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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혁신파크 Jun 04. 2020

폐수처리장에서 전시회를?

[혁신파크 5주년 기념 인터뷰] #6 프로젝트C


런던을 가로지르는 템스강 남동쪽 해링턴 웨이(Harrington way)에 가면 대규모 공장단지가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공장인데 연기가 나지 않는다. 사실 이곳은 영국의 사회적기업 SFSA(Second Floor Studios & Arts)가 운영하는 예술가들을 위한 공간이다. 건축, 회화, 도예 등에서 활동하는 예술가 400명의 작업실이 몰려있다. 런던에 있던 공장이 중국으로 대거 이전하면서 버려진 공간이 재탄생한 사례다. 영국의 코트렐 하우스(Cottrell House)도 비슷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버려진 자동차 전시장을 지역 주민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하며 취약계층이 일하는 소셜 키친, 예술가와 시민이 소통하는 장으로 탈바꿈시켰다. GDP의 12%를 사회적경제가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사회혁신이 자라날 수 있는 토양이 잘 갖춰져 있는 스페인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찾을 수 있다. 2개의 층과 지하를 합쳐 전체 1천 제곱미터, 약 300평 정도의 빌딩에서 시작된 마드리드의 Utopic_US는 60년 동안 직물 도매상으로 쓰이다가 10년 넘게 버려져 있던 공간을 활용해 조성했다. 위층은 창조적이고 기술적인 분야의 전문가들이 채우고 아래층은 8개의 스튜디오에 보석상, 아티스트, DJ, 일러스트레이터, 디자이너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입주하여 활동하고 있다.


사실 멀리까지 눈을 돌릴 필요도 없다. 3만 3천여 평의 공간을 활용하는 서울혁신파크가 역사를 재탄생시킨 모범사례이기 때문이다. 서울혁신파크는 과거 질병관리본부가 있던 공간에 자리 잡았다. 오래전 지어진 건물이라 낡았고, 질병관리본부가 쓰던 특성 때문에 일반인이 선뜻 발을 들여놓기 어려운 공간이었다. 5년이 지난 지금, 청년허브, 사회적경제지원센터 등 다수의 중간지원 조직과 250여 입주사들이 이곳을 반짝반짝 빛낸다.


낡은 공간의 역사성을 보존하면서 그것을 새롭고 시민 친화적으로 만드는 데는 예술이 한몫을 했다. 영국의 SFSA도 예술가 400명이 자리를 잡으며 의미를 살렸고, 코트렐 하우스도 시민과 예술이 함께 호흡하는 장이 되었다. 서울혁신파크의 SeMa 창고가 갤러리로 변신하고, 예전 경비실이 지역 동호회를 통해 작은 갤러리로 활용되는 것이 그 예다. 그곳에 서울혁신파크가 시작하던 초창기부터 장소의 역사성을 주제로 꾸준히 전시를 진행해온 사람이 있다. 舊질병관리본부 폐수처리장의 공간이 담고 있는 스토리를 녹여내어 ‘인간과 환경’, ‘정화’, 그리고 ‘생명의 황홀경’이라는 테마로 물의 언어를 담론화한 물과 꿈展 L’Eau et les rêves 전시, 물水을 '생명과 죽음'의 테마로 다양한 조형적 언어를 통해 담론화한 <H2O:망각의 강 展> 등이 그것이다. 서울혁신파크의 공간적 역사성을 예술로 담았다. 공간과 시각을 중심으로 한 공공예술 프로젝트 단체 프로젝트C의 김은현 대표를 만나보았다.



김은현 프로젝트C 대표


Q. 프로젝트C는 어떤 단체인가요?


시각예술 중심의 전시기획 및 공공예술프로젝트, 문화예술 교육 사업을 하는 팀입니다. 주로 서울혁신파크의 공간적 역사성을 살린 전시를 많이 했어요. 서울혁신파크 안에서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어요. 지역에서 예술교육을 통해 예술가와 지역민이 소통할 기회를 만들어 내고 있는 거죠. 특히 집중하고 있는 사업은 도심 유휴공간에서 예술가들과 협업을 통해 전시, 공연, 퍼포먼스, 영상 등 다양한 장르를 융합해보는 것입니다.


