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서류천국의 나라이다. 그래서 오너입장에서는 직원을 고용하려면 또 일이 엄청나다. 심지어 작은 기업이라면 오너가 서류 작업을 직접 하는 경우도 많다. (남편에게 "그렇게 시간 많이 걸리는 일이어서 일에 지장을 줄 정도면 세무사를 고용하는 게 낫지 않냐" 했더니, 돈 아끼려고 직접 하는 케이스가 많다고.. )
그래서!!
직원을 고용하기 전에 "먼저 일해 보는 날"을 갖는다. 서로 일이 마음에 들고 계속 일 할 마음이 있으면 고용주가 고용을 제안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여기서 고용주는 이 날 일 한 부분에 대한 임금을 주지 않는다.
말 그대로 무임금 노동이다.
(남편말로는 고용을 하면 이 날 일 한 것에 대해 임금을 받을 수도 있다고 하는데, 반대로 말하면 고용되고 싶지 않은 자는 하루종일 일 해도 임금을 못 받는다. 저요!!)
* 참고로 엔지니어 같은 고임금 노동자는 이런 날이 없다.
Probearbeitstag, 구글링 해보니,
고용주와 고용자가 서로 알아가고, 고용자는 이 일이 적성에 맞는지 볼 수 있는 날로써 서로에게 베네핏이 된다고 적혀있는데...
진짜?? 어떻게??
그리하여 나는 금요일 오전 9시 30 전에 출근.
이 신발매장은 내가 본 한국의 백화점 안에 있는 ABC 신발매장보다는 10배는 큰 것 같다. 엄청나게 큰 매장은 2층까지 있고, 이미 오전부터 일하고 있는 직원만 대충 7명이 넘는 듯했다.
오너의 말과는 다르게 매장 오픈시간도 아닌데 고객들은 이미 매장 안으로 와서 신발을 찾는다.
매장이 크니 창고도 어머 하게 컸다. 지하 1층부터 1층, 2층까지 온갖 브랜드, 온갖 종류의 신발들이 가득했고, 고객이 원할 때마다 지하로, 1층, 2층으로 신발 찾으러 다녔다.
여기는 프로세계 그리고 나는 독알못.
고객들은 여기에 신발을 사러 온다. 그냥 구경하러 오는 매장이 아니다. 고객은 늘 쇼퍼를 찾는다.
남자고객이 "등산화 하나 사려고요. " 하면 쇼퍼는 등산화 추천을 해주고 재료 설명, 이 등산화의 장점, 산행할 때 조심할 것 등 까지 세세하게 알려준다. 그리고 고객은 등산화를 바로 산다.
아이가 오면 발 사이를 레이저로 재는 기계로 발 사이즈를 정확히 재고, 신발을 추천해 주고, 신발 밑창을 꺼내서 아이에게 발을 올려보라고 한 후 그다음에 아이에게 신긴 다음 걸어보라고 한다. 엄마가 " 흠.. 신발이 발에 저렇게 딱 맞으면 오래 못 신을 텐데.."
(이 작은 신발이 한국돈으로 14만 원 정도 하니, 엄마입장에서는 약간 큰 거 사주고 싶었던 듯했다)
쇼퍼는 고객에게 정확하게 " Nein"이라고 했다. 난 그들 옆에서 깜짝 놀랐다. 고객에게도 상큼하고 정확하고 깔끔하게 "아니"라고 말하는 이 쇼퍼 할머니.
" 아니!! 저 사이즈가 아이에게 딱 맞는 거야. 지금 너무 보기 좋아. 걸을 때도 아이 발에 완벽하게 발에 딱 맞고!~~" (나머지는 못 알아 들었다)
이 날 새로 배운 점은 모든 끈 있는 운동화는 끈을 죄 다 느슨하게 만들어 고객 발이 편안하게 들어갈 수 있게 만들어주고, 그들에게 신발을 신겨 준 다음에는 이 끈을 첫 번째 라인부터 쫙쫙 잡아당기며 묶어줘야 한다. 누구나 아는 상식인데 나는 여태 그렇게까지 운동화끈을 있는 데로 잡아당기며 신어본 적이 없고, 내 아이들도 그렇다. 순간 "여태 나는 운동화도 제대로 신고 살지 않은 건가?" 생각해 보니 답은.. 우리는 도시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백화점, 큰 마트들, 잘 만들어진 인도를 나는 주로 구두로 신고 살았고, 아이들 키울 때는 끈 없는 단화를 신거나 발레리나 슈즈 같은 걸 신었구나. 우리는 굳이 신발끈을 이렇게까지 묶진 않는데, 그건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독일도 인도는 잘 만들어져 있지만, 백화점 같은 실내는 별로 없고 야외활동이 대부분이고, 또 어떤 마을 들은 길이 돌멩이로 울퉁불퉁하게 만들어져서 구두로 걸을 수가 없다. 그래서 남편과 이 독일 사람들은 운동화끈을 매번 묶었다 풀고, 다시 신을 때는 또 끈을 있는 데로 쫙쫙 조여 신는구나.
