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파크 5주년 기념 인터뷰] #3 대안에너지기술연구소
“우리는 얼마나 알고 플라스틱을 사용하고 있을까? 이것은 참으로 무서운 질문이다. 음식물을 담거나 포장하는 데도 쓰고, 맨몸을 누이는 데도 쓰며 식량을 재배할 때도 쓰는 게 플라스틱인데도 아는 게 참 없다. 이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먼저 필요한 지식과 정보부터 전달하자고 마음먹었다. 플라스틱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는 일 또한 적정기술의 정신을 구현하는 길이다. 쓰레기 제로를 실천하고 순환경제를 이루기 위한 첫걸음, 적극적인 재활용을 생활 속에 실천할 때에만 가능할 것이다."
대안에너지기술연구소 강신호 소장(이하 강소장)의 신간 <이러다 지구에 플라스틱만 남겠어>의 서문에 실린 글이다. 짧은 단락이지만 이 안에 대안에너지기술연구소의 철학이 담겨있다. 대안에너지를 연구한다면서 갑자기 웬 플라스틱 재활용이야? 라는 질문이 나올 수도 있다. 대안에너지기술연구소는 태양광발전, 태양광에너지, 바이오에너지, 풍력발전기, 아쿠아포닉스, 페달파워 등 과학기술을 활용한 대안에너지를 연구하는 데도 관심이 많지만, 적정기술학교나 플라스틱대장간을 통해 지금 우리의 에너지소비에 대해 돌아보는 것에도, 쓰레기 제로와 재활용을 통해 플라스틱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는 것에도 몰두한다. 자원순환의 원칙이 적용된 재활용을 활성화하는 일은 대안에너지와 마찬가지로 지구 생태계를 위해서 꼭 필요하다. 모두 얽혀있는 문제다. 여러 가지 모습을 한 환경운동인 셈이다. 지구에서 얻는 자원은 인간의 것만이 아닌 자연 자산이기 때문에 개인의 소유나 용도로 독점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대안에너지연구소 강신호 소장과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Q. 대안에너지기술연구소는 요즘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가요?
서울혁신파크에 들어오기 전에는 에너지 자립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어떻게 효율적인 난로를 만들 수 있을까, 환경을 해치지 않으면서 따뜻하게 지낼 수는 없을까. 그런 고민을 했다면 서울혁신파크에 들어오고나서는 쓰레기 문제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쓰레기제로, 음식물쓰레기 처리, 플라스틱 재활용 문제 등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죠. 물질을 마구 소비하고 버리는 생활 양식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시작을 제가 있는 서울혁신파크 공동체에서 하고 싶었어요. 밖에 가서 환경 문제를 이야기하기 전에, 안에서 먼저 시작해야겠다 싶었죠. 시도한 결과를 밖에 많이 공유하러 다닙니다. 요즘은 지자체뿐 아니라 지역에서도 이런 관심이 높아졌어요.
강소장이 처음부터 순환에너지에 관심이 많았던 것은 아니다.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가스터빈 분야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가스터빈기술 분야를 활용하는 항공사와 발전관련 회사에서 20년 넘게 일했다. 그랬던 그가 2012년부터 대안에너지기술연구소를 운영하면서 기후변화 대응, 환경 보호, 재생에너지로의 전환, 쓰레기 제로 분야의 적정기술을 개발하고 보급하는 일을 해오고 있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궁금했다.
Q. 처음부터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지신 건 아니었다고 들었습니다. 항공사와 발전 관련 회사에서 20년 넘게 근무했다고 하는데요. 어떻게 대안에너지기술연구소를 설립하시게 되었나요?
처음부터 ‘플라스틱의 폐해’에 집중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공학박사로 연구소에서 ‘가스터빈’이라는 첨단 기술을 연구했었죠. 언젠가 귀촌한 친구의 집을 방문했던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친구는 옛날 집을 리모델링해서 살고 있었는데 저한테 문득 질문을 하는 거죠. ‘너 발전분야 전문가라며? 선풍기가 바람에 거꾸로 돌아가면 풍력발전기가 될 수 있을까?’ 모터를 거꾸로 돌리면 조금이라도 전기가 나온다는 것은 잘 알려진 과학이론이죠. 그래서 ‘전기가 당연히 나오겠지’라고 해놓고 보니, 그동안 생각지도 못했던 디테일들이 머리속에 마구 떠오르는 거였습니다. 선풍기를 얼마나 높게 세워야 할지, 기둥은 어떤 재료를 써야할지, 220볼트가 안 나오면 어떻게 해야할 지 등 질문들이 순식간에 떠오르면서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내가 하는 연구에서는 그런 부수적인 것들 말고, 더 전문적인 것들을 파고 들었던 거예요. 그러다보니 실생활에서 자연의 원리를 이용해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간단한 일을 전문가라는 사람이 답을 할 수가 없었던 거죠. 그때 깨달았습니다. 내가 아는 지식은 기업을 살찌우는 지식이지, 생활에 도움이 되는 지식은 아니었다고요. 그 뒤 2010년도인가엔 아랍에미리트에 원전을 수출하고 성과가 좋다고 나라에서 메달을 주더라고요. 저는 원전을 반대하는 사람인데, 제 신념하고는 맞지 않았던 거죠. 이런 생활을 오래할 수는 없겠구나 싶었습니다.
