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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혁신파크 Jun 04. 2020

솔직한 게 죄인가요? 네, 어쩌면요!

[혁신파크 5주년 기념 인터뷰] #4 CHRD

모로코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말로 입힌 상처는 칼이 입힌 상처보다 깊다.”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말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곤 한다. 신념이 강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주장에 몰입하기 쉽고, 자신의 믿음을 공고히 하기 위해 상대의 의견을 폄하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말로 입힌 상처는 때론 육체적인 것보다 더 오래간다. <삶을 풍요롭게 하는 교육>의 저자 마셜 B. 로젠버그는 인간의 가장 내밀한 관계에서부터 국제정치적 갈등에 이르기까지 비폭력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비폭력대화의 목적은 질적인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나의 욕구/필요와상대의 욕구/필요가 동시에 만족하며, 서로 즐거운 방법을 찾는 것이다. 가정이나 학교, 기업 등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적용 가능한 대화모델이다.


서울혁신파크에 한국형비폭력대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 CHRD의 권소진(이하 권) 대표다. CHRD는 Community Human ResoucesDevelopment의 약자다. 공동체적 인적 자원개발이라는 뜻이다.


각기 다른 특성과 역량을 가진 조직, 공동체 또는 개인들의 연결을 통해서 융복합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교육회사, CHRD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권소진 CHRD 대표




Q. CHRD는 주로 어떤 사업을 하시나요?


CHRD는 교육을 통해 관계역량을 강화하고 또 그것을 바탕으로, 창의적이고 진취적인 공동체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곳이에요. 건강한 소통을 못해서 공동체 의사결정이 엉망이 되는 경우가 참 많거든요. 다양한 기술을 통해 공동체 구성원 간 신뢰를 회복시키고, 의사결정에 필요한 전문가를 매칭시키는 등 공동체의 좋은 합의를 이루어 내기 위해 필요한 모든 교육을 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특히 강점을 가지고 있는 분야는 갈등관리, 농촌개발·귀농귀촌, 사회혁신네트워크 이렇게 세 분야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Q. 행복한 인간관계, 농촌개발·귀농귀촌, 사회혁신네트워크까지 색깔이 좀 다른 것 같아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겠어요?


급변하는 현대사회의 흐름을 한 개인 또는 한 조직이 쫓아가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거 같습니다. 이런 불가능한 미션을 가능하게 하려며 제가 봤을 때 한 가지 방법밖에 없는 거 같아요. 각각의 개인 또는 조직이 정체되지 않도록, 다양한 개인들이 끊임없이 교류하고, 협업도 해보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역동이 일어나고 하는 것이죠.


그런데 그렇게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는다는 게 우리사회의 불신도 높고, 관계 스트레스도 높아서 쉽지가 않습니다. 저는 가능한 범위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거예요. 농촌교육경력이 오래 되었고, 서울혁신파크입주단체 대표를 하면서 형성된 사회혁신 네트워크가 풍부하고, 갈등관리 기술을 가지고 있으니, 제가 가진 모든 자원들을 활용해서 창조적 연결을 도모해 보는 거죠.


Q. 관계역량 강화와 관계의 기술에 관심을 가지시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어릴 때부터 자기 속마음을 제대로 말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답답함을 느꼈던 거 같습니다. 크면서는 그게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솔직한 속내를 드러내기 힘든 사회 분위기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됐고요. 그렇게 속내를 감춘 관계 또는 협상 등에서 많은 부작용들이 일어나고 있잖아요.


단적인 예로 우리가 인터넷에서 물건을 산다고 생각해 보세요. 판매자가 게시한 글의 신뢰도가 떨어지니까, 우리는 댓글을 통해 더 진실에 가까운 정보를 찾기 시작했죠. 그러다보니 판매자 측에선 홍보성 댓글 작업을 하게 되고, 소비자는 홍보 댓글과 진짜 댓글을 구분해서 보는 노력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벌어지잖아요. 속이고 싶은 쪽과, 속지 않으려고 하는 쪽의 끝없는 싸움이죠. 언젠가는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CHRD 권대표는 한국형 비폭력대화법을 개발했다. 권대표가 이야기하는 한국형 비폭력대화법의 키워드는 ‘솔직’이 아닌 ‘정직’이다. 솔직과 정직이 어떻게 다른지, 한국형 비폭력대화의 키워드는 무엇인지 궁금했다.


