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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행

가고시마 가을 바다, 한 접시

2025 생일맞이 가고시마 여행 #6 - 선두요리 우오쇼

by zzoos




가고시마 츄오역 앞의 우오쇼




가고시마에 도착한 첫날 저녁. 과연 어떤 곳에서 어떤 음식을 먹으면 좋을지 고민을 해봤습니다. 아무래도 가고시마에 온 이유는 쿠로부타(가고시마 흑돼지) 샤부샤부를 먹기 위함이죠. 헌데 지금은 가을, 생선들에 기름이 올라오는 시기입니다. 가고시마는 소, 돼지, 닭 등의 육류도 싸고 맛있지만 해산물도 풍부하고 신선한 곳이잖아요. 그동안의 가고시마 여행에서 이상하게 생선을 별로 먹지 않았어요.


그래! 오늘은 생선요리다!




선두요리란 배에서 선장이 직접 요리해 주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낚싯배나 관광선을 운항한다는 안내도 붙어 있다.




타베로그와 구글맵을 검색했습니다. 챗 GPT의 도움도 받았어요. 그렇게 세 군데 정도의 가게를 골라냈습니다. 낚싯배를 운항하면서 직접 잡은 생선을 요리하는 곳들을 위주로 골라냈습니다. 그래야 제철의 신선한 생선들을 먹을 수 있을 테니까요.




활어 사시미 전문, 활고등어, 광어, 자바리, 이세에비, 자연산 도미, 제철 아키타로




그중 한 곳에 방문했습니다. 예약을 하지 않고 문을 열었는데, 다행히 한 자리가 딱 남아 있었습니다. 럭키!


센도료리 우오쇼(船頭料理 魚庄). 선두(船頭)는 일본어로 선장을 뜻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선두요리(船頭料理)라고 하면 직접 낚싯배로 잡아온 생선을 요리하는 것을 말한다고 해요.




사진에 보이는 것 말고도 테이블과 룸이 여러 개 있다.


쇼츄 아사히(朝日)와 오토시




일단 자리에 앉아 소다와리로 마실 쇼츄를 추천해 달라고 했습니다. 점원 아주머니의 추천은 아사히(朝日)였어요. 깔끔한데 어딘지 모르게 찌릿! 하는 맛이 납니다. 독특하네요. 아, 그리고 소다와리를 주문했는데도 쇼츄는 로꾸로 나옵니다. 그리고 윌킨슨 탄산수를 한 병 주시네요. 직접 만들어 먹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토시로 나온 세 개의 요리도 다 맛있었습니다. 뭔지 모르겠지만 향이 아주 강한 채소가 들어 있던 사라다, 모즈쿠와 고야, 버섯과 한펜 조림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오토시가 맛있으면 요리를 잘하는 가게라서 기대가 커지죠.




특선 모리아와세 1인분. 와사비는 직접 갈아서.




생선을 먹으러 왔으니까 사시미를 주문합니다. 특선 모리아와세 1인분. 아키타로(돛새치), 마다이(참돔), 타카에비, 미즈이까(무늬오징어), 가츠오(가다랑어), 아와비(전복), 사바(고등어). 모두 가고시마에서 잡은 신선한 제철 생선들입니다.


아키타로(秋太郎)는 메카지키(メカジキ)의 가고시마의 방언인데요. 제철이라 기름이 한껏 올라오는 돛새치를 말합니다. 가을이 제철이라 이름에 아키(秋)가 들어가는군요. 사진에서는 마치 연어처럼 보이지만 아니에요. 참치 뱃살처럼 살살 녹습니다. 이름도 귀엽죠. 아키타로.


타카에비(高エビ)는 우리나라에서 잡히지 않는 새우 종류라 번역하기가 힘드네요. 역시 가을이 제철인 심해의 새우라고 합니다. 탱글하고 달달한 맛이 좋더군요.




가고시마의 가을 바다 한 접시




그 외에도 가츠오(カツオ), 사바(サバ) 모두 가고시마에서 유명한 생선입니다. 가고시마현의 마쿠라자키(枕崎)는 일본 내 가츠오 생산량 1위라고 해요. 미스터 초밥왕에서 '목 꺾은 고등어(首折さば)'라는 게 나오는데, 잡자마자 목을 꺾어서 피를 빼는 바로 가고시마의 특산 고등어를 말하는 거죠.


말 그대로 접시 위에 가고시마의 가을 바다가 담겨있네요.