Q. 서울혁신파크의 공간적 역사성을 살린 활동을 많이 하셨다고 하셨는데요.


서울혁신파크는 질병관리본부였다는 독특한 이력이 있잖아요. 역사성과 장소성을 풀어내기 좋은 공간입니다. 역사성, 장소성, 질병과 사회 문제를 연결해서 장소 특정적인 전시를 계속해왔어요.


Q. 특별히 기억나는 전시가 있으신가요?


<물과 꿈展 L’Eau et les rêves>, <H2O:망각의 강 展>은 과거 폐수처리장이었던 공간에서 전시가 진행되었는데요. 실험에 의해 오염된 물이 처리 과정을 거쳐 지역사회로 방출되는 스토리를 연구해서 작업했어요. 모든 것이 사회성, 문화인류학적인 맥락에서 해석되었죠. 2016년 10월 서울혁신파크 예술동에서 진행한 <H2O:망각의 강 展>전은 물에 대한 철학적, 신화적, 인문적, 사회적 해석을 통해 동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의 우리에게 현재성 시사성을 가진 물水을 '생명과 죽음'의 테마로 담론화한 전시입니다. 윤용근, 박성준 퍼포머가 보여준 ‘Baptism’, 이태원 에이미신이 보여준 ‘나르시스는 살아있다’가 있었죠.


프로젝트C에서 기획하는 전시는 전시가 열리는 장소에도 당대성과 역사성을 찾을 수 있지만, 설치예술 각각의 스토리에서도 현실과의 접점을 놓지 않는다. <물과 꿈>展의 전시 중 영상 설치작품인 물속의 도시(아티스트:김응수)는 충주댐 건설로 이제는 물에 잠겨버린 마을과 이 마을 사람들의 기억을 중심으로 사회 고발적인 주제를 다루는 다큐멘터리다. 이 전시는 클로징 퍼포먼스도 남달랐다. 약품냄새 가득한 폐수처리장을 정화하는 의식을 행하며 공간을 달래는 물과 꿈_빈방 퍼포먼스(퍼포머_김소은)도 있었다.


Q. 단순 작품 전시에서 그치지 않고 퍼포먼스나 교육을 함께 하시는군요.


<물과 꿈展 L’Eau et les rêves> 전시에서는 오프닝을 강연으로 했어요. 최수현 바이올리니스트의 오프닝 퍼포먼스가 이어졌답니다. 서울혁신센터 입주단체인 물푸레생태교육센터에서 ‘물(을 담은)동(네)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아트디렉터, 활동가 등이 그들의 경험을 공유하고, <물과 꿈>展 참여아티스트들과 함께 ‘환경과 아트’의 담론화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최수현 바이올리니스트가 ‘현絃 위를 흐르는 꿈’이라는 공연도 해주셨고요.


Q. 전시를 통해 시민의 서울혁신파크의 공간성에 공감해주시나요?


<물과 꿈>을 전시하는 동안에 은평구 산새마을 할머니들이 방문하셨는데요. 현대미술을 접할 기회가 없으셨던 분들일 텐데도 은평구의 역사와 함께 전시 내용을 설명해 드렸더니, ‘아!’ 하며 공감하는 모습을 보이시는 거예요. 보통 현대미술은 젊은 사람들만 향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나이 든 분이든 젊은 분이든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좋고 싫고를 떠나, 어떤 감동은 있는 그대로 느껴지는 거죠. 감동받지 않았다면, 굳이 억지로 강요할 필요가 있을까요? 판단은 각자의 몫으로 열어두는 것, 그게 현대예술 아닐까요?


