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연골이 다 파열되어 수술을 했는데, 수술 후 3주간 집에서 회복하는 시간을 가졌고, 그 뜻은 나와 24시간을 3주째 같이 지냈다는 뜻이다. (무릎에는 특별한 큰 사건 없이 꾸준히 아파왔다. 축구 때문인가?)
오래간만에 남편과의 오붓한 시간이 될 줄 알았는데, 나의 짧은 생각은 오만했다. 그는 환자고 나는 보호자.
매일 아침 그의 수술자국에 드레싱을 해 주고, 반창고를 새로 붙이고, 그의 손발이 되어 움직였다. 아침엔 커피, 빵, 햄, 샐러드, 소스 등 1인용 식사엔 뭔가 필요한 게 많았고, 아이들 둘은 덤으로 내가 다 케어해야 하는 상황.
밥돌이들 둘에게는 밥과 반찬, 도시락 2개, 기차역 데려다 주기 등..
그리고 수술 전 그의 피검사 결과지를 받았는데 콜레스테롤 LDD수치가 최고점으로 나와 식단도 다 바꿔야 했다. 채소, 채소 또 채소.. 그리고 성장기 아이들 둘을 위해 단백질은 또 따로..
채소를 많이 먹는다는 건 할 일이 참 많다.
첫 번째 주는 견딜만했고, 두 번째 주는 우울한 그에게 힘을 북돋아 주려 노력했고, 세 번째 주엔 나도 마음상태가 점점 지쳐갔다.
어느 정도 목발로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된 남편은 남편이 있는 곳이라면 그 두 목발이 늘 어딘가에 기대어져 있었는데, 이 목발이 바닥으로 뚝 떨이 지면 세워주고, 주방 서랍을 열을라 치면, 목발이 주방서랍을 막고 세워져 있고.. 반복 ×1000 하자 이놈의 목발이 꼴도 보기 싫어졌다.
제발 방에서 안 나오면 안 되니?라고 말하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다.
본인은 오죽하랴..
그런 후 남편은 침대 위에서 누운 자세로 베개 자세를 바꾼다고 베개를 움직이다가 손가락으로 자기 눈을 찔렀다.
그리고 눈에 피가 맺혔다.
이게 가능하다니...
눈이 크긴 큰가 보다.
대화할 때마다 그의 크고 피 맺힌 눈을 2주간 봐야 했는데 볼 때마다 적응이 안 되는 나.
그리고 눈에 피가 없어져 갈 때쯤 남편은 테라스에 있는 나무난간에 이끼가 자랐다면서 그걸 청소하겠다고 했다.
그는 시아버지에게 무슨 기계를 빌려와 열심히 청소를 했고,
그날 나는 스위스에 사는 친구를 만나 오래간만에 좋은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다.
깨끗해진 발코니 나무 난간
그리고 그날 밤 그는 왼손이 아프다고 했다.
손을 구부릴 수가 없다고.
여차저차 힘들게 찾아간 병원에서는 Trigger finger여서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협착성건초염의 일종으로 손을 구부리려 할 때 총의 방아쇠를 당기는 듯한 저항감이 느껴지는 증상인데,
남편 말로는 독일 치고는 운 좋게 다음 달에 수술할 수 있을 거라 한다.
어쨌든 그래서 현재 그는 왼손을 못쓴다. 올해 들어 남편은 오래 걷지도 못하고, 직장에 다녀오면, 그는 식사하고 목욕을 하고 바로 침대에 누워 티브이보다 잔다.
그런 그가 어제는 베란다에 나와 나란히 앉아 있다가
"Do you still love me?"라며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물어본다.
그렇다며 힘내라고 대답해 주고 나는 생각했다.
그저 남편과 저녁식사 후 다 같이 산책을 하고 싶다고..
: 중증의 환자들과 그들을 간호하는 가족들의 수고는 내가 상상도 못 할 만큼 힘들 텐데.. 다들 힘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