무라오가 이렇게나 많이?


가게 곳곳에 무라오 잇쇼빙을 키핑하고 있다.




가고시마의 가을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면서 주변을 둘러보니, 어라? 여기저기에 무라오(村尾)의 잇쇼빙이 가득합니다. 병마다 목에 태그들이 달린 걸 보면 분명히 손님들이 키핑 해둔 병들입니다. 이 가게는 무라오 잇쇼빙에 뭔가 특별한 게 있나? 궁금해져서 다시 메뉴판을 들여다봤더니...




쇼츄 메뉴판. 무라오가 엄청 싸다!




아하! 무라오가 엄청 저렴합니다. 한 잔에 600엔, 잇쇼빙에 8500엔입니다. 이 정도면 저도 한 병 키핑해두고 싶을 지경이네요. (하지만 혼자서 4개월 만에 잇쇼빙을 다 먹을 만큼 가고시마에 갈 수 있을지...) 그렇다면 이 가게에서는 무라오를 마시는 게 이득이네요. 과감하게 2홉짜리로 주문했습니다. 2홉이래 봐야 뭐 서너 잔 정도 되지 않겠어요? 그 정도야 어차피 더 마실테니, 기왕이면 무라오로 저렴하게 마시죠 뭐!




2홉짜리 무라오는 마셔도 마셔도 줄지 않는다.




음, 막상 나온 2홉짜리 무라오는 꽤나 양이 많았습니다. 마셔도 마셔도 줄지 않았어요. 그렇게 오늘의 과음이 시작됐습니다.


참고로 무라오는 모리이조(森伊蔵), 마오(魔王)와 함께 최고의 쇼츄 3병 중 하나입니다. 별칭으로 3M이라고 하죠. 세 종류 모두 M으로 시작하는 이름이라 그렇습니다. 프리미엄 쇼츄라서 대부분의 가게에서 1,000엔 이상을 받는 비싼 쇼츄예요. 그것도 가고시마에서나 그렇죠. 후쿠오카에 가면 조금 더 비싸지고, 도쿄에서는 굉장히 비싼 술이 됩니다.


그걸 이 가게에서 너무나 저렴하게 파니까, 욕심 내다가 그만...




바이가이(バイガイ)




슬슬 안주가 더 필요해져서 다른 음식도 주문해 봅니다. 토리아에즈 바이가이(バイガイ). 메뉴명이 특이하지만, 사실 이자카야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명명법입니다. '토리아에즈' = '일단, 우선' 뭐 이런 뜻이거든요. 그러니까 다른 거 살펴보기 전에 일단 이거부터 주세요. 하는 뭐 그런 이름입니다. 아, 바이가이는 가고시마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골뱅이 종류입니다. 양념에 짭조름하게 조린 안주라서 가볍게 먹기 좋죠.




등 푸른 생선의 정수! 이와시(イワシ)




다찌 위에 종이로 적어둔 메뉴가 보이길래 '아, 이건 오늘 신선하게 들어온 생선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하나 주문했습니다. 이와시(イワシ). 정어리입니다. 작은 정어리를 정성 들여 포를 떴습니다. 기름이 아주 좔좔 흐르네요. 고소한 기름과 정어리의 풍미가 신선한 별미였습니다. 이게 바로 등 푸른 생선의 정수다! 하는 느낌.




츠리 아라카부 가라아게(釣りアラカブの唐揚げ)




마지막으로 생선 튀김을 하나 먹어볼까? 싶어서 주문한 츠리 아라카부 가라아게(釣りアラカブの唐揚げ)입니다. 아라카부는 가고시마 방언으로 카사고(カサゴ)를 말하는데요. 우리말로 하면 쏨뱅이입니다. 그러니까 '낚시로 잡은 쏨뱅이 튀김'이라는 얘기죠.


솔직히 말하자면 비싸고, 작고, 생선 맛은 안 나는데, 튀김이라 맛있는, 그런 요리였습니다. 크기가 너무 작다 보니 쏨뱅이의 맛을 제대로 느끼기는 힘들었지만, 뼈까지 씹어 먹을 수 있게 튀겼기 때문에 바삭바삭하게 씹어 먹는 것이 맛있었어요. 낚시로 잡았으니 비쌀 수밖에 없었겠지만요.


여기까지 먹고, 마시고 일어섰습니다. 무라오를 정말 원 없이 마셨네요.


자, 이제 2차 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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