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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펭귄 May 18. 2021

승일희망재단에 쓰는 편지

감사해요, 감사했어요.


  안녕하세요 :) 승일희망재단 박성자 이사님, 그리고 관계자 여러분!

  하루에도 꽤나 여러 계절이 공존하는 날들이네요. 5월은 계절의 여왕이라지만, 이 계절을 결코 온전히 즐길 수만은 없는 바쁜 날들을 보내고 계실 것 같아요. 재단의 손길을 기다리는 루게릭 환자들과 그 가족들이 여전히 많이 계실 테니까요.

 

  저는 얼마 전까지 승일희망재단을 통해 후원을 받았던 환우의 가족이에요. 얼마 전 수기 공모전에는 시기를 놓쳐서 참여하지 못했는데, 그동안 승일희망재단에서 받았던 편지들에 꼭 답장을 쓰고 싶어 이렇게 적습니다 :)


  승일희망재단을 처음 알게 된 건 저희 엄마가 한창 투병중이셨던 몇 년 전이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왜 처음부터 승일희망재단을 찾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지만 돌이켜보니 발병 초기에는 그냥 엄마가 루게릭 환자라는 사실을 마냥 부정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마냥 부정하고만 싶었던 시간들이 흘러 끝끝내 확진을 받고, 당시에는 시한부 선고 같았던 질병코드를 받아 들고 나서야 지푸라기 같은 한 줌의 끈이라도 잡고자 여기저기 알아보던 중 승일희망재단을 만나게 되었답니다.

  승일희망재단에서 심리적인, 그리고 현실적인 여러 가지 도움들을 받았는데요. 희귀 난치병이다 보니 뭘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정보가 없어서 그런 점들이 참 막막했었어요. 굉장히 희박한 확률로 발생한다는 이 루게릭 환자의 가족으로 살아가며 어두움 속에 갇혀 있던 저희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신 승일희망재단은 단순한 후원자가 아닌, 유일하게 연대할 수 있는 곳이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승일희망재단에 신청해서 받은 소소한 물건 하나도 투병과 간병 당시에는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단순한 물건 그 이상의 가치를 넘어서 우리를 기억하고 생각하고 후원해주시는 곳이 있다는 것. 그 자체가 힘든 시간을 견딜 수 있게 해 준 힘이었어요.

 

  코로나가 심하게 창궐했던 작년 봄, 마스크를 구할 수가 없어 두려움에 떨었던 시간들이 특히 기억이 나요. 정해진 시간에 맞춰 약국에서 한참이고 줄을 서야 겨우 공적 마스크를 구할 수가 있다는데, 주간병인으로 엄마 곁을 5분도 떠날 수 없었던 제게 약국에 가서 마스크를 구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어요. 겨우 구한 몇 장을 돌려쓰고 또 돌려쓰면서 일회용 마스크로 버티고 있던 그때 승일희망재단의 마스크 지원 사업을 알게 되어 간절한 마음으로 신청했었고, 재단에서 보내주신 100장의 마스크 덕분에 마스크가 귀하던 시간들을 이겨낼 수 있었어요. 집에 도착한 귀하디 귀한 마스크를 보면서 이 구하기 힘든 걸 어떻게 구해서 보내주셨을까, 어쩌면 늘 우리에게 이렇게 꼭 필요한 것들을 생각해서 보내주시는 걸까 하는 생각에 너무 감사해서 울컥했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지금은 이 세상에 계시지 않지만, 루게릭 환자셨던 저희 엄마도 승일희망재단에 참 고마워하셨어요. 후원사업에 신청한 게 선정되어서 엄마께 어깨를 으쓱하며 자랑을 하면 늘 눈을 반짝이며 기뻐하셨죠. 엄마를 떠나보낸 뒤 마음을 추스르느라 너무 늦게 쓰는 편지이지만, 승일희망재단에서 후원물품에 늘 같이 넣어 보내주시던- 한지에 정성스럽게 인쇄된 그 마음을 담은 편지에 언젠가 꼭 답장을 쓰고 싶었어요. 그리고 꼭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승일희망재단이 있어서 저희가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 그 힘으로 능히 힘겨운 시간들을 견뎌낼 수 있었다고, 루게릭 환우와 그 가족들에게 유일하고 따뜻한 도움의 손길을 건네주셔서 정말 정말 감사했다고 말이에요.    

  

  엄마를 떠 보낸 후에도 저는 여전히 블로그를 통해 승일희망재단의 소식을 보고 있고, 기도로 응원하고 있어요. 이런저런 새로운 사업이나 소식들을 들을 때마다 엄마와 지난 시간들이 떠올라 마음이 아려오기도 하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승일희망재단의 이야기들을 지켜보고 있는 것은 승일희망재단이 최종적으로 꾸고 있는 꿈 중에 하나인, 루게릭 환자를 위한 요양병원이 생기는 모습을 꼭 보고 싶기 때문이에요.

  사실 어쩌면 이제는 저와 상관없어진 일이라고 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저는 제 생의 가장 어려운 순간에 승일희망재단에서 받은 따뜻한 도움을 평생 잊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이제는 승일희망재단의 꿈을 작게나마 함께 응원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승일희망재단은 저희의 긴 겨울을 견디게 해 준 빛이었고, 그 기억들을 품고서 저는 남겨진 생을 열심히 살아내려고 합니다. :)


  작지만 제가 직접 만든 케이크도 같이 보냅니다! 냉장고에 넣으시면 안되고요, 상온 보관이라 오늘 안에 드셔야 해요 ㅎㅎ 전하고 싶은 마음을 케이크 위에도 함께 적어 보냅니다. 진작 보내드리고 싶었는데 너무 늦었네요 ㅠ_ㅠ 맛있게 드시고 오늘 하루도 특별하고 행복하게 마무리하셨으면 좋겠어요! 앞으로도 승일희망재단의 꿈을 함께 응원하겠습니다.


  저는 오늘 승일희망재단의 후원자 신청을 했어요.

  길고 짙었던 어둠 속

  저희의 희망이 되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감사해요, 감사했어요♥


  따뜻한 어느 날

  김펭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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