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재욱 Apr 13. 2023

피해자만 있는,

잘 못했습니다

조수석에서 그녀가 자고 있다. 고롱고롱 코를 곤다.

'급커브 구간입니다' 내비게이션 속의 여인이 샘이라도 난 걸까. 갑자기 말이 많아진다.

'300미터 앞 이동식 단속 구간입니다. 200미터 앞 이동식 단속...... 100미터 앞...... 50미터...... 30......'

제발 그만해.

내비 여인이 입을 다물자 그녀가 그만 잠에서 깬다.

"아, 깜빡 잠들었네요. 운전하는데 미안해요. 원래 난 차에서 안 자는데 이상하게 자기차만 타면 졸려."

이건 욕일까 칭찬일까 생각한다.



운전대를 잡으면 차선을 웬만해서는 바꾸지 않는다. 왔다 갔다 하는 걸 좋아하지 않고 그렇게 주행을 한다고 해서 시간이 단축되지도 않을뿐더러 그런 운전습관이 긴장도를 높여서 건강에도 좋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도로 바닥에 표시해 놓은 속도를 지킨다.

과(瘑)라는 한자는 부정적인 뜻이다. 구태여 부정적인 일의 당사자가 될 필요가 무어 있을까.

과분, 과열, 과욕, 과용, 과의존, 과부족, 과언, 과민, 과잉, 과도, 과다, 과실, 과격, 과중, 과대망상, 과부하, 과당, 과오, 과로, 과언, 과밀, 과적, 과음, 과식...... 그리고 과속.

평소 잠을 자지 않는다는 그녀의 주장과 달리 조수석에만 앉으면 그녀는 잔다.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 때문이리라.


나는 근 20년 무사고운전 중이다. 물론 사고는 한쪽만 조심한다고 피할 수 있는 일이 아니므로 무사고가 순전히 실력에 의한 것은 아닐 것이나 미리미리 대비하는 운전습관이 사고를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은 분명하다.

이런 생각을 한 계기가 있었다.



아들이 9살 때였다.

교회에서 유치부 선생으로 성경수업을 하고 있었는데, 한 아이가 다급하게 예배당으로 뛰어들어왔다. 아들이 차에 부딪혔다는 것이다.

"애가 차에 받혀서 공중으로 날아갔어요."


교회 정문 앞에 자동차가 한 대 서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아들의 한쪽 신발이 보였다. 아들은 자동차 앞쪽으로 4미터쯤 떨어진 곳에 엉거주춤 서있었다. 아빠를 보자 울음을 터트리며 달려왔다.

무릎과 손등 피부가 조금 까졌지만, 다행히 큰 상처는 없었다. 진료 결과도 이상 무.

병원에서 간단한 검사를 마치고 나온 아들은 가해자가 사준 커다란 합체로봇 장난감에 함박웃음을 지었고 그를 삼촌이라고 불렀다.


20대 운전자는 근처 교회 유치부 교사라고 했다. 그날 친구 결혼식 사회자였단다. 다급한 마음에 유치부 수업을 빼먹고 시간에 쫓겨 서둘렀다고 한다. 목사님은 사고를 당한 아이가 멀쩡한걸 보니 교회 유치부 수업을 빠진 젊은이에게 주는 하나님의 계시라고 에둘러 말했지만, 지금도 그런 말에 동의할 수는 없다. 다만, 어린 아들을 골목에 방치한 부모로서의 무책임과 급하게 운전을 한 청년의 부주의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생각을 했다.

이후로 운전할 때 더 조심을 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고 나름의 운전스타일이 생기다 보니 내 차를 타는 분들은 대부분 잔다.



운전을 좋아한다. 그래서 더 잘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찾아보는데, 요즘은 유튜브를 주로 이용한다.

한문철 TV, 도참시 TV(도로 위의 참견시점), 맨인블박, 몇 대 몇? 블랙박스, 블박창고, 그것이 블랙박스, 블박맛집, 노라준카, 대성캡틴 등. 구독 중인 채널들이다. 전부 안전운전에 관한 내용이다. 틈틈이 사고영상을 보면서 가상의 상황에 대해 자기 암시를 준다. '나라면 어떻게 할까'

전부 제보영상들이라 제보자의 사고설명을 함께 소개하는데, 몇 년 간 시청하다 보니 일부 제보자들이 사용하는 문장에서 한 가지 공통점을 느낄 수 있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 저는 80 도로에서 110 정도 달렸다고 생각해요. 아! 나중에 경찰에서 130KM가 조금 넘었다고 하긴 했어요. 제가 과속은 했는데요, 그래도 상대방이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고 아닐까요?

- 저는 비보호 좌회전이었어요. 처음 볼 때 상대는 멀리 있었고요. 아무리 제가 비보호 좌회전이고 조금 딴짓을 하느라 상대를 보지 못했지만, 상대 속도가 너무 빨랐던 게 아니었을까요?

- 제가 불법유턴을 했지만, 상대가 저를 봤을 텐데요. 일부러 들이받은 것 같아요. 보험사기 아닐까요?

