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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욱 Nov 18. 2021

헌 집 줄게 새집 다오

두꺼비의 노래

 승용차 한 대 겨우 지날 만한 골목길에 노란 손수건처럼 매달린 주먹만 한 대봉감이 담장 너머로 주홍 인사를 건넸다. 담벼락에는 헤진 종이가 붙어있었고, 글씨가 흘러내려 몇 글자 알아보기 힘들었는데, 종이 아래쪽으로 희미하게 '내 집 지킴이'란 단어만 온전했다. 두어 집 건너 한집마다 대문 정중앙에는 노란색 바탕에 붉은 글자가 선명한 출입금지 스티커가 반쯤 떨어져서 작은 바람에도 혓바닥을 날름거리듯이 흔들거렸다.

 

 사람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 집들을 지나 한 모퉁이 집에 다다랐을 때 사내들은 멈췄다. 그 집은 1층 단층이었는데, 정원 한쪽에 작은 우물이 있었고, 그 뒤로 높은 플라타너스 나무가 담장을 넘어 넓은 잎이 무성한 가지를 골목까지 드리우고 있었다. 알갱이가 작은 포도송이가 매달린 짧은 터널과 한눈에 보기에도 십 년은 넘을 것 같은 옹이 불거진 철쭉이며 감나무들이 촘촘했다.

 

 사내 중 한 사람이 초인종을 눌렀다.

 "00 씨, 법원에서 점유이전 가처분 집행 나왔습니다."

 잠시 안쪽의 대답을 기다린 후에 사내의 말이 이어졌다.

 "아무도 안 계신다면 가처분 집행법에 따라 강제로 문을 열겠습니다."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자 사내들 중 한 명이 묵직한 가방을 들고 대문 앞으로 다가섰다. 열쇠공이다. 검은색 007 가방 안에는 주인의 동의 없이도 온갖 종류의 문을 열 수 있는 여러 가지의 도구가 들어있을 것이다. 열쇠공이 가방을 열고 꼼꼼하게 정리된 자신의 병기들을 살피고 있을 때, 대문 안쪽 현관문이 삐익 소리를 내며 열렸다.


 이곳은 재개발구역이다. 10년 전에 재개발조합이 설립되었다. 일부 원주민이 재개발을 반대하며 재개발 무효소송을 냈는데, 2년 전 고등법원에서 조합 쪽이 최종 승소했다. 현재는 빠르게 주민들의 이주가 진행 중이다. 재판에서 진 주민들은 조합원 자격을 취득해서 아파트 입주권을 받은 재개발 찬성 주민들과 달리 분양권 없이 집에 대한 보상만 받고 곧 이사를 해야 한다. 이들은 '청산자'라고 분류되었다.

 

 사내들이 말한 점유이전 가처분 집행이란, 청산자가 이사 가기 전에 다른 사람에게 집을 빌려줄 수 없다는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다. 매매는 가능하겠지만 어느 누가 분양권, 일명 딱지도 없는, 곧 개발이 될 지역의 집을 사겠는가.

 남자들의 말에 의하면, 뻔히 철거될 집이지만, 다급한 사정의 사람에게 전, 월세 계약을 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고 한다. 사내들은 집행관 사무실에 나온 집행관 2명과 열쇠공, 그리고 집행 현장의 증인 2명이었고, 나는 증인 중 한 명이다.


 작은 키에 동글동글한 얼굴의 여인이었다. 그녀는 종이장 같은 표정으로 대문을 열고 몸을 휙 돌렸다. 팔짱을 낀 채 정원을 삥 둘러보던 그녀는 몸을 돌려 사내들 앞으로 걸어와서 한 팔을 들어 정원을 가리켰다.

 "이것 좀 보세요. 제가 여기에 얼마나 오랜 시간 공을 들였는지 모르시겠나요? 20년 넘게 살던 집에서 갑자기 나가라면서 평가 금액이 얼마 나왔는지 알아요? 다른 곳에서 전세도 얻지 못할 돈이라고요."

 집행관은 집에 대한 금액 평가는 자신의 업무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고, 오늘의 집행이 무슨 의미인지에 대해 설명했으며, 가처분 집행이란 단어 때문에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그녀를 위로했다. 하지만 그녀는 더 근심 어린 표정을 지으며 정원 한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러고는 털썩 두 무릎을 꿇고 주저앉아서 땅바닥을 쓰다듬었다.

 "여기, 여기에 우리 부모님이 계신다고요. 흐흑"


 노후를 보낼 계획을 가지고 장만한 집이었다고 했다. 그녀는 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부모님과 함께 지내고 싶었다. 마당에 부모님의 유골을 묻은 이유였다. 전후 사정을 다 알 수는 없었지만, 그녀가 부모님을 생각하는 마음이 어떠한지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정식으로 다시 장례절차를 치르고 부모님 유골을 이사 갈 집으로 옮기면 될 일이지만, 그게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재개발을 반대하며 소송까지 거치는 10년 동안 재개발지역 밖의 집값이 몇 배나 폭등해버린 것이다. 그녀는 재개발보상으로 받을 돈으로는 부모님 유골을 모실만한 마당 있는 집은 꿈도 꿀 수 없다고 울먹였다.


 

 서른 가지의 사연과 표정을 만나고 나서야 가처분 집행을 마쳤다. 한동안 반갑지 않은 소식을 더 전해야 할 것이다.

 돌아오는 골목길에서 때 이른 찬 바람이 덜 마른 낙엽을 붙잡고 맴돌았고, 어떤 집에는 감이며 대추가 탐스럽게 달렸고, 길고양이들이 불룩 나온 배를 내밀고 하품 중이었는데, 모두 사람이 떠난 빈집이었다.

 

 고철을 수집하는 회사 직원이 꾸벅 인사를 했다. 그가 쓴 산업용 마스크가 꺼멓게 때에 찌들었다. 옷은 온통 먼지 투성이었다. 군대 전역을 하고 고철 수거 회사에 취직했다는 그는, 어린 아들을 둔 삼십 대 가장인데, 궂은일에도 씩씩 잘 웃었다. 오늘도 욕을 한 바가지나 먹었다며 머리를 긁적이는 그의 미소에 진한 노을이 스며있었다.

 

 이곳에는 1700세대의 아파트가 들어설 계획이다. 일부 주민은 새 아파트에서 살게 될 것이고, 일부 주민은 이곳을 떠나 새로운 거주지를 찾아 나서야 한다.

 이곳에서 어떤 이는 낡은 집을 부수고, 누군가는 고철을 수집하며, 또 어떤 이는 가처분 집행 문서를 붙이며, 또 누군가는 새 아파트를 짓고, 그리고 몇 년 후에는 그 아파트에서 새로운 주민들이 살아갈 텐데, 그때 한 번쯤 기억해주면 좋겠다.

지키지 못한 약속을,

두꺼비의 노래를.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집 다오

두껍아 두껍아 물 길어 오너라

너희 집 지어 줄게

두껍아 두껍아 너희 집에 불났다

쇠스랑 가지고 뚤레뚤레 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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