Q. 첨단 기술이 살찌우는 것은 기업이지 자연 생태계나 개별 인간의 삶이 아니라는 말이 인상적입니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첨단기술이 삶이나 자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있을까요?
스마트폰만 해도 그렇습니다. 어려운 기술이 적용된 첨단 기기죠. 거기에 매료되어서 쓴 후에 2년이 지나면 버리잖아요. 물론 첨단기기가 질병을 고쳐줄 때도 있고 일부 노동으로부터 해방시켜 주기도 합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자연환경이 망가졌어요. 사람들의 창의력이나 노동력이 퇴화되었죠. 전통의 지혜 같은 것들이 끊겨 없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바꿔야 할까요? 고도화된 물질주의는 어느 시점에서 중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까 말씀드렸던 핸드폰이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나 배터리 때문에 사용할 수 없게 될 때는, 새 핸드폰을 사는 게 아니라 칩이나 배터리만 바꾸면 되는 겁니다. 그런 환경을 만들어줘야죠. 조금만 머리를 써서 내가 고치면서 살면 자원도 절약되고 쓰레기도 덜 만들고 탄소 배출도 덜 하며 살 수 있습니다. 삶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기술을 생각해보는 거죠. 그게 적정기술입니다. 내가 모르면 나는 계속 수동적인 소비자로만 남지만, 뭔가 할 줄 알게 되면 능동적인 생산자도 될 수 있어요. 요즘 많이 쓰는 에너지 프로슈머란 말도 있듯이 생산한만큼 소비하는 효율적이고 주도적인 삶이 가능합니다.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은 문화적, 정치적, 환경적 면들을 고려하여, 삶의 질 향상과 빈곤 퇴치 등을 위해 적용되는 기술이다. 첨단기술과 하위기술의 중간 정도 기술이라 해서 중간기술이나, 대안기술, 국경 없는 과학기술 등으로도 불린다. 경험을 통해 배우고, 공동체가 주도해서 개발하고, 세계에 확장 가능한 기술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서울적정기술한마당 기획자이자 적정기술 활동을 하는 대표로서 강소장이 해줄 말이 있을 것 같았다.
Q. 적정기술은 무엇이며, 적정기술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적정기술의 원조라는 슈마허(경제학자 슈마허E. F. Schumacher, 1911~1977)는 적정기술을 주창할 때 세 가지 문제에 집중했어요. 환경오염, 화석연료 남용, 인간성 유지와 복원. 적정기술의 원칙은 작은 규모의 경제를 바탕으로,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하며, 환경에 무해하며, 지역의 인력과 자원을 활용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죠. 슈마허의 스몰 사상이 저를 매료시켰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에너지 분야로만 한정짓고 있어서, 어떻게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느냐를 다루는게 적정기술이라고 하는데, 그건 아니죠. 어느 분야든 다 적정기술의 개념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슈마허는 우리가 화석연료에 너무 의존한다고 비판했어요. 화석연료가 왜 나쁠까요? 비재생에너지이기 때문입니다. 한 번 써서 소비하면 다시는 되돌아오지 못하는 거죠. 그런데 부채의식도 없이 쓰고 있습니다. 따라서 재생가능한 에너지를 찾자는 거죠. 이를테면 햇빛, 풍력, 나무, 마른건초 같은 바이오매스가 원료가 될 수 있어요. 물질의 순환구조를 깨뜨리지 않으면서 생활하도록 하자. 자연과 생태계에 균형을 이루면서 소비하자. 그런 겁니다.
Q. 아까 핸드폰 예를 드시면서 지나치게 고도화된 물질주의로 인해 개인의 노동력과 창의력이 줄어든다고 하셨는데요. 다른 논문에서도 적정기술 실현이 주도적이고 자립적인 삶을 사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하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왜 그럴까요?
