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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궁은정 WiseFrame Jan 09. 2019

이대로도 충분하다

꿈꾸지 못하게 만드는 5가지 걸림돌

지금 사방이 막힌 것 같다. 둘째 아이를 낳고 난 후, 산후우울증이 온 것일 수도 있다. 우울증까진 아니더라도, 그간의 피로가 한꺼번에 밀려 온다. 나의 경우 이 우울감과 피로감은 아이 키우느라 육체 노동을 많이 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완전히 몰입하느냐. 그것도 아니다. 나의 생각은 매일 허공 속에 빠져 있다. 어떤 사업을 할까, 앞으로 무엇을 할까. 어떤 글을 쓸까. 어떤 영상을 만들어 볼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하지만 하룻동안 진척을 시킬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작업을 할 수도 없고, 무언가를 만들어 보려고 해도 중간 중간 아이가 끼어 들어서 흐름이 끊기기 일쑤이다. 

무언가 되는 것이 하나도 없이 성취하는 것도 없이 하루 하루가 지나가는 것 같다. 지금의 막막함은 많은 일을 해서 지친 것이라기 보다는, 무언가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을 만드는 것이 누구인가. 누구도 나에게 이렇게 살라고 말한 이가 없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살고 있다. 답답하게.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 저 지구 한 구석에. 


그러다가 문득 꿈버라는 말이 마음 속에서 솟아 났다. 꿈꾸며 버티기. 사실 원전은 존버이다. 존나게 버티는 정신. 이외수 작가가 젊은 청년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 쓴 말이라고 한다. 이 말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말이 있을까. 우선 버티자. 아이는 언젠가 큰다. 그렇게 나를 다독이다가 ‘존나게’라는 말을 ‘꿈꾸며’라는 말로 대체해 보았다. 나의 오랜 아이디는 Daydreaming 이었다. 한글 닉네임은 ‘꿈꾸는 오후’. 늘 꿈만 꾸는 비현실주의자이고, 마음 한 구석에 불편함은 있으나 나는 내내 꿈만 꾸고 있는 것이 좋았다. 현실도피는 나의 정체성일 정도로, 나는 지금 이 현실에서 유체이탈해 있는 것을 너무나도 즐긴다. 

어느 날, 아이를 재우다가 반정도 잠에 들었는데 설핏 꿈을 꾼 적이 있다. 내가 화장도 하고, 정장도 입고, 강단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내용도 너무 생생하여 내가 진짜 강의실에 있는 듯 했다. 하지만 곧 나는 며칠 째 머리를 감지 못한 채 젖 비린내를 풍기며, 수유티의 지퍼를 열어 가슴을 활짝 열어ㅍ제끼고 잠에서 깨고 있었다. 강의를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 꿈인지, 이렇게 아이를 키우고 있는 꿈 속에 들어와 있는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장자의 나비의 꿈은 이렇게 나의 현실 버전이 되었다. 

사실 나는 누군가의 꿈 속에 들어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이렇게 평탄한 가정생활과 보석같은 아이, 건강한 몸을 가진 채 수유를 하며 잔뜩 애를 쓰는 모습을 꿈 속에서 그려보고 있을지 모른다. 그 누군가는 다른 사람일 수도 있고, 예전의 나 일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의 나의 삶이 누군가의 꿈일지라도, 나에게는 엄연한 현실이고 몸으로 느껴지는 통증과 심리적 스트레스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것이 꿈과 현실의 차이일 것이다. 현실에서는 고통이 생생히 느껴진다는 것. 그래서 나는 또 다른 꿈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기로 했다. 지금 여기가 아니라, 다른 삶을 꿈꿔 지금 여기의 삶을 사뿐히 즈려밟고 훌쩍 날아 가고자 결심했다. 


아주 오랫동안 꿈을 꾸어 왔지만, 이번에는 같이 갈 사람이 필요했다. 그동안 외롭게 혼자 꿈을 꾸는 것은 나를 고립시켰기 때문이다. 지난 날의 잘못을 되풀이 하고 싶지 않았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 혼자 골방에 틀여박혀서 미칠 지경이 된 적이 있었다. 세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내 할 일만 한다고 해서 원하는 그 길에 다다를 수 없었다. 너무나도 불안하고 고독하여, 이 부정적인 감정을 다스리느라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쓰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꿈을 꾸고 이루기 위해서는 사람을 만나서 통하고, 현실 감각을 일깨우고, 부딪힘을 통해 한계를 깨달아야 된다. 이것을 거의 십 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꿈버클럽. 꿈꾸며 버티는 사람들의 공동체. 함께 꿈꾸면서 현실을 버티는 사람들의 모임. 함께 하는 사람은 나같이 출세하지 않고, 집 안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다. 엄마가 되기 이전에 각자의 삶은 너무나도 다른 데, 엄마가 되고 나니 삶의 모습이 비슷비슷해졌다. 나는 엄마가 되기 전에 대학에서 강의와 연구를 했던, 나름 스마트한 인재였다. 어떤 이는 잘 나가는 회사원이기도 했고, 마케터고, 운동 선수고, 작곡가였다. 이제는 아이 엄마로 손에 늘 물을 묻히고, 살림하고, 아이의 짜증을 받아주다가 열받고, 아이가 아프면 죄책감을 갖는 그런 사람으로 변모하였다. 꿈은 커녕, 자신이 가지고 있던 색깔조차도 희미해져 가는 어떤 아줌마로 그렇게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이러한 자연스러운 흐름에 파문 하나를 만들고 싶었다. 작은 돌 하나를 던져서 유유히 흐르고 있는 물결에 작게 나마 역행을 하고 싶었다. 