* 독일 큰 도시에 가면 가끔 힐 신을 여자를 볼 수 있지만, 이런 작은 마을에서는 힐 신을 여자를 보려면 특별한 행사 때 말고는 100% 다 끈 있는 운동화를 신는다.
점심 때는 집으로 돌아와 방학 중인 아이들과 밥을 부리나케 만들어 먹고 다시 2시에는 이 신발가게로 돌아와 일을 시작했다.
6:30
오너와 나와 같이 일했던 두 분이 나에게 와서 오늘 하루 어땠는지 묻는다.
재미있었다. 그리고 사실 몸이 피곤하다.
하니, 재밌었다니 다행인데 여기서 일 하려면 B 2 레벨 수준의 독일어를 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여기서 일 시작하면 오래 일해야 한다고. 몇 개월, 몇 년 이렇게 일하는 건 여기서 안된다고 말해준다.
'아니, 고용되기도 전에 여기서 10년 20년씩 일 할 계획을 가지고 취업해야 하는 거야??' 갑자기 무서워졌다
오전에, 가장 젊어 보이는 쇼퍼에게 이 가게에서 몇 년 일했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18년 되었다고 했다. 그럼 이 할머니들은 도대체 여기서 몇십 년을 일 하신 건가...
대단하신 분들인데, 나는 주중에도 애들 잘 못 보고, 주말에도 일 해야 하고, 이런 삶을 몇십 년을 얘기하니, 가슴이 턱 막힌 데다가 , 쇼퍼 할머니 한 분이 속사포로 나에게 독일어 빨리 배우라고 손동작까지 크게 하며 혼내듯 얘기했다.
(내 키가 171인데 이 할머니는 나보다 컸다. 그 큰 덩치로 나에게 공격적인 태도로 얘기하는데, 순간 나는 위압감도 느껴졌다. 매너를 못 배우고 자란 양반인가 보다.)
그래서 답변하다가 독일어 단어 하나가 생각 안 나서 영어로 말했더니 셋 다 못 알아 들었다.
ㅎㅎㅎ
그니까,
너네 셋은 영어도 못하면서 상대방에게 " 내 모국어 빨리 배워! 집에서 당연히 독일어 써야지 뭐 하는 거야?" 한 거야?
나를 위한 조언이므로 대놓고 비웃진 않았는데, 정말 신기하리만큼 사람들이 비슷하다. 모국어만 할 줄 아는 사람들은 자기 모국어를 배우라고 강요한다.
그리고 영어 및 제2,3 외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은 상대방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존중해 준다. 그리고 언어 배우는 방법을 제안해 주는 정도이다.
심지어 어떤 독일인들도 말한다. 독일인에게 "영어 배우기"는 너무 쉽다고. 같은 단어도 많고, 독일어는 문법이 훨씬 더 복잡한데 비해 영어문법은 너무 심플하다고.
(7학년인 큰 아이 반 평균 영어점수가 독일어보다 높다)
이런 심플한 언어도 못하는 분들께서 나에게 저런 조언을 주시니 감사한 마음이 들어야 하는데 사실 그러질 못했다.
독일어 티브이도 보고, 독일어 공부도 하고 하지만 집에서 영어도 쓰는 건 사실이고, 그들이 언어를 강요한다고 언어라는 게 마법처럼 되지는 않으니까.
무튼 변명이라도 할까 싶었지만, 나는 9시간 내내 지하부터 2층까지 끊임없이 오르락내리락했고, 물 한잔, 잠시 앉을 새도 없이 이 쇼퍼들이 신발 팔면 박스에 쇼퍼들의 직원번호 적고 카운터에 갖다 줬다. 인센티브제도여서 그런지 쇼퍼들이 고객들에게 늘 찾아간다. 나도 어설픈 독일어로 약간의 고객들에게 신발을 팔았고, 저 무지막지하게 큰 할머니의 직원번호를 적어 카운터에 갖다 줬건만, 고맙다는 소리도 못 들었네.
그냥 지쳤고, 집에 가고 싶었다.
오너는 내일 토요일도 오전부터 와서 마감 때까지 프로
배아르바이츠탁 더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봤다.
아마 내가 일한 노동력의 댓가를 받을 수 있다면 Yes라고 할 수 도 있었을 것 같다.
'내일도 무임금으로 하루종일 일하라고??'
오늘은 이제 너무 피곤해서 쉬고 싶고, 하루종일 물도 못 마셔서, 지금 나는 너무 목이 마르고, 이 직업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해보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