Q. 한국형 비폭력대화법을 사용하신다고 들었는데요. 한국형 비폭력대화법이 무엇인가요?


비폭력대화법은 자신의 감정과 욕구에 직면하고 그것을 건강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하는 매우 훌륭한 대화법이에요. 한때 유행했던 ‘나 전달법’과 비슷하게 보실 수 있는데, 나 전달법 보다 훨씬 더 구체화 된 소통법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나 전달법’은 주어를 ‘나’로 해서 내가 느낀 바를 표현하는 형태인데, 문장의 형식을 봤을 때는 분명 ‘나’가 주어인 듯 하지만, 실제 내용적으로는 ‘너’에 내한 비난과 원망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 숨어있는 오류까지 디테일하게 잡아내는 게 비폭력대화법이라고 보시면 될 거 같아요.


나 전달법이 솔직한 소통이라면, 비폭력대화법은 정직한 소통이에요. 의외로 솔직한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솔직한 사람에게 상처받아본 경험들이 있어서 그래요.


예를 들어 볼게요. ‘나 지금 무시당한 기분이야’라고 말한다면, 분명 진심을 솔직하게 말했는데도 불구하고, 듣는 상대방은 기분 나쁘고 억울한 마음이 들게 마련이에요. 그 안에는 사실 ‘네가 나 무시했잖아’라는 원망과 비난이 숨어있기 때문이죠. 이때 내 마음을 정직하게 표현한다면, ‘나 자존심 상해’ 정도가 되겠죠.


그런데 비폭력 대화법이 막상 교육현장에서는 ‘비현실적이다’라는 평을 많이 들어요. 서양에서 도입된 대화법이라 한국사회에 바로 적용하기에는 이질적인 부분들이 좀 있거든요. 제가 하고 있는 의사소통기술은 비폭력대화법에서 출발했지만, 좀 더 한국사회에 적합하게 변형된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Q. ‘정직의 기술’이라는 거, 구체적으로 어떤 기술을 말하는 걸까요?


정직이라고 이야기 하면 뭔가 뜬구름 잡는 것처럼 들으실 수도 있는데, 사실 정직에도 기술이 필요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공격적이거나 왜곡된 형태로 표출되지 않도록 연습이 필요하고요. 사회적으로는 누군가 진실을 이야기할 때 함부로 판단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수용해 주는 연습이 필요하죠.


Q. 정직의 기술은 왜 필요할까요?


최근 여기저기서 공동체 사업이 많이 활성화 되고는 있지만, 사실 목표 만큼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고 있지는 못한 것 같아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관계 스트레스가 높아서 그렇습니다. 과거 농경사회에서는 두레 품앗이 등 현실적 이유로 공동체가 필요했고, 그러다보니 조금 불편하더라도 참았던 거죠. 그런데 지금의 서울은 공동체 없이 살기에 아무런 불편함이 없어요. 오히려 공동체가 생기면서 감수해야 할 관계 스트레스가 더 치명적이죠. 그것을 해소해 주는 것이 공동체 사업의 필수 조건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런데,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사용하는 소통법은 본질적으로 공통된 오류가 있어요. 관계를 기술로 풀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죠. 스피치를 배우고, 파란색 셔츠를 입으면 상대방에게 신뢰를 얻을 수 있고, ‘솔’ 톤으로 얘기하면 친절해 보일 거라고 생각한다든지요. 하지만 그런 기술에 너무 집중하다 보면, 본질을 잊을 위험이 있어요. 등을 해소하기 위해선 상호 신뢰가 우선이고, 또 그런 신뢰를 만들기 위해서는 서로에게 정직해야 한다는 것이 본질이죠. 표면적 기술로만 해결하려다 보면 오히려 말에 대한 신뢰는 깨지게 돼요. 진심이 아니라 잘 포장된 말일 뿐이라고 생각하니까요.


Q. 비폭력대화법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 곳이 있을 것 같은데요. 주로 어디를 찾아가시나요?


공동체의 좋은 합의를 이루어 내기 위해 필요한 모든 교육을 한다고 보시면 돼요. 공동의 의사결정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갑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농촌 개발 관련 경력이 많아서, 농산어촌 마을공동체에 더 특화된 측면이 있는 거죠.


Q. 농촌에서 어떤 갈등이 주로 생기나요?


농림부(농림축산식품부)나 해수부(해양수산부)의 프로젝트에 선정되거나 변전소 설치 조건으로 마을에 보상금이 들어온다면 어떻게 될까요? 마을에 큰돈이 들어오면 그때부터 고난이 시작돼요. 이런 형태의 돈들은 공동 사업에만 쓸 수 있도록 되어있거든요.