지금처럼 물질주의 상업주의가 팽배해 있는 곳에서는 사람들이 자기 아이디어를 낼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누군가가 제공을 하니까요. 그렇지만 대량생산을 목적으로 한 기업의 아이디어는 환경을 오염시키고 쓰레기만 양산할 때가 많습니다. 이걸 바꾸려면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아이디어를 내고 노동력을 투입할 수 있어야 해요. 그러나 기회가 없죠. 이건 누가 해야 하고 이건 누가 하지 말아야 하고 이런 생각을 깨뜨려야 합니다. 첨단의 끝은 어디입니까? 거기엔 끝이 없어요. 스마트폰은 영원히 진보할 겁니다. 걸어다니는 스마트폰이 나올걸요? 그래도 만족을 못 하겠죠. 왜 어느 시점에서 ‘충분해’라고 말하지 못할까요? 다른 길을 가보자라고 말을 했으면 좋겠어요. 생활과학, 시민과학, 생활기술 이런 이야기는 벽을 낮추자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용접도 하고 교육도 해요. 어렵게만 생각하던 용접을 직접 해보고 나면 사고의 범위가 달라집니다. 생활용접이라면 조선소의 선박을 만드는 용접일 필요는 없지요. 한번 배우고 나면 ‘파이프를 세워서 차양막을 만들어 볼까?’, ‘추우니까 이중창을 달까?’, ‘창고에 선반을 짜보자’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강연 가면 ‘전공이 아니라서’ 혹은 ‘문과니까’라며 질문을 머뭇거리시는데 모르는 게 당연한 거죠. 배우고 몸을 쓰면서 자신의 생활 속 문제를 직접 해결해나가면 주도적이고 자립적인 삶을 사는 데 도움이 됩니다.
적정기술과 순환에너지, 대안에너지에 대한 이야기는 통일된 맥락을 가지고 있다. 환경운동가들이 하는 먼 이야기가 아니라 결국 개인의 이야기로 돌아왔다. 강소장이 최근 플라스틱 관련 프로젝트를 집중적으로 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강소장은 <이러다 지구에 플라스틱만 남겠어>외에도 <플라스틱 프리>등의 책을 집필했다.
Q. 대안에너지, 적정기술과 관련해 다양한 활동을 떠올릴 수 있는데요, 그중 플라스틱 관련 책을 내신이유가 있을까요?
기후변화가 인류의 생존 문제를 결정하는 지구적 위기가 될 겁니다. 환경과학자들은 그 순간이 갑작스럽게 다가올 것이라고 해요. 북극의 빙하도 2030년이 되면 다 녹는다고 하죠. 또 누군가는 이미 지구의 환경오염이 티핑포인트를 넘어서서 할 수 있는 게 없다고도 이야기합니다. 그렇지만 왜 기후변화가 왔는지 알려야 합니다. 기후변화가 화석연료를 마구 태우는 것으로부터 왔다면, 플라스틱 환경오염문제는 화석원료로 값싼 소비재를 마구 찍어낸 결과입니다. 생활과학 속에서 모두가 인식하고 같이 대안을 찾아야 해요. 플라스틱은 지구를 서서히 망가뜨리는 암적인 물질입니다. 플라스틱은 미세 플라스틱이 되어서 물로 대기로 가게 되죠. 결국 에너지든 플라스틱이든 자원을 잘못 사용해온 생활문화로부터 왔습니다. 이걸 알리고 싶은 거죠.
강소장은 대안에너지연구소가 있는 서울혁신파크에서부터 모범 사례를 보여주고 싶었다. 서울혁신파크가 사회혁신의 살아있는, 현재진형형 사례가 되는 셈이다. 프로젝트 이름은 플라스틱 써저리<Plastic Surgery>다.
