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랜스 Aug 04. 2020

체코에서 외국인으로 산다는 것

두근두근하면서도 외로운, 유럽살이의 시작

#2. Dobry den, Praha! (도브리덴, 프라하!)


사람들로 북적북적한 인천공항과 달리 약간은 소박하면서도 조용한 프라하의 하벨 공항은 여전했다.


"내가 결국, 정말로, 프라하에 다시 왔구나."


그토록 그리던 체코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나는 설렘으로 마음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저기 발 끝부터 머리 끝까지 희열의 전율과 뜨거움이 돌아다녔다.

오랫동안 마음에 담았던 목표를 성취하는 느낌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


천천히, 캐리어를 밀어 공항을 빠져나왔다.

내가 체코에서 가장 좋았던 점이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천천히, 하지만 할 것은 하는 그런 모습

빨리빨리를 너무나 강조하는 세상에서 살아왔던 나에게 이 느림의 미학을 가진 이 도시는 마음의 평화를 주기 충분한 곳이었다.


@해질녘의 바츨라프 광장





외국인으로 유럽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프라하에 무사히 도착한 것은 첫 번째, 다음은 1년을 살아가기 위한 기초적인 준비들이 필요했다.

집도 구하고, 휴대폰도 개통해야 하고, 외국인 경찰서에 신고도 해야 하며, 장기 교통카드도 발급받아야 했다.

무엇보다도 기본적인 생필품들을 챙겨야 했다.


한국에서부터 차분히 해야 할 일들과 해결방법들을 미리 작성해왔지만, 실제로 해보고자 하니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들이 하나씩 생겼다.


일단 체코는 '체코어'라는 자국어가 있다. 유럽에서 2번째로 어렵다는 체코어. 하지만 분명히 체코는 '영어'가 가능한 사람들이 많다고 봤기에 걱정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여행의 이야기 일 때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지, 생활과는 조금은 달랐다.


관광지, 쇼핑센터와 같은 곳들은 다양한 관광객들을 응대하기 때문에 영어로 대화가 가능하지만, 관공서나 지역 마트, 정육점과 같은 곳들은 체코 현지인들이 살아가는 곳이라 영어를 못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영어마저 소통이 안 되는 상황에서 손발 몸짓 랭귀지를 다 활용해가며 대화를 하면서 어려움을 이겨나가야 했다.


숙소에 짐을 풀고 가장 먼저 한 일은 환전과 휴대폰 개통

환전은 솔직히 대화할 것도 없이 모니터의 오늘 환율 확인하고, 유로를 내밀고, 계산기로 코루나 환전금액 보여주고 현금받으면 끝!


하지만 휴대폰은, 확인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자신 있게 체코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다는 보다폰에 가서 선불 유심을 달라고 했다.



"Hello, I want to buy prepaid sim-card." (안녕, 나는 선불 유심 카드를 사고 싶어.)
"Okay, How long will you live here?" (여기에 얼마나 살 예정이야?)
"Maybe, a year. but I will travel around Europe." (아마 1년, 그런데 유럽을 돌아다닐 계획이야.)
"Oh, well, I recommend a flat-rate product. It's a monthly discount plan with a deposit." (음 그러면 정액제 상품을 추천해줄게. 보증금을 내고 월마다 약간씩 할인받을 수 있는 요금제야.)
"hmm, I don't need to discount. I just want to buy prepaid card" (할인되는 건 괜찮아, 난 그냥 선불 유심을 살게.)
"Okay, then check this sheet." (알았어 그럼 이 시트를 확인해봐.)


@보다폰 선불 유심 가격 / 종류와 기간 만료일에 대해 주의하고 구매해야 한다.


직원이 보여준 시트안에는 다양한 종류의 심카드와 가격대가 있었다.

조금 복잡했지만 데이터만 사용할 수 있는 종류, 전화와 문자 무제한, 그 외 sns 사용에 맞춘 요금제가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렇게 많은 데이터가 필요한 것도 아니었고, 당장 현지에서 전화할 일도 별로 없어서 데이터만 필요했으나, 데이터 4GB 구매할 금액에 5천 원만 보태면 5GB에 무제한 통화, 문자를 사용할 수 있어서 그걸로 결제를 했다.

당연히 모두 한 달 기준으로 사용할 수 있을 줄 알았고, 직원에게  한 번 더 확인했다.


"Can I use this during 30 days? right?" (30일 동안 사용할 수 있는 거 맞지?)
"Yes. day 30" (응, 30일 까지)



이 대화 속에서 나는 당연히 30일 동안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21일에 구매했던 내 유심은 다음 달 1일이 되자 리셋이 되어버렸다.


생각을 되돌려보니, 나는 30일 동안 사용 가능하냐고 물었지만 직원은 30일까지 사용이 가능하다고 대답을 했던 것이다. 서로 영어가 미숙했고, 다른 당연한 생각을 하고 있어서 그랬던 것 같았다.

나는 9일 만에 다시 유심을 충전해야 했고, 잘못된 의사소통의 오류를 극복하기 위해 어플을 깔아 체코어를 번역하여 스스로 요금제를 선택해서 충전을 했다. (IT 시대에서는 어플로 안 되는 것이 없다.)


