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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실이하늘 Mar 24. 2024

직장생활 속 감정이야기_결핍감

직장생활 속에서 마주치는 감정들을 다루는 우연한 계기

자신의 부족함을 감추지 않는 용기,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용기가 결핍감을 해소하고, 서로를 더욱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사전적으로 있어야 할 것이 빠지거나 모자라다고 느끼는 마음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결핍감은 물리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정서적, 사회적, 정신적으로도 다양하게 느낄 수 있다. 또한 삶의 질과도 밀접한 감정이며, 대수롭지 않게 내버려두면 질병으로도 나빠질 수 있기 때문에 관심과 관리가 필요한 감정이기도 하다.


다양한 배경을 지닌 구성원뿐만 아니라 내외부 이해관계자들과의 상호작용도 빈번하게 일어나는 직장생활에서는 특히 정서, 사회, 정신적 결핍감에 빠지는 경우가 많은데, 소외되거나 무기력해지거나 자존감을 잃어버리면서 깊은 결핍감에 빠지게 된다. 나아가 소속감이 약해지고, 자신감마저 떨어지면서 자신의 역할 등을 부정하는 등 심각한 단계에 이를 수도 있다.


상품기획팀 고 과장은 12년 경력의 베테랑이다. 나긋한 목소리 덕분에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이다. 하지만 의외로 고집이 센 편인데, 특히 과거 업무방식에 대한 고집이 강했다. 이로 인해 공동작업을 하는 대리 이하 팀원들의 불만을 키웠다. 이러한 상황을 인지한 홍 팀장은 고 과장에게 실무보다는 관리 업무에 집중해보라고 조언했지만 말로만 대답할 뿐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과장님, 판매처와 상품, 거래조건들을 종합적으로 관리하려면 이번에 새로 출시된 ○○○솔루션을 사용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양 대리, 그 솔루션을 사용하려면 새로 배워야 하잖아요?”

“○○○솔루션은 기능이 간단하여 조금만 배우면 지금보다 훨씬 빠르게 처리할 수 있고, 타 부서에서의 모니터링도 편리해요.”

“그냥 지금 하던 대로 하면 되는데, 굳이 바꿔야 하나?”

“지금 과장님과 저, 그리고 저기 두 명의 사원이 매일 이 업무를 하고 있어서 팀장님이 부여하신 새로운 과제는 시작도 못하고 있어요. 빨리 완료하고 새로운 과제에 집중하는 게 좋겠어요.”

“그럼 양 대리랑 사원들은 ○○○솔루션으로 작업해요. 나는 지금 방식으로 할 테니까.”

“과장님, 지금 방식으로 하시면 ○○○솔루션과 연동이 되지 않아 아무 소용이 없어요.ㅠㅠ 그리고 지금의 과장님 작업속도라면 팀장님께서 말씀하신 마감 일자를 맞추기 어려울 거예요.”     


고 과장은 모니터만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결국 양 대리는 홍 팀장에게 현재 상황을 보고하고, 조금 전 고 과장과 나누었던 대화도 알렸다. 잠시 생각해보겠다며 양 대리를 돌려보낸 홍 팀장은 잠시 후 사내 메신저를 통해 현재 고 과장 외 3명이 진행하고 있는 공동작업을 ○○○솔루션으로 진행하도록 지시하면서 고 과장을 공동작업에서 배제시켰다. 홍 팀장의 지시를 확인한 고 과장은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듯 평소와 같은 표정이었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그날 이후 퇴사만 하지 않았을 뿐 고 과장은 필요한 대답 정도만 할 뿐 입을 닫아버렸다.


모르기는 해도 양 대리가 의도했든 안 했든 고 과장은 지금껏 큰 문제없이 살아왔으니 오늘처럼 후배에게 끔찍한 무시를 당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해 마음을 많이 다쳤을 것이다. 도대체 내가 무엇이 부족해서 이러한 수모를 당하는지 납득할 수 없었고, 홍 팀장이 왜 양 대리의 말을 더 신뢰했는지에 대해서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테다.


결핍감은 타인에 의해서 생길 수도 있지만 자신이 소극적으로 대응한 결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앞에서 본 사례는 실제로 자주 발생하는 경우인데, 직급을 막론하고 역량이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공동작업을 할 때 빈번하게 생길 수밖에 없다. 잘하는 사람들로만 모아 공동작업을 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실제로 그렇게 팀을 구성하기에는 상황이나 형편이 녹록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업무 속도는 업무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단순한 반복 업무는 손이 빠르면 도움이 되고, 치밀하게 예측하고 타당성을 촘촘하게 점검하여 준비하는 기획서 작성 등은 경험이나 기획력이 필요하며, 협상과 같이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해결해야 하는 업무는 기존에 일면식이 있는 경우로 더 빨리 처리할 수 있다. 문제는 누군가가 업무를 처리하는 사람이 손이 빠른지, 경험이 많은지 등 어떠한 역량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지 못할 때이다. 또 다른 문제는 요즘 애들은 이렇다, 선배들은 이럴 것이다, 상사는 이럴 것이라는 편견이다.


앞에서 본 사례에서 양 대리와 2명의 사원들은 고 과장이 경력도 많은 베테랑이니 그 정도는 빨리 처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 수 있다. 따라서 이제 비로소 고 과장의 업무처리속도가 빠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인간이기에 쌓여가는 업무에 치이다보면 고 과장이 늦는 만큼 우리가 좀 더 빨리, 많이 하자고 마음을 먹기는 쉽지 않다. 이 지점에서 말 못할 갈등이 피어나고, 장기간 업무에 지치게 되면 갈등은 분노로 발전할 수도 있다. 


한편 거의 모든 직장인들은 직장생활에서 돌고 도는 소문들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소문이 사실이든 아니든 소문의 당사자가 된 사실을 알게 되면 참을 수 없는 모욕감을 느끼게 된다. 설령 미담이라고 하더라도 뒷담화로 오르내리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고 과장은 경력만 많지 손이 느려서 민폐래.”

“정말? 상품기획팀 애들 힘 좀 들겠네.”

“홍 팀장님이 고 과장을 좀 어떻게 해주셔야지. 그러다 애들만 잡겠네.”     


상황이 이렇다고 해서 모두가 퇴사하는 등 극단적으로 반응하지는 않는다. 누군가는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거라는 희망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누군가는 왜 빨리 퇴사하지 않은 거냐며 하루하루 관찰만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정도 상황이면 아마 홍 팀장은 개별적인 면담을 통해 팀이 안정될 수 있도록 설득하는 등 갖은 노력을 하겠지만 해결의 실마리를 쉽게 찾기 힘들 수도 있다. 우리가 함께하는 구성원의 결핍감을 해소하고, 서로를 더욱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부족함을 감추지 않고 공동의 이익을 위해 누군가에게 적극적으로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용기와 더불어 적극적으로 화답하는 상생의 인식과 조직문화가 필요하다. 


직장생활에서의 결핍감은 업무와 관련해서만 발생하지는 않는다. 소통과 상호작용, 성취와 인정, 조직과 개인의 다른 가치, 조직문화(편 가르기) 등이 있다. 이 외에도 당사자가 아니라면 생각하지도 못한 이유로 불거질 수도 있다. 세상 어디에나 완벽해 보이는 사람은 있어도 완벽한 사람은 없다. 누구든지 부족함이나 결핍을 자신의 한 부분으로 용기 있게 인정하고 스스로 우뚝 설 때야 비로소 소통과 협업이 더욱 강력하게 작동할 수 있고, 스스로 느꼈던 결핍감을 슬기롭게 해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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