- 분명히 제 옆에 차가 없었고 제가 깜빡이도 켰거든요.(방향지시등을 켜자마자 차선변경을 함) 그런데 차선을 바꾸자마자 상대가 나타난 거예요. 이건 쌍방과실이라고요.

잘못을 했지만, 상대도 잘못을 했다. 그래서 나도 피해자라는 식의 문장.

저들 중 누구도 제가 잘못했습니다라고 끝맺지 않는다. 잘못했습니다란 말 뒤에 하지만, 그러나, 가 따라온다.



4월 8일 대전 둔산동에서 가슴 아픈 사건이 있었다. 만취 음주 운전을 하던 60대가 인도를 걷던 초등학생 4명을 덮쳤다. 이 사고로 9살 여자아이가 목숨을 잃었다.

가해자는 이렇게 말했다.

 "유가족들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거듭 드린다." 그리고 덧붙였다. "사고를 막기 위해 감속하는 등 노력했다."

몸을 가누지도 못할 정도로 술을 마신 채 운전을 했으며, 가장 안전해야 할 어린이보호구역, 그것도 인도를 걷던 어린 소녀의 목숨을 앗아간 자는 "죄송합니다. 그러나 저도 노력했습니다." 라며 유가족과 보는 이들의 분통을 터트렸다.


지난해 5월 부산에서도 끔찍한 사건이 있었다. 귀가하던 여성을 뒤따르던 한 남자가 갑자기 여성의 머리를 향해 돌려차기를 한 후 CCTV가 없는 곳으로 끌고 간 뒤에 아무도 볼 수 없는 곳에서 7분 동안 머물다가 피 흘리며 쓰러져 있는 피해자를 방치하고 유유히 사라졌다. 여성은 7분 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을 못 한다. 여성은 머리를 크게 다쳤고 뇌신경이 손상되었다. 누군가가 발견했을 때 바닥과 피해자의 옷에 피가 흥건했다. 그녀는 정신을 잃은 채였는데, 바지 지퍼가 열려있었고 속옷이 벗겨진 상태였다.

가해자는 이미 전과 18 범이었으며 출소 3개월 만에 저지른 범행이었다.

경찰은 중상해죄, 검찰은 살인미수 혐의로 그를 기소했다. 증거부족으로 성폭행은 제외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이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전문가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전문가들은 살인미수 외에도 계획된 성폭행을 의심했다.

영상에는 피해자뿐만 아니라 가해자의 인터뷰도 담겨있었다.

"술 때문에 저지른 범행입니다. 제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정신과 약을 먹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죄를 정신과 약 탓으로 돌렸다. 마치 약으로 인해 자신도 피해를 본 것처럼.

가해자는 재판부에 수십 장의 반성문을 제출했다.

경찰이나 검찰, 판사, 언론 인터뷰에서는 용서를 구하던 가해자였다.

검찰은 20년을 구형했다. 1심 재판부는 범인이 폭행사실을 인정했다는 이유로 12년 형을 선고했다.

한편 구치소에서 가해자는 수감 동기에게 이렇게 말했다. "주민번호랑 집 주소도 안다. 나가면 피해자를 죽여버리겠다."    

피해자는 지난해 11월에 "12년 뒤 저는 죽습니다. 차라리 제가 그때 죽었어야 진실이 밝혀졌을까요?"란 글을 올렸다. 그녀는 뇌신경 손상으로 다리가 마비될 수도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다행히 호전되어 몸은 움직일 수 있지만 그녀는 여전히 악몽 속에 살고 있다. 그녀의 나이는 26살이다.



9살 여자아이의 사고가 9살 아들의 교통사고와 겹쳐진다. 26살 여성은 현재 아들과 같은 나이다. 피해자와 그 가족의 고통을 다 알 수는 없겠지만, 피해자와 가족의 마음이 느껴져서 내내 가슴이 답답하다.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잘못했지만, 그러나 나도 피해자다'라는 식의 가해자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들이 꼭 합당한 죗값을 받기를,

부디 배승아 어린이가 천국에서 쉼을 얻기를, 26세 청년의 앞날이 평안하기를.



오전에 유튜브를 본다. 블랙박스 제보 영상이다. 누가 가해자고 누가 피해자인지 헷갈리는 사고다. 역시나 서로 본인 위주의 설명을 한다. 피해자만 있는 사고다. 자신의 이익부터 따지는 걸 어찌 탓할까. 사람은 그럴 수밖에 없는 존재겠지. 그런데 화살이 곧 방향을 바꾼다. 주변을 떠올린다. 화들짝 놀란다. 그리고 깨닫는다. 그래서 고백할 수밖에 없다.

나도 그래왔던 걸.

잘못은 했지만, 사정이 있었다고 둘러대며 살아왔다는 걸.

잘못했습니다라고만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여태 없었다는 것을.




진심 어린 사과가 필요한 시절입니다.

과거의 일이나

현재의 일이나

미래에도,

진심을 담은 사죄만이 용서를 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게 서운하셨던 모든 분들께 말씀드립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봄을 찾으려고 곡성에 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