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동규 Aug 28. 2024

수영장에서 2

제목과 영 떨어져 있지만 2013년의 겨울로 시작을 하려 합니다. 저는 수학을 잘 못했습니다, 의사가 되고 싶다면서 말이죠. 결국 고3이 되는 겨울에 이과에서 문과로 전과했습니다. 그러면서 겪은 어떤 마음의 고통이나 당시의 제 침음에 대해서는 따로 적을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 짧게나마 저 자신을 위해 변론하자면 전체적으로 공부를 못하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정말입니다!


급하게 문과생이 되면서 제가 맞닥뜨린 문제 중 하나는 사회 탐구 영역이었습니다, 선택 과목이 참 많더군요. 돌아보면 그건 이미 상처입은 자존심 때문이기도 할 텐데, 저는 서울대를 가겠다며 한국사와 사회문화를 선택했습니다. 당시에는 한국사가 서울대를 가기 위한 필수 과목이었으니까요. 과목을 골랐으니 얼른 겨울 방학 특강을 들어야겠죠? 마냥 유쾌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동시에 감사하게도 저는 대치동의 유명학원에서 사회 문화 과목을 수강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소위 말하는 '스타강사'가 된 강사 선생님이 아직 무명일 때, 더 정확히는 그분이 강사로서 처음 칠판 앞에 섰을 때의 강의였습니다. 죄송하게도 개념이나 문제 풀이에 대한 기억은 남아있는 게 없습니다. 그런데 두 가지, 서로 다른 일화들이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하나는 그 강사 분의 실수로 아들이 얼굴 쪽을 다치게 되었을 때 너무도 미안하고 자신이 대신 다칠 수 있었으면 했다는, 자신이 대신 아팠으면 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본인이 길에서 도와드린 할머니가 사실은 엄청난 부자였다는, 그래서 역으로 자신이 도움을 약속받았다는, 그러므로 역시 사람은 선행해야 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이 이야기들이 10년이 지나도록 제게 남아있는 이유는 아마도 어떤 질문들로 남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질문들이란 다음과 같을 것입니다: 부모가 되지 않고도 '내가 대신 아팠으면, 내가 대신 다쳤으면' 하는 마음이 들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떤 대가가 있기를 바라는, 혹은 대가가 따를지도 모른다는 기대 아래 하는 선행은 진정 선한가?


네, 수영장에서 첫 번째 의문에 대해 제게는 나름의 답변과도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지난 번에 제가 설치한 그 수영장 근처에서 말입니다. 교회 수련회 둘째날, 제가 맡고 있는 반의 여자 아이 한 명이 준비운동을 마치고 수영장으로 가다가 비탈길에서 넘어졌습니다. 제가 아이들 준비운동을 시키고 수영복으로 갈아입으러 간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몇 시간을 아이들과 잘 놀다가 저녁을 먹을 때 되어서야 바닥에 쓸려 까진 아이 무릎을 보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얼른 챙겨간 연고를 찾아서 발라주고 반창고를 찾아서 붙여주는데, '아 이거 흉터 생기면 안 되는데,' '차라리 내 무릎이 다친 거였으면' 하면서 마음이 내려 앉았습니다. 아이 부모님께도 너무 죄송하더라고요. 동시에 많이 놀랐습니다. 저는 일 주일에 대략 한 시간 정도를 마주하는 선생님일 뿐인데도, 잠시나마, 작게나마 부모의 마음을 체험한 것 같았거든요. '무릎이 아니라 얼굴이었다면?' '쓸린 게 아니라 더 심한 상처였다면?' 이런 질문들이 뒤따를 수도 있겠고, 그런 질문에 지금의 제가 그럴듯하게 대답하지도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잘 답할 수 없다고 생각할수록 도리어 느껴지는 게 있습니다.


여지껏 저를 향한 사랑, 제 부모님의 그 사랑, 그 가없는 것 말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