 장충동에는 족발이... 퍽 새삼스럽게도 나는 서울 같은 도심에 한 가지 음식이 집적되어 있는 거리가 있다는 게 신기하다. 바닷가라면 게장거리, 회타운, 조개구이집 같은 게 모여 있는 게, 산지이기 때문인데, 빌딩으로 국을 삶아먹는다면 모를까 세상 신선한 음식재료의 원산지와는 거리가 먼 이곳 서울 한 복판에 이토록 단일 종목으로 집성촌들이 생겨나는 게 신기하다. 산지와 상관 없이, 두고 온 고향의 음식이 그리워 실향민들이 사는 동네에 아바이순대집이 많은 건 이해할만한 일이지만. 골뱅이의 집성촌이 을지로에....? 골뱅이 통조림의 대표 브랜드, 유동 골뱅이의 연관성 따위가 있는 건지. 골뱅이 식당을 차린 아주머니가 성공을 거둬, 자식, 며느리, 사돈의 팔촌으로 전수된 비지니스의 밴드화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을지로에 골뱅이의 이름을 단 간판들이 즐비한 거리가 있다는 것은, 서울골뱅이를 드나들기 시작한지 꽤 지난 다음에야 알게 된 사실이었다. 만약 골뱅이 메인 거리가 몇 분 거리 안에 있다는 걸 알아더라도 우리의 단골집은 변함없이 서울골뱅이었을 것이다. 우리에게 단골집이란, 맥주맛집이면 그만이지, 골뱅이집에서 랍스터를 팔아도 상관없을 터였다.
무엇보다 서울골뱅이에는 변하지 않는 게 있다. 이치현과 벗님들, 푸른하늘, 조하문의 무한재생. 2017년부터 드나들었지만 "이 밤을, 이 밤을 다시 한번.. 당신과 보낼 수 있다면"은 변함 없다. 어쩌다 20대 팀원들과 함께 라면,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하는 무리와 그렇지 않은 무리로 나눠져 따라하는 무리에 섞이는 나의, 내 또래의 40세 언저리의 나이가 선명해진다. 50 대 사장님의 추억으로 하나되는 건 나같은 또래까지인걸로.
뭐 그렇게 수더분한 타입으로 살아본 적 없는 내가, 또 가끔씩 외부 미팅때문에 잘 차려입은 날에도 불구하고, 서울 골뱅이에서 "이모"를, "조하문"을, 세상 넉살 좋은사람처럼 한 두어 시간을 놀다 가는 곳.
골뱅이집에서 골뱅이를 먹지 않으면서 맥주 두어잔을 후딱 먹어치우게 되는 곳.
철지난 노래들의 무한반복 속에 파묻혀도 지루할 것 없는,
대단할 것 없이 그저그런 아저씨스러운 풍경을 짊어진 술집.
그렇게 을지로의 한 켠에서 보내는 그런 밤은 오늘도 개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