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쌈무 Jan 16. 2024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영감과 위안을 주는 창조의 키워드들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이 책은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그림책 작가 10인의 아뜰리에를 방문하여 인터뷰를 통해 상상력과 창의성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가는 내용이다.


책의 첫 페이지부터 시작하는 순간 한 번도 멈추지 않았고 결국 딱 한 번의 긴 호흡으로 책을 완독했다. 솔직히 말하면 책을 덮는 순간 작가들의 이름이나 작품명, 혹은 그림을 그리는 기법 등이 자세하게 기억나지는 않았다.

 


그림책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런 정보들이 우선순위로 기억에 남겠지만, 나에게 더 인상 깊었던 내용들은 10인의 작가들이 내리는 창의성의 정의, 창의성을 유지하기 위한 라이프스타일, 기획의 관점 등이었다.


삶이 무미건조하고 팍팍하게 느껴질 때 창의성을 회복할 수 있게 도와주는 키워드들이 각 작가별로 명확하게 제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창의성과 기획에 관한 도서는 시중에 넘쳐나지만,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창의성은 커리어나 프로젝트의 성공에 도움을 주는 창의성이라기 보다 개인의 인생을 조금 더 따뜻하고 유의미하게 살아갈 수 있게 도움을 주는 창의성으로 다가왔다.




각 작가별로 가장 인상 깊었던 인터뷰 문장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물론, 인터뷰의 전체 맥락 위에서 문장을 소화했을 때 더 인상 깊게 다가오지만 단독으로 소화했을 때도 생각보다 큰 인사이트를 준다고 생각한다.



1. 관찰하는 시선 - 조엘 졸리베


"관찰력은 보는 대상에 감정이입을 하거나 감탄할 줄 아는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감탄하는 마음이 관찰의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관찰이라는 행위 안에는 사랑의 성분이 분명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관찰력을 기르려면 '좋다', '예쁘다'하는 식의 첫인상에 머물러선 안 돼요. '이것은 무엇인가,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어디에서 온 이미지인가, 누가 만든 것인가... 주체적으로 정보를 소화하고 판단하면서 보려고 하는 것이 관찰력과 시각적 문해력을 기르는 첫걸음이에요."



2. 상상을 만드는 질문 - 키티 크라우더


"아이나 어른 할 것 없이 창작을 두려워하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독특하고 훌륭한 것을 내놓아야 한다'라는 목표 의식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 유일한 창작의 목표는 기쁨입니다. 저 스스로의 기쁨을 위해 이 일을 합니다."



3. 공감의 쓸모 - 올리비에 탈레크


"자기 안에 함몰되기보다 세상을 바라보고,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다가가 말을 걸고, 새로운 경험이 자신을 어디로 데려가는지 봐야 합니다. 그래야 한계를 조금씩 깨면서 성장할 수 있어요.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보면 어떨까 상상해 보는 게 공감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공감 능력이 없으면 상상도 허약해질 수밖에 없답니다."

-

"결국 우리가 찾는 건 놀라움입니다. 나를 놀라게 하는 무언가와 만나야 생각이 열립니다. 빤히 다 아는 것에선 놀랄 일이 별로 없어요. 놀라움을 만나기 위해서는 몰랐던 세상에서 새로운 경험을 할 수밖에 없지요."




4. 치유하는 상상 - 클로드 퐁티


"어른들은 이 세상을 이미 파악했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믿는 대로 세상을 정리 정돈해서 봅니다. 어른이 된 이후의 감탄은 결심에서 나옵니다. 나는 이제부터 여기 앉아서 구름을 보겠다. 늘상 보던 구름이지만 저것이 흥미롭게 느껴질 때까지 앉아서 바라보겠다고 결심하면 됩니다."




5. 작은 용기 - 세르주 블로크


"내 앞에 있는 상황과 논다는 생각으로 덤비는 거죠. 노는 마음이 중요해요. 유희하는 마음은 여유를 낳고, 여유는 작은 용기를 낳으니까요좋은 유머는 질문을 던지고 생각의 방향을 바꾸고 확장해요. 유머는 단순히 개그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슬픔, 분노 등 다양한 감정을 담아내는 그릇이 되죠. 또 삶이 고되게 느껴질 때 유머가 삶을 조금 더 상냥하게 만들어줍니다."