프로젝트C의 한 축이 지역과 공간, 역사성을 활용한 예술 전시라면 다른 한 축은 지역시민들과의 소통이다. 2019년 10월에는 은평할머니예술단, 물색그리다, 맘들만들과 함께 서울혁신파크 한평책빵, 양천리갤러리에서 은평여성 생활예술 커뮤니티들이 전시, 체험 행사를 통해 지역민과 만나는 장을 기획했다. 은평 생활 예술 커뮤니티 ‘엮다’ 사업의 일환이었다. ‘시민참여형 아트 프로젝트’인 ‘재생의 정원 Le Jardin Retrouvé’은 사단법인세상아이가 주관하고 신한은행이 후원한 생태와 환경, 지구온난화와 자연재해를 주제로 한 재활용소재 아트프로젝트였다.


Q. 전시 외에도 지역민을 대상으로 프로젝트를 많이 하시는 것 같습니다.


장소 특정성이 있는 아트, 커뮤니티 아트를 많이 했죠. 지역민들과 교류하며 예술을 매개로 사회적네트워크가 이뤄지길 바랬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은평구에서 자랐어요. 서울혁신파크뿐 아니라 은평구에 대한 애착이 크죠. 서울혁신파크에 입주하기 전에도 은평구 내 전통시장이 죽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시장 내 빈공간에서 시각 예술 전시 프로그램을 기획한 적도 있었습니다. 은평구의 다양한 사회 계층과 커뮤니티 작업을 했지만 어르신들과의 공동체 미술 작업에 애착이 많습니다. 특히 은평 할머니 커뮤니티 아트 프로젝트인 ‘실타래 이야기’가 좋았어요. 제가 봉사해준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에요. 할머니들과 있는 게 사실 제일 편하거든요. (웃음)


은평할머니 커뮤니티와 2017년부터 시작하여 3년 차에 접어든 ‘은평구할머니+시각예술작가 협업 프로젝트’의 2019년 주제는 ‘노동의 가치’였다. 이 프로젝트 기간은 무려 6개월. 예술가가 할머니들의 협업과 그 작업물을 전시까지 하는 긴 여정이다. 서해영 작가나 김리아 작가 같은 시각예술작가와 함께 하기도 한다. 2018년은 ‘손의 기억’이란 테마로 수공업에 대한 할머니세대의 손노동을 일깨우고 할머니들 자신이 생산방식의 변화를 급격히 겪었던 세대임을 이야기하였다.


Q. 할머니들과 함께 했던 프로젝트가 전시로 꾸려진다고 들었어요. 어떤 전시가 있었나요?


2019년 10월에는 4월부터 10월 중순까지 진행된 워크숍에서 만든 창작물을 재구성해 상상청 1층에서 은평구 참여 어르신(김미순,김미옥,변옥순,송영순,송순남,이순자,이연주,정소녀,홍영화)과 김리아, 서해영 작가가 같이 [실타래이야기 Stories in Thread]展을 했어요. 이 기획은 공예가이자 사회운동가인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에게 영감을 받았는데요. 그는 산업화 이전의 생산소비 방식인 수공예와 노동의 가치를 높이 샀어요. 생활예술인 수공예를 통해 예술이 민중의 일상생활 속에 스며있길 바랬으며 노동의 가치를 소중히 여긴 사람이죠.


그 중 <나의 인생을 담은 옷, 수의 만들기>라는 작품이 있었는데요.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의 삶을 담는 수의를 할머니들 스스로 만들어 보는 작업이었습니다. ‘수의 만들기’ 워크숍을 할 때 한 할머니분이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새로운 ‘시작’을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어요. 규율과 격식을 깬 할머니들의 개성과 유머가 넘치는 ‘인생을 담은 옷-수의’를 통해 드러났죠. 수의는 각 잡혀 있다고 생각했는데 할머니들이 만든 수의는 예쁘고 소녀들이 입을 것 같은 옷이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할머니들의 긍정적인 삶의 태도와 자신의 삶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을 느끼고 배워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울혁신파크 상상청 1층을 지나면서 수의 전시를 보았던 기억이 났다. 내가 편견을 가지고 있던 수의와는 많이 달라 처음에는 수의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원피스, 꽃장식, 나비장식, 마음에 드는 문구까지. 수의의 장식은 밝고 단아했다.


