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llochen Jun 20. 2024

체리 따 먹는 소소한 행복

체리는 책으로만 봤어요.

독일 날씨가 내내 춥다가 이제 볕이 조금 뜬다.


다양한 꽃들이 만발하였고, 시부모님 집 뒤 정원에 있는 체리나무에 체리들이 주렁주렁 열렸다.


한국은 은행나무들이 많지만,

독일엔 사과나무들이 진짜 많다.

배 나무, 체리나무, 살구나무 등 집집마다 심은 나무들은 다양한데 단연코 사과나무가 압도적으로 많다.

신기한 건 사과나무가 너무 많다 보니 사과수확을 다 못해 그냥 둔다. 계절이 바뀔 쯤이면 도로나 길가에 사과들이 죄 다 떨어져 나 뒹글고 있다.


동네 신문에는 집 주소와 사과, 체리 등을 따서 가져가도 좋다는 글도 종종 볼 수 있다.

물론 대부분 못생기고 벌레 먹은 아주 건강한 과일들이다.

실제로 체리나무를 보면 "우와~~~~" 소리가 나올 만큼

엄청난 체리를 대롱대롱 매달고 있는데, 전체 사진으로는 잘 안 보인다.

리나무들도 종자에 따라 어두운 빨간색,

밝은 빨간색 색깔들이 다르다.


그지, 우리도 다르게 생겼지.

다른 피부, 다른 언어, 다른 음식.


아들 강현이는 올해 들어 잔디 알레르기가 더 심해져 잠깐 체리 따는 와중에도 재채기를 엄청나게 했다.

한국에서는 풀 알레르기가 없었는데, 독일 풀들이 아이에게 안 맞는 듯하다. 하지만 아이는 지금 다니는 학교도 좋고, 친구들도 좋고 독일생활에 만족해한다. 특히 좋아하는 여자친구가 생긴 뒤로는 나의 잔소리를 듣고 바로 고친다.

ㅎㅎㅎ


"강현아. 머리 뒤에 떴어. "

"강현아, 그 옷은 좀 그런데.. 다른 티셔츠 입을래?"

"강현아, 파마해 볼래? 잘 어울릴 것 같아"



엄마표 아들의 파마머리.

반 친구들이 헤어스타일 엄청 잘 어울린다며, 심지어 한 친구는 "여자애들이 너 좀 좋아하겠다!" 라며 칭찬해 줬다고, 역시 엄마 말 듣길 잘했다고 한다.


한동안 고민이 많았다.

직업 찾기가 별 따기고, 검은 머리카락이어서 그런지 나를 채용하지 않는 곳도 많고, 다양한 선택권을 위해 도시로 이사 가자니 아이들은 이미 학교 친구들도 많이 사귀어서 이사는 옵션이 아닌 것 같다.


남편은 자기가 몰랐던 안 보였던 것들이 새롭게 많이 보인다고 한다. 그리고 슬프기도 하다고..

 최근 독일 투표결과로 이 나라가 싫어져서 한국으로 돌아가자고도 했다. 내가 이력서를 넣은 곳에서는 우크라이나의 금발머리 여자들이 죄 다 일하고 있다.

투표결과는 충격적 이게도 네오나치당(AfD)이 2위로 올라섰고, 무슬림의 혐오로 시작된 감정이 외국인의 혐오로 번지고 있다. (물론 코로나 전 후로도 아시안 인종차별은 이미 존재했지만..)

그리고 그날 나리가 놀이터에서 친구랑 놀다가 다른 남자아이가 다가와 " 야! 너 쥐 먹냐?"라고 했다고 한다.

남편은 이 인종차별을 지긋지긋하다고, 끝나질 않는다고 힘들어했다.

나리가 "나 괜찮아! 나는 "어! 나 쥐 먹어. 그래서 이제 너 먹으려고!!"라고 대답해 줬으니 괜찮다고 했다.


아이들이 이 나라에서 잘 성장해서 차별 없이 살 수 있을까..


아이들과 한국으로 다시 이사 가는 것에 대해 가족회의를 했고, 아들은 더 이상 환경변화를 원하지 않았다.

남편이 아들에게 말했다.

"그지. 우리가 원한다고 또 이사를 하는 건 너에게 공평하지 않지."


그래서 다시 원점이다.

애들이 행복하니 나도 행복하고, 어떻게든 잘 살아봐야 한다.


체리를 따며 느끼는 소소한 행복처럼 소소하게 행복을 꾸준히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일은,

자연은 참 좋다.


작가의 이전글 남편의 두 번째 수술을 기다리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