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희량 Jul 09. 2024

낯섦의 필요

3년 동안 회사 생활을 하면서도 해외 여행은 다녀오지 않았다. 해외 여행이란 하루하루 허덕이는 직장인이 짧고 강렬한 해방을 느낄 수 있는 순간임에도. 일하는 3년 내내 공부할 미래를 계획한 건 아니었는데, 그저 돈 쓰는 일이 무서웠던 것 같다. 몇십 몇백을 쓰는 일이 그렇게 두려웠다. 줄어드는 통장 잔고 때문만이 아니라, 확립되지 않은 경제 감각이 무너질까봐. 흥청망청 쓰다가 패가망신할까봐.


타국 땅을 밟아본 지 무려 5년이 지났다. 2019년 호주에서 펑펑 쓰고 펑펑 놀다 왔으니, 한동안 우리나라 안에서 자숙 기간을 가진 셈이다. 귀국 직후에는 자국민 신분이라는 안정감으로 인해 국내에 머무는 상태를 반기기도 했다. 호주에서 난 참 위태롭고 불안정한 존재였다. 어디까지나 이방인인 사람. 낯선 세상 속에서는 당황할 일들이 많았고, 적대적인 사람들이 적지 않았고, 날 보호해주는 제도가 눈에 보이지 않았다. 우리나라에 돌아오니 비로소 단단한 보호막을 두른 느낌이었다. 이렇게 해외에 대한 로망이 깨어졌다.


그러나 깨달음도 잠시. 시간이 지날수록 난 자꾸만 새로움을 원했다. 문을 열면 낯설고 신기한 거리가 펼쳐지길 바랐다. 처음 듣는 지역에 뚝 떨어지고 싶었고, 처음 보는 식생을 보고 감탄하고 싶었고, 색다른 표지판과 거리의 모습을 두리번거리며 구경하고 싶었다. 이 갈망은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시간에 비례하여 커졌다. 올해 나는 참을 수 없이 밖으로 나가고 싶었고, 이 마음을 쉴새없이 꺼내놓으며 애인을 들들 볶았다. 여행 가고 싶어. 그런데 내가 지금 갈 수 있는 상황일까? 돈도 안 벌면서. 쓰고만 있는 학생 주제에.


한참 괴롭힘을 당한 애인이 해결책을 내놓았다. 가자고. 사실 이런 심플한 단어는 아니었고, 해외 여행을 결정할 용기도 없으면 현실을 수용하고 가만히 있던가, 이런 식이었던 것 같다. 끝없이 이어지는 여행 타령의 결론이었다. 우린 잠시 싸웠지만, 머지않아 신나게 비행기를 예약했다. 그리고 난 며칠 동안 여행에 대한 기대감을 쏟아내며 다시 애인을 들들 볶았다. 이 야단법석은 한참 괴롭힘을 당한 애인이 불만을 토로할 지경이 되어서야 멈추었다. 나도 마침 할 일이 쏟아져 기대감은 묻어두어야 했다. 쳐다보고 생각하면 뭉게뭉게 설렘이 피어오르니, 쳐다보지도 생각하지도 않으려 애썼다. 그래서 그런지 여행 전날에도 여행을 실감하지 못하고 시큰둥하게 짐을 쌌다. 우리 내일 정말로 여행 가는 거야? 진짜?


막상 도착한 도쿄는 불편했다. 지도도 어렵고, 사람도 많고, 심지어 현금이라니. 뜻밖의 아날로그한 방식에 적응하느라 어려움을 겪었다. 오랫동안 인상을 찌푸리며 있다가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이게 여행이었구나. 내가 바랐던 낯섦은 불편을 수반한다. 여행에서 어떻게 매끄러움과 원활함을 기대할 수 있을까. 난 시간과 돈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예민했고 긴장했다. 우린 숙소에 가는 도중 한참을 방황했는데, 참 아쉬웠다. 난관에 봉착한 순간을 싫어하느라 주변의 신기한 풍경을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다는 것이.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야 그 낯설고 신선한 거리가 그립다. 거리 한복판에 있었을 때는 완전히 느끼지 못했는데, 추억이 되고 나서야 그때의 분위기와 감정이 제대로 보인다. 그때는 어디론가 가는 데 집중하느라,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느라 살펴보지 못했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이곳이 어떤 분위기를 풍기는지. 하지만 존재했다는 경험 그 자체로 장소는 기억에 남는 듯하다. 이다바시의 거리, 신주쿠의 거리, 가와구치코의 거리는 짧은 영상처럼 기억 속에 보관됐다. 내가 이런 걸 원했어. 다른 세상을 엿보고 오는 것. 짧은 기간이었고, 유명하다 싶은 곳은 모두 피한 까닭에 내세울 만한 일정도 없는 여행이었지만 처음 만나는 도시와 자연의 풍경은 생생히 담아왔다. 여행이 마음에 기록되는 방식은 신비롭다.


돌이켜보니 내가 여행을 원했던 이유는 새로운 세상과 부딪혀서 몸으로 적응해가는 과정이 매력적이기 때문이었다. 적응된 세상의 효율과 편리는 진부하기에, 낯선 세상의 불편과 시행착오가 주는 생동감이 간절했다.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세상이 이렇게 다채로웠음을 깨닫는 시간이 필요했다. 이 감각이 건네는 활력은 너무 중독적이라 끊임없이 여행을 갈망하게 만든다. 다시 또 한국에서, 나는 바깥을 꿈꾼다. 언젠간 또 떠날 수 있겠지. 낯선 곳으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