Q. 서울혁신파크 안에서 플라스틱 재활용을 실험하는 협업 프로젝트로 ‘플라스틱 써저리<Plastic Surgery>’를 주도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서울혁신파크를 청소하시는 분들을 만났었는데, 여기서 한 번 행사가 끝나면 마대자루로 수십 개의 쓰레기봉투가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서울혁신파크인데, 이렇게 쓰레기가 나오면 되나 생각을 하게 된 거죠. 미래청에서 나오는 쓰레기만이라도 제대로 배출을 해주면 재활용할 수 있는 플라스틱이 늘 것 같았어요. 뜻을 함께 하는 서울혁신파크 내 6개 단체가 모여 1년 정도 함께 프로젝트를 했죠. 팀명을 ‘플라스틱 써저리’로 지었습니다. 혁신파크에서 나오는 생활플라스틱을 좀더 세분화해서 모으고, 그걸로 파크를 상징하는 기념품을 만들자가 본래 취지입니다. 그래서 플라스틱 가공 장비 등 하드웨어 준비를 했지요. 그런 뒤 센터장, 자치회장, 미화반 분들을 만나 이 아이디어를 미래청에서 실현해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아이디어였나요?) 사실 플라스틱은 좀 더 세분화해서 모으는 게 필요해요. 즉 HDPE, LDPE, PP, PS, 페트, 기타 등 이렇게 세분화해서 모아놓으면 재활용하기가 휠씬 좋아요. 재질이 다른 스티커와 병마개도 분리하는 거죠. 이렇게 잘 모아서 팔아도 돈이 돼요. 지금은 돈을 내고 배출하잖아요. 그중 일부 플라스틱은 잘게 부수고 녹여서 다르게 활용을 해볼 수도 있겠죠. 그렇게 미래청 3층에서 6층까지 플라스틱 통을 더 놓고 입주단체 카톡방에 알렸죠. 센터와 자치회가 함께하는 거니 배출만 잘해주시면 연구소 직원들이 미화반 대신 수거를 하겠다고요. (성공적이었나요?) 잘 안 되더라고요. 층마다 편차가 있었어요. 이렇게 혁신적인 공동체에서도 문화로 자리 잡기가 힘들구나 생각했어요.
Q. 그래서 어떻게 방향을 바꾸셨나요?
일회용 플라스틱을 안쓰는 문화부터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워낙 불특정 다수인들이 출입하는 곳이 혁신파크이다보니 입주민들만이라도 먼저 시작해보자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기획하는 세미나나 포럼에서는 ‘일회용컵을 가져오지 마세요. 컵을 빌려드립니다.’ 공지하면 정말로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컵을 가지고 오시더라고요. 다른 시민단체나 대안단체에서는 이미 10년 전부터 그런 걸 시도하고 있었죠. 이런 사례를 만들어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에너지를 절감하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태양광으로 전기를 만들어 쓰고, 벽을 볏짚으로 만들어서 생태 친화적이면서 에너지효율도 높이고, 파크가 도심 속 공동체로서 이런 걸 해볼 좋은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강소장이 서울혁신파크에서 한 실험은 물론 이게 끝이 아니다. 장난감 리사이클링 업체 금자동이와 함께 만든 플라스틱 대장간이란 플라스틱 장난감 업싸이클링 프로그램도 있고 맛동의 음식물쓰레기를 처리하기 위한 음식물 자원화 실험도 있었다. 청년청 앞에 물고기가든을 만들어 수경재배로 식물을 키우고 거기서 재배한 상추로 서울혁신파크 입주민과 파티도 했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은 페달파워. 자전거 페달을 돌리면 믹서기도, 발전기도 만들어진다. 대안에너지연구소 연구 분야 중 하나인 페달 파워가 궁금했다.
Q. 사람이 직접 페달을 밟아 에너지를 만드는 페달 파워도 연구하고 계시는데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페달 세탁기, 페달 톱, 페달 펌프, 페달 믹서기, 페달 세절기, 자전거 발전기 등 많죠. 어느날 미래청 앞을 지나가는데 의자하고 테이블이 붙어 있는 책상이 버려져 있더라고요. 그걸 센터 직원에게 얻어서 높이를 높이고 밑에 패달을 붙이고 조명을 달았죠. 페달을 서서히 밟으면 불이 들어와서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할 수가 있어요. 핸드폰도 충전할 수 있죠. 에너지데스크라고 이름 붙였는데요. 사람들이 해보더니 힘들지는 않는데 책에 집중하긴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웃음) 페달을 돌리면 굉장히 빠르게 돌아가는 원형톱날도 있어요. 두꺼운 두께의 나무도 쭉쭉 자를 수 있어요.제일 기분이 좋은 게 페달 세절기인데 하나 만들어서 미래청 4층에 비치를 했었어요. 한 달 뒤에 가봤더니 패달이 부드러워졌더라고요? 사람들이 많이 쓴 거죠. 시중에서 파는 전기식 세절기는 자주 망가지기 때문에 쓸 때 조마조마하잖아요. 패달 세절기는 기계랑 내 몸의 교감이 가능해요. 다리의 효율이 100% 전달이 되는 거죠. 이런 패달 파워를 만드는 페달파워스쿨도 운영하고 있어요.
