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래코드 플래그십 스토어를 둘러보고 작성한 글을 뒤늦게 발행한다.
래코드는 코오롱FnC에서 운영하는 브랜드로, 주로 업사이클링을 통해 디자인한 제품을 선보인다. 재고를 해체하고 재조합하거나, 자투리 원단과 부자재를 활용하기도 하고, 쓰고 남은 산업 자재를 재활용하기도 한다. 이는 패션산업의 고질적인 재고와 폐기물 문제에 대한 대안이며, 패션의 지속가능성, 책임 있는 생산과 소비에 대해 고민한 결과다.
래코드는 2022년에 브랜드 10주년 기념 전시 ‘리;콜렉티브: 25개의 방’을 진행했다. 이 전시를 통해 래코드는 ‘리;콜렉티브(Re;collective)’라는 이니셔티브를 시작했는데, “고쳐 쓰고, 다시 쓰는” 업사이클링에 참여를 요구하는 캠페인이다. 다양한 아티스트와 협업하거나, 관람객의 참여를 유도하기도 하며 업사이클링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행동을 지향한다. 래코드의 플래그십 스토어도 이러한 주제 아래에서 구성되었다.
플래그십 스토어는 제품 판매뿐만 아니라 브랜드의 이미지와 정체성을 함께 전달하는 공간으로서 소비자와 브랜드와의 관계를 긴밀하게 연결한다 . 브랜드는 이를 효과적으로 담아내기 위해 예술을 활용한다. 래코드 플래그십 스토어에도 다양한 아티스트의 작품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예술작품은 판매 공간이라는 상업적인 특징을 상쇄할 뿐 아니라, 래코드가 표방하는 메시지의 진정성을 증명한다. 래코드의 플래그십 스토어에 배치된 작품은 2023년 밀라노 디자인 위크(FuoriSalone 2023)에서 진행된 ‘리;콜렉티브’ 전시의 작품들로, ‘업사이클링’이라는 공통의 과제를 공유한다. 재단 후 버려지는 원단, 헌 잡지책, 불량 에어백, 해양 폐기물 등을 활용하여 업사이클링한 작품들이다. 즉, 이를 통해 래코드가 전달하는 지속가능성에 대한 메시지를 연속적으로 전달할 수 있으며, 해당 주제에 대한 브랜드의 진정성을 함께 드러낸다.
또한, 지속가능성에 대해 고민하는 다른 창작자와의 연결을 보여줌으로써 연대적 참여를 강조한다. ‘리;콜렉티브(Re;collective)’에서 ‘collective’는 ‘공동의, 집단의’라는 뜻을 가진다. 즉, 현재의 지구적 문제는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 ”에 더 많은 사람의, 다양한 영역에서 지속가능성을 도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한다. 플래그십 스토어는 래코드가 패션 분야에서 지속가능성을 고민한 결과와, 다른 작가들이 디자인, 가구 등의 타 분야에서 지속가능성을 고민한 결과를 나란히 배치했다. 이를 통해 각자의 분야에서 함께 노력한 연대의 관계를 나타내며, 그 노력이 모여 하나의 공간을 구성함으로써 연대가 이뤄낸 결실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이 공간이 형성하는 지속가능성 담론의 중심적인 주체가 래코드임을 전달한다. 래코드를 중심으로 다양한 배경의 작가가 모였고, 이들이 각자 펼쳤던 지속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래코드로 수렴했다. 래코드는 전지구적 문제 앞에 발벗고 나서는 행동하는 주체이자 선구자로서의 이미지를 확립한 것이다.
이처럼 래코드 플래그십 스토어는 예술작품을 함께 전시함으로써 래코드가 전달하는 연속적인 메시지를 증명하고, 다양한 분야와의 연대를 보여주며, 나아가 래코드의 선구적인 위치를 알린다. 지속가능성, 특히 업사이클링이라는 브랜드 정체성과 일치하는 예술작품을 통해 브랜드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구성하고 있다.
래코드 플래그십 스토어에는 부스가 하나 있다. 래코드 산하의 또 다른 브랜드 “MOL(Memory of Love)”의 부스로, 개인 맞춤형 리디자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브랜드다. MOL 부스의 앞에는 MOL에서 제작한 여러 제품이 걸려 있는데, 옷걸이마다 제품에 담긴 스토리가 함께 적혀 있다. “할머니의 추억이 담긴 OLD CELINE 바지를 손녀의 첫 사회생활을 응원하는 세상에 하나뿐인 재킷으로 리디자인”되고, “할아버지의 캐시미어 니트 조각을 재조합하여 만든 귀여운 손녀의 첫 니트 가디건”이 걸려 있거나, “아버지가 젊은 시절 일하실 때 입으시던 재킷과 니트가 어느덧 훌쩍 자란 아들의 옷으로 재탄생”한 이야기가 전시되어 있다.
