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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osumer Nov 28. 2023

빨래방 근무일지 231127

쉽지 않은 말통 세제 뚜껑 열기

 올해 8월부터 빨래방 청소를 주 2~3회 하고 있다. 2년전부터 빨래방을 운영하던 지인들과 동업을 하는 것이고, 아직은 모르는 것이 많아서 첫달은 신입사업 교육을 받는 느낌이었다. 이제 3개월이 되어서 어느 정도 청소일이 손에 익기는 했지만, 아직도 생각하지 못한 난관에 부딪힐 때가 있다.


월요일 아침, 빨래방 청소의 난관은 말통에 담긴 세제 뚜껑 열기였다. 흔히 '말통'이라고 부르는 큰 통은 집보다는 가게에서 볼 수가 있다. 치킨집에서 사용하는 튀김용 식용유를 집에서 사용할 일이 없는 것처럼 집에서는 빨래방에서 사용하는 20리터짜리 세제를 집에서 사용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작고 귀여운 가정용 세제와 달리 20리터 세제의 뚜껑을 열기 위해서는 몇 가지 단계를 거쳐야만 한다. 첫째, 돌려서 뚜껑을 열기 위해서 뚜껑을 고정하고 있는 틀과 뚜껑을 분리해야 한다. 둘째, 힘겹게 뚜껑을 돌려서 연다. 셋째, 뚜껑 안에 있는 속뚜껑도 뽑아낸다. 악력에 자신이 있다면 첫번째 과정을 생략할 수 있다. 덩치가 좋거나 사회인 야구에서 투수를 하는 분들이면 가능할 수도 있는데, 힘차게 뚜껑을 돌리기만 해도 뚜껑은 틀과 분리가 된다.

중학교 때 친구들이 악력기를 들고 다니는 것을 보고 따라 해보기는 했지만, 나는 지금도 악력은 자신이 없다. 빨래방 청소는 관리실 안쪽으로 가서 매장 키오스크 전원을 끄고, 세탁기와 연결된 세제통에 세제를 채워넣는 것이 시작이다. 월요일 아침 청소 시작부터 순조롭지 못했다. 이제까지도 힘들게 열었던 말통 세제 뚜껑이 3차 시도에도 열리지 않았다. 머리 옆쪽에 땀이 한 방울 흐를 정도로 힘이 들어서 잠깐 쉬었다. 갑자기 예전 대행사에서 마라톤 현장에서 스포츠음료를 나누어줄 때 보았던 오프너가 생각났다. 500ml 짜리 스포츠음료는 여자분들이 잘 열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서 미리 오프너를 가지고 약간 열어서 나누어 주었다. 그러니까 '말통 오프너'라는 것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이 '말통 오프너'가 내 손에는 없다는 것이었다. 바로 다시 말통 뚜껑에 매달려서 힘을 빼는 것은 성공 가능성이 낮은 것 같아서 관리실 밖으로 나가서 빨래방 청소부터 했다. 건조기 먼지망에 있는 먼지 제거 등 빨래방 청소를 할때면 자연스럽게 무념무상의 상태가 된다. 그런데 오늘은 계속 마음 깊은 곳에서 '말통 뚜껑'이 떠올랐다. 건조기 먼지망에 있는 먼지를 술술 흡입하는 진공청소기처럼 뚜껑을 한방에 따버리고 싶었다. 요즘 6살 아들이 좋아하는 마동석이 나오는 보일러 광고의 카피도 생각났다.


"기술을 써!"


아! 말통 뚜껑을 따기 위해서는 어떤 기술을 써야하는 것일까? 빨래방 청소의 마지막 단계인 바닥 대걸래질을 하기 위해서 다시 관리실로 들어왔다. 공구통에서 몽키 스패너를 찾아봤다. 몽키 스패너를 찾기는 했는데, 말통 뚜껑을 감쌀 수 있는 크기가 아니다. 한숨을 쉬면서 대걸래를 빨다가 보니 고무장갑이 눈에 들어왔다. 어렸을 때 꽉 잠겨서 열리지 않는 다진 마늘이 담긴 유리병이 열리지 않을 때, 뚜껑에 고무줄을 감아서 열었다. 비장하게 고무장갑을 들고 말통 앞에 섰다. 전력을 다하기 위해서 관리실 의자에 앉아서 두 다리로 말통을 최대한 단단히 고정하고 뚜껑에 고무장갑을 감아서 두 손으로 감싸쥐고 돌렸다. '끄으응~' 약 3초간 전력을 다했다. 역도로 치면 4차 시기 결과는 성공이었다. 드디어 말통 뚜껑이 열렸다. 세제통에 세제를 부으면서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살다보면 말통 뚜껑 열기와 같은 일들이 가끔있다. 여러 번 해도 안되서 포기하고 있었는데, 저절로 해결이 되는 경우가 있다. 또 반대로 어떤 프로젝트는 내가 판을 다짜놓았는데, 마지막에 다른 사람이 와서 낼름 성과를 챙겨가는 경우도 있다. 두 가지 경우 모두 성과가 나기는 했지만 마냥 기뻐하기는 어렵다. 매일 똑같아 보이는 빨래방 청소도 힘겨운 말통 뚜껑 열기처럼 어떤 일에 한 과정일까? 여튼 세제를 보충했으니 이제 수고할 사람 아니 기계는 빨래방에 있는 세탁기들이다.


P.S. 이 글을 쓰기 전에 네이버에 '말통 뚜껑 열기'라는 단어로 검색을 해보니 말통 뚜껑 열기는 어려운 일이 맞다. 말통 뚜껑을 여는 방법을 문의하는 맘카페 글도 있고, 몽키 스패너가 아니라 드라이버와 망치라는 더 원초적인 공구로 뚜껑 열기 비법을 공유한 글도 있다. 그리고, '말통 오프너'라는 제품도 판매 중인다. 듬직해보이는 3 in 1 말통 오프너 가격이 2,600원인데, 배송비가 3,000원인 것이 다시 고민을 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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