Q. CHRD 프로그램에 대한 농산어촌의 반응은 어떤가요?


교육을 재미있어 하시는 편이에요. 이론적으로 대화법을 가르치기 보다, 농산어촌에 맞는 사례와 이슈로 이야기하니 재미있을 수밖에 없어요.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단순히 좋은 교육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당장의 마을사업과정에서 실질적인 효과를 내기를 바라요. 아무리 모범생이시라도, 교육받고 그걸 현장에서 바로 적용이 어렵거든요. 의사소통 전문가가 마을 사업 전반의 의사결정 과정에 더 적극적으로 결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행정적으로 여러 개의 사업들이 분리되어 각자 돌아가고, 교육 역시 그 사업들 중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에 마을공동체 의사결정 전반에 관여하기 쉽지 않더라고요. 담당공무원들의 인식변화가 상당히 필요합니다.


CHRD 권 대표는 자칭, 타칭 서울혁신파크의 오지라퍼다. 입주단체 소개집 <혁신의숲> 제작에도 앞장섰다. 이렇게 솔직한 그녀라면 서울혁신파크에 대한 애정 없이는 오지랖을 부리지도 않았을 것 같았다. 서울혁신파크는 권 대표에게 어떤 의미일까?


Q. 서울혁신파크에 들어오기 전과 후가 달라진 게 있나요?


서울혁신파크에 들어오고부터 뭔가 든든한 뒷백이 생긴 기분이었어요. 그 전에는 작은 오피스텔에 사무실이 있었거든요. 나라는 사람과 이런 사업이 있다는 걸 어떻게 알려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막막하고 고립감이 들었어요. 서울혁신파크에 오니까 나와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많이 생기더라고요. 세상 밖으로 나온 기분이었어요.


Q. 서울혁신파크에서 다른 입주기업과 함께 한 프로그램도 있으실까요?


입주단체들과 콜라보도 많이 했죠. 처음에는 주로 우리가 하는 교육 프로그램에 강사로 모시거나, 케이터링 등 제품을 구매하는 형태의 단순한 협력이었어요. 그러다가 마음 맞는 대표들끼리 수다 떨고 브레인스토밍도 하면서 재미있는 작당을 시작했죠. <미스터 론리>라는 프로젝트였어요. 프로젝트 부제는 ‘나는 나밖에 고용할 수 없는가’였죠. 서울혁신파크에 1인 기업가가 많거든요. 고정적으로 직원을 고용하기 부담스러운 1인 기업가들끼리 서로가 서로의 직원이 되어주면 어떨까 하는 발상에서 1인 기업가 네트워크를 확장해 본거죠. 협업이라는 게 네트워크의 양적 확장보다 ‘신뢰’와 같은 질적인 부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때 탄탄하게 다져진 멤버들끼리는 여전히 긴밀하게 협업하고 있고요. 결국, 사람이 남는 거죠. 그 멤버들을 우리끼리는 ‘파크어벤져스’라고 불러요. 언제든 도움이 필요할 때 달려와 주는 고마운 멤버들이죠.


Q. 2016년부터 두 해 동안 자치회 대표도 하셨다고요.


자치회장 임기는 본래 1년인데 저는 초대 자치회장이라 2년에 걸쳐 맡았어요. 당시 센터나 언론에서는 아름다운커피나 금자동이처럼 이름난 입주단체들을 조명하는 편이었는데, 자치회는 그 과정에서 자칫 소외되기 쉬운 작은 기업에게 조명을 비춰주려고 노력했어요. 혁신파크에 있는 단체들은 작든 크든 나름의 철학과 가치를 가지고 사회를 변화시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에요. 그 철학과 가치는 단체의 크기와 무관하게 각각 동등한 무게를 가지고 있어요. 그 가치와 철학이 홀로 있을 때는 사회를 변화시킬 정도의 독창성과 파급력을 갖기 어렵지만, 그것들이 서로 상호작용하고 융복합 시너지가 만들어 질 때는 비로소 혁신이라 일컬을 만한 성과가 난다고 믿어요. 혼자 하면 변화이지만, 함께하면 혁신이 되는 거죠.


Q. 앞으로의 비전이 있다면요?


누구라도 두려움 없이 자신의 속마음을 꺼낼 수 있는 사회 분위기와 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제 꿈입니다. 아마 죽을 때까지 하고 싶은 일일 것 같아요.




함께 꿈꾸기 위해 필요한 것, 그것이 바로 대화의 기술이다. 사회혁신을 꿈꾸는 사람들이 모인 서울혁신파크에서라면 더욱 필요한 역량이다. ‘네트워킹 파티’가 자주 열렸던 것도 그 때문인지 모른다. 돈이 아니라 의미를 좇는 이들은, 자신의 사업과 철학이 너무 중요한 나머지 때론 듣기를 소홀히 한다. 철학이 아집이 될 위험도 있다. CHRD가 제안하는 ‘관계의 기술’은 누구보다 서울혁신파크의 혁신가들에게 필요한 기술이 아닐까?




글ㅣ박초롱

사진ㅣ서울혁신센터 홍보문화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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