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째 평소와 다르게 목이 칼칼하며 뭔가 걸린 듯한 이물감과 통증이 있었다. 비타민과 물을 챙겨 먹었으나 나아지지 않았다. 확진자수가 연일 1000명을 넘어가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3단계로 올릴 것인지를 고민하는 시점이다. 안전안내문자, 뉴스, 맘카페 게시판을 드나들며 바이러스가 정말 코앞에 닥쳤음을 실감하는 상황에서, 목이 아프니 병원에 가봐야겠다는 생각보다 코로나 증상이면 어떡하나 두려운 마음부터 들었다.
최근 가족 이외의 사람과 접촉했던 적이 있었던가. 12월 내내 재택근무 중이어서 버스나 지하철을 타본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집 밖에 발을 딛었던 장소는 동네 마트, 빵집, 동물병원이 전부였다. 그나마 모든 장소에서 마주쳤던 사람들이 마스크를 빈틈없이 탄탄하게 착용하고 있었다.
기억을 더듬다가 며칠 전 집에 방문했던 세탁기 설치 기사님이 떠올랐다. 기사님은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나는 집에서의 습관대로 마스크를 끼지 않고 대화를 했었다. 세탁기를 설치하는 데에 한 시간 정도가 걸렸다. 배수부가 얼어 있어 뜨거운 물을 부으며 대화했고, 케이블이 짧아서 멀티탭을 연결하며 대화했고, 누수 확인, 기울기, 사용법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어쩌려고 요즘같은 때에 마스크 없이 외부인과 말을 그렇게 많이 나누었을까. 생각해보니 가슴이 철렁했다. 최근 인근 가전 서비스센터에서 확진자가 나왔던 사건, 집에만 있던 사람이 외부 방문자를 통해 감염된 사건이 연이어 기억나면서, 막연한 공포감은 점점 확신으로 바뀌었다. 코로나 스트레스로 누구 하나 걸리기만 하면 열렬하게 증오할 준비가 되어 있던 나는 마침 딱 떠오른 애꿎은 외부인을 증거도 없이 의심하고 있었다.
약을 먹어도 차도가 없는 목의 통증이 신경 쓰였다. 밀폐된 집에서 하루 종일 붙어 지내는 가족들에게 혹시라도 문제가 생길까 봐 조마조마했다. 다음 주까지 중요한 보고서를 제출하기 위해 달리는 남편, 내신 점수에 신경 쓰며 열심히 온라인 수업을 듣는 큰 아이, 유튜브에 업로드할 연주곡을 연습하는 작은 아이. 나로 인해 이들의 평범한 일상이 무너지는 것은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집에서 5분 거리의 체육공원에 임시선별진료소가 있었다. 관내 거주자는 증상이 없어도 누구든 익명으로 무료 검사가 가능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계속 찜찜해하는 것보다 확실하게 검사를 받고 오면 마음이 홀가분하겠다 싶었다.
오전에 찾아간 임시 선별 진료소는 조용하고 썰렁했다. 한쪽에는 천막과 테이블이 있고, 2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가림막이 세워져 있었다. 검사를 받는 사람은 나를 포함해 두 명이었다. 10여 명의 검사원들은 손난로를 들고 추위에 종종거리며 각자의 자리에 서 있었다.
사람이 많지 않아 검사 속도가 빨랐다. 손 소독을 하고 비닐장갑을 착용한다. 이름 대신 전화번호를 적고 증상에 체크한다. 채혈할 때 쓰는 시험관처럼 생긴 샘플 통을 받아 들고 가림막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 의자에 앉으면 간호사가 검사를 시작한다.
간호사 선생님은 먼저 면봉으로 목구멍을 살살 긁었다.
"아 하고 소리를 내세요."
"네 그렇게 계속해주시면 돼요."
"아주 잘하고 계세요."
"3초만 버티세요."
추운 날씨에 발을 동동거리다가도검사를 받으러 온 피검사자가 겁먹지 않도록 칭찬하고 다독이는 간호사 선생님 앞에서, 괜히 미안한 마음에 어린애처럼 최선을 다해 입을 벌렸다.
목구멍 검사가 수월하게 끝나고 콧구멍으로 막대를 넣을 차례. 코를 찌르는 검사가 아프다는 소리를 하도 많이 들어서 마음의 준비를 하며 호흡을 크게 내쉬었다. 아주 가느다란 면봉이 한쪽 콧구멍으로 깊이 들어갔다. 잠시 멈춘 꼬챙이가 코 안에서 후비적후비적 움직인다. 이비인후과에서 코 내시경이 들어갈 때 이렇게 깊이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었는데 꼭 그와 비슷한 느낌이다. 본격적인 검사가 시작되겠지 싶어 방심하지 않고 주먹을 꼭 쥐고 있었다. 하지만 면봉은 더 이상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들어왔던 길로 쑤욱 빠져나갔다.
일어나도 된다고 말하는 목소리에 얼떨떨해졌다. 검사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라 솜씨가 능숙한 걸까. 통증은커녕 불쾌감 조차 느끼지 못했는데 벌써 끝이라니. 방호복으로 꽁꽁 싸매고 있어 얼굴이 보이지 않는 검사원들은 손으로 출구를 가리켰다. 잔뜩 긴장했던 코로나 검사는 허무하게 끝났다.
집에 돌아와서도 마스크를 내리지 않고 생활했다. 가족들에게 혹시 모를 피해가 갈까 봐 떨어져서 밥을 먹고 접촉을 최소화했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은 만에 하나 확진 판정을 받게 될 때를 대비하며 생각을 정리했다. 최근 다녔던 동선과 접촉했던 사람을 기록했다. 연락을 돌려야 할 사람들과 연말까지 제출해야 하는 업무를 정리했다. 치료 센터로 들어가게 된다면 챙길 물품 리스트와 정주행 할 넷플릭스 드라마를 선정했다. 만에 하나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치밀한 계획이라 아무래도 우스웠다.
하루가 지나도 검사 결과에 대해 연락이 오지 않았다. 검사 인원이 너무 많은가, 확진자여서 결과 통보가 늦는 것일까. 일에 집중하기 힘든 시간이 지나고 정확하게 28시간 만에 문자가 도착했다.
'코로나19 검사 결과는 음성입니다.'
목의 붓기는 여전하지만 문자 한 통으로 인해 모든 통증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가족들도 걱정을 덜었고 무엇보다 근거 없는 의심의 대상이 되었던 세탁기 설치 기사님도 누명을 벗었다.
생각해보면 상황이 더 불편했던 사람은 내가 아니라 설치 기사님이어야 맞다. 노 마스크로 말을 하는 고객에게까지 친절해야 하는 서비스직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며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가전제품을 설치해주러 왔다가 졸지에 의심을 사게 된 설치 기사님에게 마음으로 지은 죄에 대해 용서를 구할 뿐이다.
시작은 목감기 증상 하나였으나, 내 머릿속에서 감기로 시작된 공포는 걷잡을 수 없는 망상을 낳았고 망상이 증오로 이어지는 경험을 했다. 지금 나는 코로나보다 무서운 '코로나 포비아'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