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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동규 Apr 10. 2023

우산 ‘아래서’1)

제가 기독교인임을 먼저 밝힙니다.

     

오늘은 저를 포함한 기독교인에게 중요하고 기쁜 날, 부활절입니다.

그러나 당연하지만, 예수님의 부활이 있기 전에 죽음과 고난이 먼저 있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2)하신 걸 기념하는 종려주일부터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3) 부활주일 전까지의 일주일을 고난주간으로 정하여 지키고 있습니다.

     

제가 다니는 교회에서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저녁에 고난주간 집회가 열렸습니다. 참여한 많은 사람 가운데 저도 있었는데요, 그러나 집회 속에서 제가 겪고 느낀 많은 것들에 대하여서는 말을 아껴두고 집회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겪고 느낀 몇 가지에 대해 기록으로 남겨두고자 합니다.

     

집회는 매일 저녁 일곱 시 반에 시작해 아홉 시 조금 넘어 끝났는데요, 화요일 집회가 끝나고 교회 밖을 나서니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일기예보와 상관없이 우산을 늘 챙겨 다니다 보니 비가 좀 온다고 제 걱정을 할 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제 앞에서 중년 혹은 노년의 부부가 우산 없이 걷고 계신 게 아니겠습니까. 마침 두 분이 횡단보도에 발을 내딛기 전에 보행자 신호도 빨간불로 바뀌었겠다, 저는 다가가 조금 용기 내어 우산을 기울여 씌워드렸습니다. 두 분이 뒤돌아 제게 고맙다고 말씀하시는 순간, 제 뒤에서 “권사님! 이 우산 가져가세요!” 말씀하시며 한 분이 다가와 우산을 그 권사님 손에 쥐여주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권사님께서는 그러면 남는 우산이 있느냐고 거듭 물어보시며 한사코 거절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생각했습니다. 가방에 우산을 두 개 넣어 다녀야겠다고 말입니다. 저 자신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혹시 모를 다른 사람을 위하여서도 준비하는 게 예수님 마음이 아닐까 하였습니다.

     

목요일 집회가 끝나고 교회 밖을 나섰을 때도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저와 한 형제는 비가 그렇게 많이 오지 않아 괜찮다면서 우산을 쓰지 않고 지하철역까지 갔는데요, 보시는 분들이 안타까우셨는지 우산을 씌워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아, 저는 가방에 우산이 있었지만 쓰지 않은 것입니다, 믿어주십시오! 그중 한 분이 저희와 나란히 걸으며 말씀하시길 본인은 우산이 하나 더 있으시다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때 저는 감동 속에서, 화요일에 제가 했던 생각이 참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니 어느덧 어제가 된 부활절에 예배를 드리고 집에 와 다시 생각함으로 저는 제가 틀렸음을 고백합니다. 아주 말입니다. 먼저, 예수님이셨다면 우산을 많이 준비하셨을 것입니다. 아주 많이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당신의 손에는 남아있는 게 없도록 모두에게 나눠주셨을 것입니다. 하물며 우리로 비를 피하게 하시려고 그리하셨다 할지라도 그 사랑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거늘, 우리로 하여 죄로 인한 사망을 피하게 하시려고 십자가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저는 헤아릴 수 없습니다. 저는 틀렸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틀려서 기쁘다는 사실을 전하며 마칩니다.


1)  헤르만 헤세, 김이섭 역, 『수레바퀴 아래서』, ㈜민음사, 2020.

2) 요한복음 12:12-15 (NIV)

3) 사도신경, (N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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