6. 결점에서 태어난 창의성 - 벵자맹 쇼


"제가 다른 창작자들 작품에서 감동받는 지점은 기계 같은 완벽성이 아니라 인간적인 빈틈이거든요. 우리가 똑같지 않은 이유도 그 빈틈과 서투름에 있고요. 그걸 소중히 여겨야 해요. 만약 모두가 완벽한 그림을 그리게 된다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그림이 전부 완벽하게 지루할 겁니다. 창의성을 방해하는 건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고, 잘해야 한다는 생각은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라는 믿음에서 나와요. 엄밀히 생각해 보면 스스로를 기쁘게 하는 것 말고 우리가 만들어낼 수 있는 변화는 많지 않아요."



7. 깊은 심심함 - 에르베 튈레


"아이들은 심심하면 알아서 자기만의 방법으로 재미를 찾게 되어 있거든요. 지금도 저는 심심함과 시간의 공백을 좋아해요. 비행기 탈 때 아이디어가 가장 많이 샘솟는데 그건 공항에서 무료하게 기다리는 시간이 있어서예요. 자신에게 심심할 틈을 주는 건 창작자에게 있어서 무척 중요한 일이랍니다.

예술가나 창작자처럼 새로운 무언가를 찾고 있는 사람들은 늘 더듬더듬 거리며 불확실성을 헤매고 다녀요. 답을 찾을 때까지 시간도 걸리고 불안하기도 해요. 그 과정은 늘 무료하고 어렵죠. 생산적인 심심함이란 그런 거예요."



8. 다르게 보기, 오래 보기 - 안 에르보


"몽상은 창조적인 사고를 키워내는 둥지입니다. 몽상은 세상을 다르게 보고, 오래 보고, 이면에 대해 질문하는 시간이죠. 영감이 어디에서 오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데, 저는 몽상하며 온다고 답하고 싶습니다. 자기 안에 잠자고 있는 창의성을 깨우려면 불편한 일, 해보지 않은 일, 잘 못하는 일,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에 뛰어들어야 해요. 편한 게 늘 좋은 건 아니랍니다. 편안함 안에서는 세상을 보는 다른 관점을 얻을 수가 없어요."



9. 시간 사용법 - 이치카와 사토미


"자기가 좋아하는 게 뭔지 알아야 행복 쪽으로 방향성을 틀 용기도 생깁니다. 무슨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낼 때 나머지를 잊어버릴 수 있다면 그게 당신이 진짜 좋아하는 일이고, 당신의 열정이 불타오를 수 있는 일이란 신호입니다지금도 고민이 생기면 철저하게 혼자가 됩니다. '넌 어떻게 생각해?' '지금 이 결정이 마음에 들어?' 이렇게 계속 질문을 던지요. 만약 그 친구가 '응'이라고 답하면 떨치고 일어납니다. 머뭇대지 않고 추진하죠."



10. 자기 믿음 - 베아트리체 알레마냐


"창의성이 최초로 태어나는 순간은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할 때입니다. 그 느낌과 생각, 충동, 자기 안의 목소리를 믿고 그리고 자신을 던지는 것, 저에겐 그 창의성입니다. 자기 믿음 없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은 불가능해요예전엔 부족함을 어떻게 채울까에 혈안이 되었다면 지금은 단점이 관점에 따라선 강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한 가지 면에 미흡해도 다른 면에선 충분할 수 있다고, 우리 안에 이미 충분한 가능성과 힘이 있다는 메시지를 책에서 전하고 싶어요. 다른 누군가가 되려 하지 않고 비로소 저 자신으로, 제 자리에서 온전히 행복한 사람이 된 지금의 제 경험담을 담아서요."



각각의 그림책 작가들마다 명확하게 키워드가 구분되는 이유는, 우리 삶에 필요한 가치들도 그만큼 명확하게 나눠져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조금 더 세심하게 일상을 관찰하고, 때로는 심심함과 무료함을 허락할 줄도 알며, 작은 용기를 내보고, 자신의 결점을 수용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창의성을 발휘하기 위한 삶의 자세이기도 하지만, 조금 더 인생을 충만하게 살고 싶은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가치일 것이다.


작가가 마지막에 전하는 메시지처럼 창의성이란 결국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는 용기'다. 2024년에는 조금 더 용기를 내기 위해 이 책을 두고두고 읽어야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