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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궁은정 WiseFrame Jan 09. 2019

언젠가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절실한 소망이 추동력의 원천

내가 이 책을 쓰겠다고 생각한 것은 우연하게 알게 된 책 때문이었다. 박하루의 <하루만 일하며 삽니다>라는 책이었다. 심오한 책은 아니었다. 그런데 발상이 획기적이어서 금새 끌려 들어갔다. 그동안 내가 가지고 있었던 여러 고정관념을 뒤집는 그런 이야기를 이 저자는 하고 있었다. 


우선 책을 하루 만에 쓴다는 것이 참으로 충격적이었다. 사실 이것은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책을 쓰겠다고 결심한 지가 언젠가. 서른 살이 되면 책을 내겠다고 했는데, 이제 마흔이 거의 다 되어 간다. 십 년이라는 세월을 그냥 보내 버린 것이다. 그 동안 책보다는 논문을 쓰는데 집중을 했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다. 바로 책을 쓸 수는 없으니, 자료조사도 철저히 할 겸 논문을 먼저 쓰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낳고 나니, 아이 때문에 책을 쓸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조금 더 크면 책을 쓰자고 했다. 그런데 아무리 논문을 쓰는 와중이라고 해도, 아이를 키우고 있다고  해도 하루라는 시간을 내지 못할 정도까진 아니었다. 


심지어 3년 전에는 출판사 대표와 만나서 앞으로 쓸 원고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쓰고 싶은 원고에 대한 콘셉트를 가지고 있었고, 여기에 대해 편집자도 긍정적으로 여겼기 때문에 하루 빨리 쓰면 되었다. 하지만 그것을 뭉개고 여직껏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나중에. 더 많이 공부해서. 더 많이 자료를 찾아서 쓰겠다는 결심을 안고서 지금까지 온 것이다. 차라리 그 미팅이 있었던 그 날부터 원고를 시작했더라면, 그 날 첫 줄을 써 놓았더라면 아마도 지금은 그 책을 시중에서 볼 수 있었을지 모른다. 지금 ‘하루만에 책을 쓴다’는 아주 극단적인 발상을 접하고 나니, 정신이 번쩍 차려졌다.


예전의 나는 벼락치기의 고수였었다.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일이 있다. 석사 2기 때 난생 처음 논문이라는 것을 써서 학회에 발표를 해야 했었다. 그것도 학회까지 단 2주 밖에 남지 않았었다. 나는 놀라기도 하고 황당하기 했었는데, 지도 교수님께서 해보라고 쿨하게 말씀하셨다. 별다른 고민을 할 새가 없었다. 그 때부터 논문 아이디어 떠올리고, 주제 정하고, 문헌 정리까지 다 마쳐야 했다. 

머리 감으면서, 머리를 말리면서, 다른 수업의 발제를 준비하면서, 잡지책을 읽으면서…. 일상 생활을 하면서 온통 논문에 뭘쓸까를 고민했다. 그랬더니 의외의 곳에서 아이디어가 솟아났다. 평소 보지도 않았던 잡지책의 내용을 설핏 봤는데, 이게 논문으로 연결되었던 것이다. 이것을 뒷받침하는 이론도 왠일인지 눈에 쏙쏙 들어왔다. 이론책 한 장 읽으려면 시간이 꽤 필요했었는데 말이다. 급하니까쓸 내용만 얼른 추려서 집필을 재빨리 했다. 그런데도 시간이 모자랐다. 

학회가 열리기 전 날까지 완성이 다 되지 않자 밤을 샜다. 자취방 창가 앞 컴퓨터 모니터를 보면서 정신없이 원고를 써 내려 갔다. 분명 시작할 때는 밤이었는데, 고개를 드니 창에서 환한 빛이 들어왔다. 지금 떠올려봐도 그 때 나의 의식이 한 동안 끊겼던 것 같다. 술 취해서 필름이 끊기는 것처럼, 논문을 쓰는 내내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그렇게 몰입했었다. 결국 어떻게든 완성이 되었고, 발표를 했다. 다듬지 못하고 내보낸 원고여서 오탈자는 엄청 많았다. 그런데 석사가 이렇게 학회 발표를 할 정도로 발표논문을 썼다는 이유와 논문 소재가 참신하다는 이유로 칭찬을 엄청 받았다. 특히 지도교수님께서 엄청 칭찬을 해주셔서 그 날은 정말 기뻤다. 


그 이후에도 논문이나 제안서를 쓸 때, 하루 이틀 정도 밤을 새면서 글을 완성한 적이 많다. 그런데 그 때는 외부에서 주어준 데드라인이 있었기에 그렇게 밤을 새는 것이 가능했다. 프로젝트가 없어지고 오로지 내 스스로 글을 쓸 수 있는 순간이 왔는데, 몸이 선뜻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프로젝트를 할 때에는 ‘이런 글은 더 이상 쓰고 싶지 않다’, ‘내가 원하는 글을 마음대로 쓰고 싶어’라고 툴툴 댔었는데, 막상 자유의 시간이 주어지니까 시작할 수가 없었다. 휑하니 아무것도 없는 황야에 홀로 놓인 것처럼 갈 길을 잃었고, 도달해야 할 목적지도 데드라인도 없으니 천천히 걸어도 되겠다고 생각하며 여기저기를 서성였다. 이것저것에 기웃기웃 하며 관심 갖다가 결국 책이 나오지 않았다. 차라리 온전한 자유보다 한계가 주어지는 것이 결과물을 내는데 더 나았다. 


그래서 도전을 해 보았다. 하루 만에 책 쓰기!

그러나 현실은… 


지금 이 원고를 쓰는데 며칠이 걸리고 있다. 야심차게 시작은 했는데, 어느 정도 쓰다보면 졸리고 힘들어서 계속 할 수가 없다. 체력적으로 힘들다. 게다가 아이들 재우고 밤을 새면서 글을 쓰다보니 지구력이 많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그 하루라는 시간을 쪼개서 며칠로 나누어서 배분하기로 했다. 집중도는 떨어지지만 현실적 한계를 감안해야 하니까 어쩔 수 없다. 그 대신 몰아붙이면서 손에서 글쓰는 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속도가 엄청 빠르다. 


무엇보다 아이를 키우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글을 더 많이 쓰게 된다. 시간이 없다고 생각하니 위기 의식이 더욱 고조되어, 더 글을 읽고 글을 쓰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난다. 제약이 있는 상황에서 더 절실하게 소망을 가질 때,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저력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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