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posumer Aug 02. 2022

그해 겨울, 노천탕

사진 한 장처럼만 남아있는 기억

 솔직히 네스트 호텔에 갔던 그해 겨울이 정확히 언제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확실히 기억이 나는 것은 아내와 함께 갔다는 것 정도다. 인천공항 근처에 있는 유명한 호텔은 인천 하얏트 밖에 없었다. 파라다이스 시티도 생기기 전이었다. '디자이너스 호텔'이라는 컨셉이 유행하던 때였고, 연말이었더 네스트 호텔 로비에는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와 트리 아래에는 와인병들이 풍성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네스트 호텔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3층 사우나에 있던 노천탕(Open Air Bath)이었다.

 

 영하의 날씨에 유리문을 열었더니, 오뎅바처럼 노천탕 표면에서는 하얀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아무도 없는 온탕에 천천히 들어가서 앉았다. 사방은 벽돌벽으로 막혀있지만 천장은 뚫려있어서 밤하늘을 볼 수 있었다. 일본 유후인 작은 료칸에서 즐겼던 히노키 나무로 만든 노천탕과 비교한다면, 그 즐거움이 조금 덜했을 것이다. 그래도 네스트 호텔 노천탕에서 바라본 밤하늘과 희미한 별들은 아직도 내 머릿속에 사진 한 장처럼 남아있었다.

 

 몇 년 만의 네스트 호텔 방문은 나 혹은 아내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5살 아들의 어린이집 방학에 맞춰서 아내가 준비한 호캉스였다. 야외 수영장에서 신나게 논 아들과 함께 호텔 근처 허름한 해물칼국수 집에서 저녁을 먹고 호텔로 돌아왔다. 방학이지만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영어 화상 수업이 예정되어 있었다. 영어 화상 수업을 할 때도 보호자 한 명이 필요하다. 영어 화상 수업 시간은 20시 50분에서 21시까지였고, 사우나 폐장 시간은 22시였다. 아내에게 미안하지만 사우나에 좀 다녀오겠다고 했다. 아내가 흔쾌히 허락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내려갔다.


 3층 사우나 입구에서 룸 넘버를 말하고 입장했다. 역시나 코로나 때문에 샤워부스는 촘촘히 벽이 쳐진 1인용이었다. 간단히 샤워를 하고 바로 노천탕으로 향했다.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노천탕 문을 열었는데, 아무도 없었다. 무더운 여름밤이어서 그런지 40도인 노천탕에서 김이 피어나기는 했지만, 그해 겨울 같지는 않았다. 열기가 식어버린 어묵탕 같다고 할까? 노천탕에 들어가서 밤하늘을 보니, 희미하게 별이 조금 보였다. 희미하게 보이는 별을 보면서 이제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 그해 겨울 노천탕에서의 추억을 자세히 기억을 해보려고 애썼다. 기억의 뼈대가 앙상해서 그런지 도무지 살을 붙이기가 어려웠다.

 

 노천탕에서 잠시라도 여유롭게 무념무상을 즐겨도 좋았을 텐데, 단 한순간도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 어려웠다. 수영장을 다녀온 아들이 열이 나지 않아야 할 텐데, 회사에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잘 되어야 할 텐데, 이런 식으로 운동을 해서 9월에 트라이애슬론 대회 완주를 할 수 있을지, 가끔 이유 없는 아내의 두통은 왜 그런 것인지... 노천탕에 앉아서 보니 끝없이 피어오르는 연기처럼 생각이, 또 무엇인가에 대한 걱정이 끝도 없이 쏟아져 나왔다. 벽 측면 배수구로 쏟아져 내리는 물처럼 내 생각과 걱정들도 꺼내서 버리고 싶었다. 그해 겨울 노천탕에서 나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때는 아무 걱정이 없었을까? 결국 노천탕에서 5분 만에 나왔다.

 다음 날 아침, 푹신한 호텔 침대에서 억지로 몸을 일으켜서 밖으로 나왔다. 아침이지만 더워서 산책을 하는 사람도 별로 없는 산책로를 달렸다. 호텔에서 조금 떨어진 산책로는 약 500m 거리였고, 돌아올 때는 호텔 건물 주위로 뛰어서 총 달린 거리는 약 1.5km였다. 호텔 정문 쪽에 서서 호텔 오른쪽을 바라보았다. 내가 어제 5분간 앉아 있었던 노천탕이 3층 저기쯤이겠지? 이제 적어두지 않으면 사라져 버리는 기억들을 조금이라도 모으고 싶었다.

 그해 겨울, 희미해진 노천탕의 추억 아니 기억은 어디로 갔을까?

작가의 이전글 매버릭, 만약 회사원이었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