4개월 동안 진행됐던 <페달파워스쿨>은 일반 참가자들이 기초적인 기술을 배우고 페달 동력 장치를 직접 만들어 보는 프로그램이었다. 그 결과물로 페달로 힘을 얻어 작동하는 세탁기와 선반 톱(table saw)이 제작됐고, 연구소에서는 이 제품들을 지금도 계속 사용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의 연장선으로 대안에너지기술연구소에서는 <1.5도 적정기술학교>라는 프로그램을 개설했다. 1.5는 파리기후협약에서 지구 평균온도 상승폭을 제한한 목표치, 첨단 산업인 3D기술의 눈높이를 절반으로 나눈 숫자, 알고 있는 기술 1에 전환을 위한 가치 0.5를 더한 숫자다. 기술을 배우는 프로그램이지만 기술만 전달하는 것은 아니다. 기술 습득을 통해 생활 패턴을 바꾸는 것, 자급자족까지는 아니더라도 ‘기술로 자립’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Q. 2019 서울적정기술한마당도 함께 하셨죠? 행사 소개를 해주신다면요?
적정기술에 대한 여러 정의가 있어요. 정의를 계속 다시 내리는 것보다 어떻게 하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주면 이해가 더 잘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협동조합 이장」의 대표 임경수 박사, 『야생초 편지』의 저자이자 생태운동가인 황대권 위원장이 강의도 해주셨고요. 『오래된 미래』의 저자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와 함께 2003년부터 ‘라다크 프로젝트’를 같이 한 「로컬 퓨처스(Local Futures)」의 알렉스 젠슨 연구원도 <전통문화로부터 배우는 적정기술의 철학>이란 주제로 말씀해주셨어요. 특히 북한의 에너지와 적정기술 가능성에 대해서 알아본 것도 재밌었는데요. 「한스자이델 재단」이라고 유럽연합에서 설립한 제3세계를 돕는 재단으로 북한의 에너지와 농사 부문에 적정 기술을 적용하고 보급하는 단체가 북한의 적정기술 이야기를 들려주시기도 했죠.
2019년 7월 열린 서울적정기술 한마당에서는 참가자들과 함께 미세먼지와 쓰레기를 줄이는 요리법을 시연하고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쓰레기 덕후 소셜 클럽>이라는 다큐멘터리 상영회도 열었다.
Q. 강소장님은 사회혁신에서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시나요?
기존의 사회 이슈를 해결할 때 기술을 가진 사람이 해법을 제시하고 ‘당신은 쓰기만 하면 됩니다.’라고 하는 것에서 벗어나는 게 사회혁신이죠. 공동체 차원에서 그런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 적정기술이고요. 사회적 문제를 밑에서부터 여러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아이디어를 내서 앞으로 나아가가야 할 것 같아요.
Q. 서울혁신파크에 있어서 좋았던 점이 있다면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었죠. 같이 마주보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도 좋잖아요. 활동이 길건 짧건, 번창하는 사업이건 아니건, 저런 시도를 할 수도 있구나 하는 걸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습니다. 여기가 혁신 플랫폼이잖아요. 그런 사람들의 활동이나 사례들이 3~4년 뒤에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기는 도심에서 사회 혁신의 방향을 보여주는 곳이잖아요. 저기가면 에너지나 쓰레기 문제를 이렇게 혁신적으로 해결하고 있어. 이런 문화를 보여주는 곳이면 좋겠어요. 첨단 기술 디지털 기술보다는 실패하더라도 창의적이 실험과 시도가 일어나는 곳이요. 그리고 그런 실험이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가고 전파하는 플랫폼의 기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강소장을 만난 건 서울혁신파크 미래청 1층 카페였다. 그는 이 카페에는 일회용컵이 없기 때문에 텀블러없이 테이크아웃을 해달라거나, 일회용잔에 달라는 요청이 이상하게 보인다고 했다. 그는 이런 파크의 문화가 좋다. 그런 사소한 문화, 상식의 차이가 삶을 바꾸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안에너지기술연구소는 통합적인 과학지식과 기술능력을 이용하여 창의적인 연구의지를 실현함으로써 생태와 에너지 대안을 제시하는 곳이다. 이를 통해 대안적인 삶을 꿈꾸고 개척해 나가고자 하는 사람들과의 연을 넓혀, 느리게 가는 삶을 추구한다. 대안에너지기술연구소는 그냥 ‘기술’을 연구하는 곳도 그저 ‘환경운동가들이 모인 곳’도 신기한 발명품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 곳도 아니었다. 지속가능한 삶에 대한,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철학이 있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다. 강소장을 인터뷰한 후에 나도 플라스틱 재활용을 세 개로 나누어서 버린다. 사소한 움직임의 시작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그런 사소한 시작을 함께 할 수 있지 않을까.
글 ㅣ 박초롱
사진 ㅣ 서울혁신센터 홍보문화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