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기 좋은 날

12월 1일

by 꿈꾸는오월

12월 1일. 심지어 월요일.

우연처럼 겹친 1과 월요일, 그리고 한 해의 연말을 마무리하는 12월. ‘시작’이란 단어에 이보다 더 어울릴 날이 또 있을까. 어쩌면 1월 1일보다 좋은 시작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작이란 날에 걸맞게 미뤄둔 기록을 정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선명한 기억보다 흐릿한 기록이 낫다는, 이동진 평론가의 말을 문득 떠올린다.

달력을 훑어보니, 지나간 봄과 여름과 가을이 피어오른다. 증발하기 전에 잡았어야 하는데, 이미 우주의 대기로 날아가 버린 기억이 꽤 된다. 중력을 거스른 기억을 나라고 할 수 있을까.

습관처럼 후회를 하려다 말았다. 남아있는 작은 기억에 의존해서라도 기록을 해야겠다는 다짐만 남기려고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과거는 언제나 미화된다는 말로도 스스로 위로해 본다. 어쩌면 한 발짝 떨어진 시간, 상처는 아물고 기쁨도 차분히 가라앉은 지금의 담담한 마음이 더 좋을 수 있다고.

12월의 첫날에, 다시 1월로 돌아간다. 같은 겨울로 맞물린 과거와 현재가 혼재해진다. 때때로 1월의 어느 날, 예컨대 새해 첫 일출을 보러 간 1월 1일의 기억은 생각보다 선명하다. 흐린 날씨, 잔뜩 낀 구름 사이 밝아오던 하늘은 또다시 아쉽다.

눈이 많이 내렸던 1월 5일, 신나게 눈을 밟고 산책했던 것도, 셋째 주 일요일 오후엔 좋아하는 카페에서 책을 읽었던 것도 떠오른다.

조금씩 잃어버렸던 기억을 되찾아나가는 것이 반갑기도 하고, 또 재미있기도 하다. 머릿속의 퍼즐을 맞춰 나가는 게 쉽진 않지만. 그럴 때마다 기록하지 않았던 과거의 나를 탓하는 것은 언제나 쉽다. 쉬운 방법보단, 지금이라도 떠올려보려 어렵게 애를 써 본다.

기록을 해 보겠다 마음먹으면서, 오늘 하루를 어떤 기록으로 채워볼까 생각하게 됐다. 어떤 사진 혹은 글을 남겨야 할지도. 마치 내 일상의 편집자가 된 느낌이다. 나를 타자로 생각하기도 하고, 혹은 일상을 한 발짝 떨어져서도 생각하게 되는.

어쩌면 기록이란 시적인 순간은 아닐까. 매일 같은 일상, 일기에 쓸 이벤트 하나 없는 똑같은 월요일이라도 그 속에서 새로운 시선 하나, 순간 하나를 발견해 내는 일.

일상이 성사라는, 그 성스러운 순간들을 활자로 붙들어 내는 일. 순간을 들여다보는 시선의 높이도 조금씩 다르게 봐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차분히 남은 기억을 떠올린다. 시작이 세 번씩이나 겹친 오늘, 왠지 올해의 마무리가 좋을 것만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