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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행

한적한 주택가, 잔잔한 커피 한 잔

2025 생일맞이 가고시마 여행 #22 - &COFFEE

by zzoos




생각보다 일본에는 카페가 많지 않습니다. '다리 아픈데 어딘가 카페에서 쉬었다 가야지'라는 생각을 하고서 한 시간 이상 걸었던 적이 많아요. 우리나라에서는 걷다가 잠깐 멈춰 서서 주위를 둘러보면 카페가 두세 개 보이곤 하잖아요? 음, 그러면 우리나라에 카페가 많은 걸까요? ... 어쨌든 일본 여행에서 카페에 들르려면 미리미리 지도를 체크해놔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 오는 주택가, 작은 카페




그리고 의외로 에스프레소를 내리는 집이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카페는 핸드 드립이에요. 그래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보기 어렵고 '아이스커피'를 만나기가 더 쉽죠. 그건 저에게 다행입니다. 저는 에스프레소를 잘 마시지 않고 핸드 드립을 좋아하거든요. 그러다 보니 일본 여행에서 가끔 마시는 커피는 제 취향을 저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가 오는 날이었습니다. 한적한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다가 다리가 좀 아팠어요. 위에서 얘기한 '다리 아프니까 어딘가에서 쉬었다 가야겠다'는 바로 그런 생각이 들었죠. 그냥 걷다가 만나는 카페에 들어가서 쉬어야겠다는 건 너무 위험한 생각이란 걸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구글맵을 켰습니다. 띄엄띄엄 카페들이 있더군요. 그중 가까운 곳 하나를 찍어서 위치로 갔는데, 어라? 카페가 없습니다. 지도를 잘못 본 건지 한참을 둘러보았지만, 카페는 보이지 않았어요.




미디엄 로스팅의 온두라스




다시 구글맵을 켜고 그다음 카페를 검색했습니다. 바로 옆 골목에 하나 있더군요. 찾아갔더니, 아뿔싸, 오늘이 휴일이네요. 그래서 세 번째로 검색한 카페. 그곳이 바로 &COFFEE 입니다.


메뉴판을 보니 원두 이름 옆에 어느 정도의 로스팅인지 적혀 있더군요. 에티오피아 커피를 마시려고 했는데 다크 로스팅이라고 쓰여 있길래 미디엄 로스팅이라고 적힌 온두라스를 주문했습니다. 아마도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신맛이 강한 커피는 강하게 로스팅하고 신맛이 적은 커피는 약하게 로스팅한 게 아닐까? 라고, 커피 문외한이지만 예상해 보았습니다.




잔잔하고 따뜻한 느낌의 실내




마스터가 정성껏 내린 커피는 상상했던 맛과 비슷했고, 훨씬 좋았습니다. 남미 원두 특유의 고소함과 찝찔함이 있는데, 로스팅이 약해서 그런지 산미도 적당하게 느껴졌어요. 마시기에 편했습니다. 잘 내린 커피였어요.


커피를 마시면서 밀린 작업을 좀 진행했습니다. 열심히(?) 블로깅을 하는 사람은 여행 중에도 해야 하는 작업들이 있습니다.




흔해 보이지 않는 커다란 스피커




작업을 모두 끝내고 나서야 여유를 가지고 가게 안을 좀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 크지 않은 가게였지만 조용한 분위기가 좋은 곳이었어요. 주택가 안에 있어서 손님이 있을까? 싶었지만 제가 작업하는 동안 원두를 사가는 손님도 있었고, 커피를 마시고 가는 손님도 있었습니다. 벽에 걸린 커다란 스피커는 흔하게 보지 못하는 모델인 것 같았는데, 꽤 좋은 소리를 들려줍니다.




그리 크지 않지만 잔잔하고 따뜻했던, &COFFEE




작업에 집중하느라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던, 이곳의 잔잔한 분위기가 이제야 느껴집니다. 커피는 이미 식어버렸지만 잘 내린 커피는 여전히 맛있습니다. 비가 와서 그런가? 기분까지도 차분해집니다. 이번 여행 중 가장 느긋한 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망중한(忙中閑)이 아니라 한중한(閑中閑)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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