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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궁은정 WiseFrame Jan 09. 2019

남의 세상이 아닌, 나의 세상 열기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

나는 완벽주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어떤 일을 할 때에는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어떤 것을 잘해서 성공을 하고 싶을 것이다. 잘해서 능력을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야 그리 이상할 것이 아니다. 문제는 실제로 완벽하지도 않고, 완벽해지기 위해서 피나는 노력을 하지도 않은 채 완벽하길 바란다는 점이다. 


사실 이것은 욕심이기 보다는 무지에서 비롯된 면이 많다. 어린 아이는 자신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자신이 뭘 모른다는 것을 모른다. 그래서 ‘하룻 강아지가 범 무서워할 줄 모른다’고 한다. 세상의 일은 어느 것 하나도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없다. 그런데도 어렸을 때부터 정해진 것을 받아왔던 것에 익숙해진 나머지, 내가 직접 무언가를 하더라도 그렇게 정해진 상태로 생겨날 것이라고 착각했던 것이다. 


아주 예전에 방송작가를 잠깐 한 적이 있었다. 고등학생 때 삼 년 내내 장래희망란에 방송작가를 썼었다. 그렇게 따지면 꿈을 이뤄본 셈이다. 그런데 막상 겪어본 방송작가의 삶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달랐다. 늘상 TV에서 보아왔던 깔끔하고 재미있고 완결성이 있는 방송 프로그램은 사실 엄청난 불확실성을 견디며, 아이디어와 이미지의 조각을 붙여 모아서 만든 결과물이었다. 그야말로 밤샘 노가다(?)의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난 피디가 아니고 보조작가였기 때문에 영상을 직접 자르고 붙이고 하는 일은 하지 않았었다. 그 대신 프리뷰라는 것을 했다. 피디들이 영상을 찍어오면 영상과 음성의 내용을 타이핑해서 기록해 놓는 것이다. 방대한 영상 자료를 그렇게 필사를 해놓지 않으면, 나중에 작업을 하기가 힘들다. 말이 필사지, 한 프로 프리뷰를 하는데 며칠을 밤새서 똑같은 거 또 보고 또 보고 해야 했다. 나는 이 프리뷰의 벽을 넘지 못하고, 방송작가를 그만 두었다. 사실 그 밖의 처우 문제도 있었고, 내가 휴학 중에 방송국에서 일한 것이라 졸업을 해야 했기에 그만둔 이유도 있다. 인생의 문제가 늘 그렇듯 복합적으로 결정이 이루어지니까 말이다. 여하튼 정말 프리뷰라고 하면 질려버렸다. 


그런데 이 일을 경험해 보기 전에는 이런 것을 알지 못했다. 수많은 방송 채널에서 모든 이야기가 자동적으로 만들어져 나오는 것 같으니까, 그것이 당연한 줄 알았다. 그래서 내가 만들어도 그렇게 ‘딱’하고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나의 현실에서는 프로그램 대본을 쓸 줄을 몰랐고, 프리뷰 조차도 힘겨웠다. 머리 속에서는 ‘내가 이렇게 버벅거리면 안 되는데’, ‘내가 이렇게 하찮은 일만 하고 있으면 안 되는데’, ‘조금만 하면 바로 결과물이 나와 줘야 하는데….’라고 생각했다. 


박사 졸업 이후, 나의 진로를 정하는 과정에서도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없었다. 졸업을 하고 난 이후, 뭘할까 고민을 하다가 학원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내가 아는 것도 많고, 박사까지 땄는데 아이들 가르치는 것이야 너무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선 학원을 하려면, 길거리에 수없이 간판을 내 건 학원들처럼 상가를 빌려서 인테리어를 하고, 교실을 만들어 놓으면 되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쉽게 볼 수 있는 작은 학원을 차리더라도 생각지 못한 비용이 발생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기에서 좌절하고, 집에서 공부방을 해 보고자 했다. 

그런데 가르칠 내용이 없었다. 대학 강의자료는 많지만, 아이들을 위한 교육 계획과 자료가 없었다. 그것을 구상하였더니, 얼마를 받고 가르칠 것인지가 막막했다. 언제나 내가 받을 가격을 다른 사람이 정해 주었지 내 스스로 가격을 매겨본 적이 없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학생이 없었다. 그래서 학생을 찾아 나섰다. 초등학교 앞에 나가서 전단지도 돌리고, 주변 엄마들과 수다도 떨면서 알렸다. 하지만 많은 수는 모이지 않았다. 우선 첫 학생을 무료로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몇 명이 더 모였지만 크게 성장하지는 못했다.


공부방을 하겠다고 생각하면서 여러 사례를 유심히 지켜 보았다. 관련 카페도 들어가보고, 유사한 과목 공부방에서 운영하는 카페에도 들어가 보았다. 여러 사례를 살펴보면서, 공부방 하나를 운영하기 위해서도 나름대로의 경영 노하우와 원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것도 정말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할 사업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냥 다른 사람들이 많이 하니까 나에게도 당연히 쉬울 줄 알았건만, 세상에 어느 것 하나 그냥 되는 것은 없었다. 생각으론 모든 것이 그냥 뿅하고 나타나는 것인데, 직접 몸으로 돌파하지 않고 이루어지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그동안 다른 사람들이 처음부터 잘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비판하고 무시하는 마음을 자주 가졌었다. 다른 사람들이 새로운 시도를 하거나 잘 모르는 영역에 진입했을 때, 옆에서 지켜 보면서 ‘왜 그렇게 하냐’고 훈수 두는 것이 나의 습관이었다. 자꾸 가르치려고 들고, 내가 생각하는 것이 옳다고 전달하는 것으로 나의 존재감을 부각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하는 것이 상대방에게도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대방은 별로 고마워하지 않았다. 내가 정말 좋은 조언을 해주었다면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말만 있는 텅 빈 조언이었기에 별로 영향력이 없었던 것이다. 다행히도 여기까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이유를 ‘나를 과시하고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한 동안 생각했다. 이렇게 생각하니 나 자신을 책망하게 되었다. ‘별 다른 도움이 되지도 않는데 왜 그렇게 감놔라 대추놔라 했니?’, ‘잘난 척 하지 말라’고 말하면서…이렇게 나에게 말하면서 참으로 아팠다.


그런데 곱씹어보니 이것은  ‘세상의 일들이 바로 짠!하고 나타날 수 있을 것’이라는 나의 무지 때문이었다. 내가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 못해서 벌어진 나의 어리석은 행동이었던 것이다. 다행이다. 모르면 배우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과시욕과 자기중심성 때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그 사람에게 참으로 도움이 되고 싶어서 참견을 했었던 것이 나의 진심이다. 방법이 잘 못되었던 것은 잘못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다다르자, 지금에서야 사람이 왜 겸손해야 하는지 뼈져리게 느낀다. 세상의 일들이 거저 이루어지는 것이 없다. 내가 이 세상에서 겪고 이해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이 얼마 없다. 겸손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겸허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조금씩 몸으로 부딪히며 해내면, 다른 사람이 만들어 준 ‘남의 세상’이 아니라 내가 만든 ‘나의 세상’을 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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