‘리;콜렉티브(Re;collective)’에서 ‘recollective’의 뜻은 ‘기억의, 추억의’라는 뜻을 가진다. 누군가 입었던 의복은 한 사람의 일생과 친밀하게 얽히며 특정한 기억과 추억,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렇게 특별한 의미를 가지게 된 의복은 수집의 대상이 되거나, 전시될 만한 오브제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 MOL은 이러한 의복의 가치에 주목하여, 개개인의 추억이 담긴 제품을 오브제로서 전시한 것이다.
또한, MOL은 업사이클링의 고급화를 이뤄냈다.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MOL에서는 의뢰자는 상주하는 네 명의 디자이너 중 원하는 디자이너를 선택할 수 있으며, 개인의 서사를 최대한 살려내는 방향으로 제작된다고 한다. 예를 들어, MOL의 한 제품은 다양한 브랜드의 라벨이 여기저기 장식되어 있고, “의뢰자의 개인적인 패션 브랜드 취향의 아카이브”라는 설명이 달려있다. 의뢰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옷을 해체하고 재조합하며 리디자인하기 때문에, MOL의 제품은 높은 가격으로 책정된다. 스토리텔링을 통해 업사이클링이 빚어낼 수 있는 경제적 가치를 높인 것이다.
MOL은 옷 한 벌이 지닌 가치를 높임으로써 맞춤형 업사이클링이 오뜨 꾸뛰르를 대체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MOL의 고객은 단순한 소비자가 아닌 ‘의뢰자’이며, 의뢰자의 요청과 디자이너의 역량에 따라 다양한 디자인이 가능하다. 이는 ‘고급 맞춤형’ 의복, 오뜨 꾸뛰르를 연상시킨다. MOL의 제품은 고가의 맟춤형 의복이며, 유일무이한 업사이클링의 특징까지 더해져 희소해야 한다는 오뜨 꾸뛰르의 조건을 채운다. 최근 럭셔리 브랜드들의 업사이클링은 재활용된 재료를 활용하는 것에 그치고 기성복의 프로세스를 따르는 반면, 래코드는 ‘지속가능성’이라는 글로벌 트렌드에 힘 입어 새로운 형태의 맞춤형 제품을 등장시켰다. 럭셔리 브랜드에서 개인 맞춤형 업사이클링 서비스를 활용하게 된다면, 이 시대의 새로운 오뜨 꾸뛰르로 떠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과연 충분할까’ 하는 의문이 든다. 전시 작품은 ‘사용’되지 않고도 업사이클링의 가치를 충분히 전달할 수 있을까? 플래그십 스토어에 전시된 물건은 ‘사용’이라는 본래의 목적이 사라지고 전시 오브제로서만 존재할 뿐이다. 또한, 전시된 아티스트의 작품과 MOL의 제품 모두 업사이클링이 예술적인 기교가 필요한 작업처럼 보이게 한다. 소수가 가끔 경험할 만한 이벤트에 그치는 것이다. 업사이클링을 일상에 쉽게 적용하고, 이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고민이 필요하다.
아울러 래코드는 지속가능한 패션 문화를 앞장서서 외치는 만큼, 플래그십 스토어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헌옷을 수거하거나, 자투리 원단 또는 남은 부자재를 수거하는 거점으로 삼을 수도 있고, 나아가 수선 관련 워크숍을 진행하는 식으로 업사이클링 문화를 확산해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기존에 래코드에서 진행했던 워크숍은 카드 지갑이나 에코백 등의 잡화에 그쳤고, 재료도 미리 준비된 것을 활용했다. 실제로 소비자가 오래 입은 옷들이 다시 새 옷처럼 바뀌는 과정을 실감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래코드의 플래그십 스토어는 업사이클링을 더 쉽고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는 중심적인 장소가 되어야 한다.
래코드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건, “쉽게 버리지 않는다”는 인식을 전파하고 있다는 점이다. 옷 한 벌에 담긴 가치를 일깨우고, 그 특별함을 극대화시킨다. 이러한 래코드의 가치를 함축해서 보여주는 플래그십 스토어가 지속가능한 패션 문화에 대한 더 다양한 논의와 적극적인 활동을 펼쳐나가길 바란다.
참고문헌
황진주, 임은혁. (2020). 럭셔리 패션 브랜드의 플래그쉽 스토어에 나타난 예술화. 한국의류산업학회지, 22(4), 413-431
Amy de la Haye. (2018). A Critical Analysis of Practices of Collecting Fashionable Dress. Fashion Theory, 22(4-5), 381-403
리콜렉티브’ 사이트 설명(https://recollective.recode-glob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