우선 나에게 만이라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살게 되는 대로 살지 않겠다’, ‘살라고 하는 대로 살지 않겠다’, ‘잠시라도 숨 쉴틈을 만들어 살자’고 했다. 그래서 그냥 이름을 짓고 밴드를 만들었다. 항상 붙어다녔던 엄마에게 꿈버클럽을 만들거라는 이야기를 들려 주었고, 강제 가입 시켰다. 이 조차도 사실 꿈같은 이야기 하고 앉아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가입자 수가 많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원했던 그런 공간이 점차 되어 가고 있다. 지극히 이기적이었던 목적, ‘내가 숨 쉴 틈을 만들자’, ‘이 답답하고 고립된 현실에서 세상으로 향하는 통로를 뚫자’는 목적을 이루었다. 대만족이다. 

그런데 함께 하는 엄마들과 만나 보면 안타까움이 일 때가 많다. 모든 엄마들이 다 사회에 나가서 돈을 벌고 성공해야 하는 건 아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작은 생활 속에서 성취를 하고 행복을 느끼며 살 수 있다. 하지만 그 행복을 자기 스스로 만들기 보다는 다른 어딘가에 기대서, 자신이 잘 살지 못하는 이유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어느 날 아침 뜨끈한 커피 한 잔을 마시러 들어선 카페에는 엄마들이 꽉 차 있었고, 그 엄마들의 수다에는 자신이 하지 못한 것, 가지지 못한 것, 자신의 못난 모습이 가득했다. 주어는 다양했다. 남편, 시어머니, 아이, 학교 선생님, 옆집 아줌마... 하지만 그것은 다름 아닌 그들 자신의 이야기 였다. 

요즘 엄마들의 꿈찾기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내가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는 자신이 잘 하는 것,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에 대해서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말해 보라고 주문한다. 이 질문에 다들 어버버한다. 답을 할 때면, 말을 잘 배우지 못한 어린 아이와 같이 주눅이 들어있고 발음도 부정확하고 약한 목소리로 말한다. 교육이 끝나고 봉인해제가 된 뒤, 수업 시간에 했던 것과 다르게 그 동안 나에게 투자를 할 수 없고 꿈을 이룰 수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 풀어 놓는데, 너무나도 술술술... 설득력 있고, 강한 어조로 열띠게 말한다. 

나는 뭐 좀 다른가? 아니다. 나도 그들 중 하나다. 여직까지 아니라고 애써 부정했었다만, 요즘 나랑 너무나도 닮은 엄마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나도 지금까지 ‘안 되는 이유’를 열심히 찾았고, 그 원인을 ‘남 탓’으로 돌려왔다. 그 사람의 잘못이 아닌데도 몇 배로 열변을 토해내며 그 사람을 욕했다. 그리고 제자리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는 나 자신을 열심히 합리화 했다. 

돌이켜 보면, 그 모든 것이 내가 부족하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내가 조금 더 무엇이 있었더라면 더 잘됐을 거라는 믿음 말이다. 잔뜩 쌓아놓고 쥐고 있는 것은 많지만, 그것을 세상에 풀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더 준비가 되어야 쓸모가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던 것이다. 


‘지금으로도 충분해.’라는 말을 누군가가 해 주었더라면. 지금 가진 것으로도 충분히 세상에 나아갈 수 있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용기를 누군가가 불어 넣어 주었더라면, 나는 조금 더 비겁하게 상황이나 다른 사람을 탓하지 않고 내 길을 한발짝 나아갔을 것이다. 그 한 발걸음에, 그 다음 갈 길이 보이고, 그 길 다음에 또 이어진 길을 나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내 길에 집중하느라 다른 사람을 탓할 여유도, 나 자신을 책망하고 있을 시간도 없었을 것이다. 


지금 나는 나와 함께 이 길을 걸어가고 있는 꿈버들에게 이 말을 전해 주고 싶다. ‘지금으로도 충분합니다. 당신이 원하는 그 길을 걸어갈 충분한 이유와 가치가 당신에게 있습니다. 용기를 내세요. 걸어가세요. 돈, 시간, 아이, 사랑... 이 나머지는 알아서 따라오게 됩니다.’

사실 이 말은 다른 누군가가 아닌 나에게 해 주고 싶다. 그 동안 부족하고 쓸모없다고, 버려졌고,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껴졌던 그 모든 것이 사실은 거짓말이라는 것, 무언가 하지 않아도 이미 충분하고 괜찮다는 것을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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