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과 관계
코로나로 집에만 있는 시간이 길어지게 되면서, 반려 식물들을 들여다 볼 시간도 많아졌다. 그동안 바쁘게 달리면서 그들을 잊은게 죄책감이 들어서였을까, 오랫동안 미뤄왔던 분갈이도 해주고 남향 창문으로 드는 봄볕에 일광욕을 시켜주기도 했다.
그러나 왠지, 오히려 예전보다 식물들이 덜 행복해 하는 것 같았다. 몇몇 아이들은 오히려 더 시들시들 해졌고 급기야 잎이 갈색으로 변하기까지 했다. 나는 다급한 마음이 들었다. 시든 잎을 볼 때마다 모든 것이 내 잘못인 것 같았고, 내가 잘못할 수 있는 게 수만가지인 기분이 들었다.
일단 산책을 나가 다급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집으로 돌아와 내 반려식물 이름 하나 하나 검색을 시작했다. 몬스테라, 마란타, 싱고니움, 아비스, 유카, 용혈수... 그러고 나서야 내 반려식물들이 얼마나 각각 다른 것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인지 깨닫게 되었다. 식물이라면 무조건 쨍쨍한 햇볕을 좋아하고 겉흙이 마르면 물을 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데리고 있는 아이들 대부분이 남향의 직사광선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들이고 흙이 얼마나 마르는 걸 좋아하는지도 제각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내 반려 식물로부터 관계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운다. 식물마다 원하는 것이 다르듯, 사람마다 원하는 종류의 사랑이 다르다. 마란타는 물과 비료를 자주 주는 것을 좋아한다. 반면 유카는 적절한 무관심 속의 자유를 가장 좋아한다. 몬스테라는 다른 식물들과의 사이에 적절한 거리가 있는 걸 좋아한다. 관계의 반대편에서 우리가 해야할 일은 '내가 이렇게 하면 좋아하겠지'라는 막연한 짐작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너는 어떻게 사랑 받는 것을 가장 좋아하니?'라고 물어보고 경청하는 것이다.
물론 그 대화가 항상 언어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때론 경청이란 흙이 얼마나 말랐는지를 손으로 느껴보고, 잎이 얼마나 힘을 잃어가는지 세심하게 관찰하는 일이다. 추측하지 않고 관조하는 것, 그것이 관계의 힘이 될 때도 있다.
마란타, 몬스테라, 그리고 싱고니움이 좋아하는 유기농 비료를 주문했다. 이제 아이들이 뭘 원하고 싫어하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았으니 우리 관계는 한 발짝 더 나아갔다고 봐도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