Q. 수의를 만드는 작업에 거부감이 들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신뢰가 쌓이지 않았으면 함께 할 수 없는 작업입니다. 3년 정도 신뢰 관계가 쌓였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거죠. 수의의 역사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면서 할머니들 이야기도 들었죠. 즐겁게 수의 작업을 했어요. 전시를 하면서 참여하신 할머니들과 작가가 만나서 작업 설명하는 날이 있는데 할머니들이 삶과 죽음에 대해 깊게 생각을 하셨다는 걸 알게 되었죠.


프로젝트C의 김은현 대표는 작품을 직접 만들기보다 작가들을 모아 작품 전체를 기획하고, 시민과의 소통의 장을 여는 기획자 활동을 더 많이 한다. 프로젝트C 활동을 하기 전에도 문화기획 회사를 다녔다. 그의 작업과정은 어떠할까?


Q. 전시를 하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나요?


테마를 찾죠. 시간을 들여서요. 어떤 이야기를 할까 생각해봅니다. 그 후에 같이 할 작가를 섭외하고 텍스트를 쓰죠. 작가들이 이해하기 쉽도록요. 작업의 울타리를 만들어주고 그 안에서 작가들이 마음껏 뛰어놀도록 합니다. “○○씨, 내가 이번에 이런 주제로 전시 준비하려고 해요. 함께 할 생각 있어요?”, “좋아요.” 하나둘 작가들이 모이기 시작하고 마침내 제가 기획한 대로 눈앞에 실현되었을 때, 그리고 전시장에 방문한 관람객들이 작품에 각자의 의미를 부여하며 공감할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죠. (주제는 어떻게 잡으세요?) 저는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많이 생각해요. 감수성을 일깨우는 것이 예술의 사회적 역할인 것 같아요.


Q.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고민하신다고 하셨는데, 예술의 사회적 역할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 걸까요?


예술이 당장은 뭔가를 바꿀 수 없는 것 같지만 속도가 느릴 뿐 중요한 것을 바꾸더라고요. 조심스럽게 하나 둘씩요. 영화 도가니 같은 경우에도 도가니법이라고 지칭되는 법이 만들어지기도 하잖아요. 크게 임팩트를 주는 작품도 있지만 저는 작게 이쪽저쪽에서 사회적 문제를 제기하고 기류를 캐치하는 거죠. 그런 이야기를 전시로 하는 것이 간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해요. 지역민과 소통하는 공동체 미술 같은 경우엔 200명에게 기쁨을 줄 수는 없어요. 할머니 열 분이 작가들과 함께 소소하게 작업을 하는 것이 이들에게 그 순간 기쁨을 주는 게 다죠. 이 안에서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는 것 자체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프로젝트C는 2019년 11월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展을 기획하였다. (사)세상아이 주관하고, 종근당이 후원한 소아암인식개선 프로그램의 결과물을 시각예술로 전시화한 프로젝트였다. 2018년에는 은평구 어린이들과 참여 아티스트 2인이 ‘플레이! 실험실의 예술인문’ 워크숍 6회차를 통해 협업한 결과물을 설치작품으로 재구성한 ‘멋진 신세계’ 전시를 열기도 했다.


“학제 간교류가 강화된 시각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싶어요. 지역과 연계하는 프로젝트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지역과 소통하는 방법을 예술로 찾으려고 해요.”



글 ㅣ박초롱

사진 ㅣ서울혁신센터 홍보문화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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