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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동규 Jul 24. 2024

수영장에서


    올해 저는 교회 아동부에서 초등학교 4학년 아이들을 맡고 있습니다. 이번 주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2박 3일 동안 수련회가 있어서 가평에 갈 예정입니다. 다양한 활동이 있겠지만 여름에는 역시 물놀이를 빼놓을 수가 없겠죠? 네, 그러려면 수영장이 있어야 합니다. 수십 명의 아이가 들어가 같이 놀 수 있는 수영장 말이죠. 오늘은 지난 화요일에 가평에 미리 가 수영장을 설치하면서 들었던 몇 가지 생각을 적어보려 합니다.     

저를 포함해 열 명가량 되는 인원이 방수되는 바닥재 두 장을 포개어 깔고, 물을 채울 고무 풀장을 다 같이 들어 옮겨 바닥재 위에 펼치고, 디귿 모양 고리들을 풀장 바닥 사방에 있는 홈에 끼워 넣고, 지지대가 될 철근들을 디귿 모양 고리에 또 체결하고, 풀장을 세워 상부의 홈에 지지대들을 끼워 넣고 아래, 위로 고정하고 나니 어느새 짜잔! 하고 수영장이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그게 끝은 아니었습니다. 계속 사람 손에 닿으면 손때를 타듯이 오래 물이 채워져 있으면 어쩔 수 없이 물때가 남기 마련이니까요, 물때를 없애기 위해서 수영장 안을 청소해야 했습니다. 물을 뿌리면서 밀걸레나 스퀴지 같은 청소도구로 벽면이랑 바닥의 물때를 닦아내는 게 생각보다 힘이 많이 드는 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힘들기만 했다면 전 이 글을 쓰기 시작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수영장 설치를 진두지휘하시던 집사님께서 풀장의 물이 제 발목 높이까지 차올랐을 즈음 호스를 잠그시면서 작년에는 풀장에 물을 대략 성인 무릎 높이만큼 채웠다가 그 물이 다 빠지기까지 한 시간이 걸렸다고 말씀하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저는 그 말을 듣고 역시 경험이 중요하다고, 또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발목까지밖에 오지 않던 물이 빠지는 데에도 한참이 걸리더라고요. 사람 여럿이 작은 파도를 일으키면서 풀장의 세 귀퉁이에 있는 배수 구멍으로 물을 쉬지 않고 밀어 넣었는데도 말이죠. 정확한 시간까지야 재지 않았지만, 또 분명 덥고 뜨거운 날씨로 인해 진행이 더딘 것처럼 느껴진 것도 있겠지만, 바닥에 물기가 거의 남지 않기까지 시간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시간 속에서, 이제는 발에 간신히 차일 정도의 물결만 만들어질 만큼 풀장에서 물이 많이 빠지게 되었을 때 저는 산에 있으면서도 마치 바다에 있는 듯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샌들을 신고 바닷가 모래사장을 따라 걷다 보면 아주 낮게 밀려와 제 발을 적시고 거품을 남기며 사라지는 작은 파도가 생각이 났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다를 상상하며 저는 사람이 얼마나 작은지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 작은 수영장 하나 설치하고 물을 잠시 채웠다 빼 봤을 뿐인데도 “바다를 물로 덮음”이 얼마나 아연실색할 정도로 대단한 일인지 좀 피부에 와닿았거든요.      


    오늘날 광활한 우주를 그려보며 지구는 사실 너무나도 작은 점일 뿐이라고 여겨왔던지도 모르는 제게, 반대로 그런 지구의 바다조차도 사실 감당할 수 없이 깊고 거대하다는 걸 다시금 일깨워준 소중한 순간이자 온 세상을 만드시고 또 바다를 물로 가득 채우신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전능하심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하하, 역시 경험이 중요하긴 중요한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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