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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욱 Apr 01. 2023

봄을 찾으려고 곡성에 갔다

 뭐든 기다리는 것보다 찾아 나서는 걸 좋아한다. 봄도 그렇다. 강원도에 살다 보니 꽃소식이 늦다. 그래서 겨울이 끝나면 서둘러 따듯한 지방으로 간다. 이번 봄맞이는 전라남도 구례 섬진강 벚꽃길로 정했다. 금요일 점심이 되기 전에 출발한다. 저 남쪽나라에는 벌써 봄이 와있을까?


남원주 ic에 들어서고 얼마가지 않아서 하늘이 어둑해지는가 싶더니 이럴 수가! 투둑투둑 빗방울이 내리기 시작한다. 이대로라면 꽃구경은커녕 방에 들어앉아 처마에 걸린 우중충한 하늘만 구경할 것만 같다.

터널을 들어서기 전에 내리던 비가 터널을 빠져나오면 사라진다. '이야, 이제 맑아지나 보다'

산 하나 넘으면 파랬던 하늘이 산 둘 넘어가면 잔뜩 찌푸린 표정이다. '아아, 다시 비가 오나 보다'

같은 하늘을 보며 안도와 걱정을 반복한다.


꽃이 모두 어디로 가버린 건지 전라도까지 와서도 찾을 수가 없다. 그나마 몇몇 개나리 무리가 없었다면 흐린 하늘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르겠다.

J에게 톡이 다.

"친구야, 벚꽃 구경은 잘하고 있냐?"

"아직이다. 하늘은 찌푸렸고 아직 봄도 꽃도 멀다."

"나, 강변북로 달리는데 여기 벚꽃 피었다."

"......."

봄을 찾아서 4시간을 달려 전라도까지 왔다. 아직 꽃이라고는 옥수수수프 같은 개나리가 전부인데, 강변북로에 핀 벚꽃이라니...... 울화통이 터질 지경이다.

묵을 곳이 곡성이다. 겨울비가 온다. 아직 봄을 만나지 못했으니 이 비는 봄비가 아닌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곡성 압록상상스쿨을 막 지날 때다. 오른쪽으로 크게 휜 도로를 달린다. 커브를 벗어나자 이야호! 자신만만하게 솟은 거대한 목련이 두 팔을 한껏 벌리고 있다. 제법 허리가 굵은 보성강을 따라 자동차를 운전한다. 이제 막 망울을 터트린 벚꽃들이 도화지에 하얗게 흩뿌린 물감 같다. 아직 덤성덤성하지만, 벌써 봄냄새가 느껴진다. 주위가 어둑하다. 하룻밤만 지나면 봄이 성큼 와 있으리라!


숙소 마당에 엄지손톱만 한 아기 냉이들이 잔디처럼 빼곡하다. 된장냄새가 날 것 같은 꼬마 쑥들도 촉촉한 아침공기를 마시며 기지개를 켠다. 초록색 풀들 사이로 달래가 자랐다. 그냥 풀 같아 보인다. 달래는 잎이 날렵하면서도 통통하다는데, 나는 도통 구분할 수가 없다. 먹어봐야 안다. 부추는 이미 많이 자랐다. 손톱으로 뜯으면 톡톡 끊긴다. 작은 머위 잎사귀도 바닥에 널렸다. 봄 머위는 보약 중에 보약이라는 말이 생각나 하나를 떼어 입에 넣는다. 쓰디쓰다. 저 작은 머위잎이 이름도 모를 풀들과 경쟁하면서도 제 모습과 본연의 맛을 유지할 수 있다니 참으로 대단하다.


아침부터 계속 비다. 아직 겨울비다. 아점으로 참게 매운탕을 먹었다. 여자친구는 생선은 제 돈으로는 안 사 먹고 누가 사주면 먹는 음식이었다는데, 생선을 좋아하는 남자를 만난 후로 비린 음식도 곧잘 먹는다. 다행히 개운하고 고소한 맛이란다.

식사 후에 하동 화개장터로 향한다. 봄을 찾아 나선 이들이 많다. 화개장터를 3KM 남기고 친절한 내비게이션이 한 시간 정체라고 안내한다. 비는 그쳤다. 남도대교로 진입하는 차량들이 끝없다. 드디어 남도대교를 지나 화개장터에 도착했을 때, 주차장이 꽉 찼다. 주차요원은 계속 가라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 무조건 직진을 한다. 결국 화개장터는 지나치고 자연스럽게 화엄사로 가게 되었는데, 이게 웬일이람. 한눈에도 오래된 벚나무들이 도로 양옆에 나란히 서서 양손에 꽃다발을 한 아름 들고는 우리에게 꽃가루를 뿌르는 것이 아닌가. 봄비다. 드디어 봄을 만났다. 앞선 자동차가 속도를 줄이고 잠시 멈출 곳을 찾는다. 어느 누구도 재촉하지 않는다. 봄은 사람들의 마음에 여유도 가지고 온 듯하다. 도로 가장자리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많다. 그 때문에 자동차의 속도가 더 느려졌지만, 그게 무슨 문제가 될까. 봄구경은 느리게 해야 제맛이니까.



봄나들이를 마치고 회사에 복귀했다. 며칠이 지났고 여기 부천에도 봄기운이 느껴진다. 여자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강원도에, 정확하게는 내가 사는 누항(陋巷), 원주에도 벚꽃이 피었다는 소식이다. 주말쯤이면 완전한 벚꽃 세상이 될 것 같다고 한다.


지난해엔 집 앞 산책길을 자주 걸었다. 원주천을 따라가는 자드락길이다. 이 길은 꼭 봄이 아니어도 좋다. 여름이면 개천에 뛰어드는 아이들 소리가 좋고, 가을엔 노랑나비 떼 같은 은행나무 잎이 좋고, 겨울이면 마른나무 어딘가에서 들리는 새소리가 그랬다. 그리고 겨울이 끝나갈 쯤에 마디마디 톡톡 튀어나오는 움이 좋았는데, 나는 그 속에서 아직 피지도 않은 상상하기도 했다. 그러면 마치 봄을 만난 것처럼 기분이 설레었다.  


봄을 맞으러 전라남도까지 갔다. 그곳에서 나는 봄을 만난 걸까. 하늘을 가득 채운 벚꽃 무리도 봄이고, 제 몸에 햇빛 담은 초록 새순도 분명 봄일 테다. 그런데 어쩐지 지난겨울 집 앞 산책길에서 만난 작은 움, 그 속에 깃든 여린 생명 하나가 진짜 봄일 것 같은 느낌은 왜일까.              

나는 봄이 꽃으로 온다고 생각했는데, 봄은 겨울을 견디던 움 속에 이미 와 있었던 게 아닐지.


봄은 가장 매서운 겨울 한가운데에서 이미 움트고 있었다.


덧붙이는 말


글에 사진 첨부하는 일을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봄이니까요,

모두 행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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