외국인으로서 해외에 살다 보면 이런 일들은 많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과 앞으로는 제대로 된 의사소통을 해야겠다는 교훈 2가지를 가지게 되었다.





조금은 외로운 마음

집 구하기 전까지 한인민박 숙소 생활



프라하에 도착하고 나서 바로 집을 구할 수가 없어서 일단은 한인민박에서 단기로 지내면서 집을 알아보기로 했다.

내가 체코에 도착한 1월은 동절기라 생각보다 손님이 없었다.

다인실 도미토리에 나 혼자 방을 쓰게 되었다.

내심 다른 여행자들과 대화하며 지내는 일상을 생각했는데, 혼자 쓰게 되니 좋으면서도 뭔가 아쉬웠다.


@바츨라프 광장 근처의 한인민박


이 숙소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은 창문이었는데, 트램이 지나가는 길 옆이라 내려다보면 꽤나 운치가 있었지만, 24시간 운행되는 트램 탓에 소음 때문에 종종 새벽녘에 깨곤 했다.

그렇게 깬 새벽이면 밤의 프라하 풍경을 창문 밖으로 보곤 했는데, 누군가와 함께 온 여행이 아니라 오롯이 혼자 떠나 온 여정임이 생각나면서 약간은 외로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내가 머무르는 동안에는 민박의 스탭 분도 잠시 휴가를 떠난 상태라 한 달 살기 중인 여행객 한 분과 나와 같은 날부터 근무하게 된 동료 한 분이 전부였다.


겨울에 멀리 떠나온 터라 몸이 허해졌는지 마른기침을 하고 있었는데, 옆 방의 장기 체류 중인 여행객 손님이 노크를 하며 들어왔다.

자신이 감기에 걸렸는데, 혹시 자신 때문에 내가 기침을 하는 게 아닌가 걱정되었다며 따뜻한 유자차 한 잔을 주었다.


낯선 타지에서 받은 예상치 못한 정이 담긴 호의는 아주 작은 것이라도 사람의 외로운 마음을 녹여줄 수 있었다.

외로울 것만 같아 걱정되었던 유럽 워홀의 시작은 유자차 한 잔에 따뜻하게 데워졌고, 며칠 뒤 집을 구하게 된 이후부터 외로움은 아주 먼 나라 이야기가 되었다.





유럽의 다이소 같은 곳,

타이거에서 생필품 장보기


한국에서도 이사하거나 기본적인 생필품이 필요하면 다이소를 가는 것처럼 여기서도 가는 곳이 있다. 바로 타이거


@플라잉 타이거 in prague.


파티용품 판매점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일상적인 생필품들도 많이 있어서 현지인들도 여행객들도 많이 가는 곳이다.

물론 다이소처럼 종류가 많지도 않고,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다이소는 5천 원이 고가에 속하는 편인데, 여기는 500원에서 5만 원까지 다양한 가격대로 판매한다.)


한국에서도 다이소에 한 번 들어가면 잘 나오지 않는 나이기에 타이거는 매우 반가운 장소였다.

눈이 돌아가게 예쁜 문구부터, 컵, 장난감, 우산 등 사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지만 당장 필요한 컵과 필기구만 사서 나왔다.


바츨라프 광장과 쇼핑센터마다 있어서 기분이 우울하거나, 혹은 시간이 남는 날이면 그냥 구경하러도 종종 가곤 했는데, 프라하에 살면서 주방기구, 문구용품, 취미생활 관련된 것들은 이 곳에서 대부분 해결할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키치한 유리컵들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들이 생각나는 초대형 슬라임 (보고있나, 포뇨&우동)




"Are you Korean?

반캅습니다. 나는 체코쏴람입니다."


체코에서의 현지 회사 첫 출근 앞두고, 회사 대표님과 같은 출근하는 동기와 함께 식사를 했다.

체코에 왔으면 꼭 먹어봐야 할 꼴레뇨, 이전에 여행 때 딱 한 번 밖에 먹어보지 못해 다시 한번 꼭 먹고 싶다고 생각하던 찰나에 현지에 오래 계셨던 대표님께서 유명한 맛집을 데려가 주었다.



많이 유명한 곳이서 그런지 한국어로 된 메뉴판도 준비되어 있었고, 한국어를 구사하는 외국인들도 종종 있었다.

이전에 프라하에 왔을 때는 사실 이렇게 체코와 한국이 친밀하다고 느끼진 못했었는데, 시간이 지나 한국인 관광객들이 많아져서인지 제법 곳곳에 한국st 느낌이 보였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방탄소년단 때문에 한국어를 배우려고 한 청년들이 많았다고 했다... 역시 BTS..!)


"한쿡 쏴람?"

어눌한 한국어로 우리가 한국인임을 확인하며 한국어 메뉴판을 건네주는 웨이터는 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며 이것저것 아는 말로 인사를 해주었다.


"나는 체코쏴람이예요. 나 한국 좋아해. 한국 사랑해."

당연히 이국인에게 듣는 우리말은 놀랍고, 신선했으며 반가웠다.

동시에 "아, 이곳에서의 삶이 그렇게 불안하지만은 않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낯선 땅에서, 낯선 이로부터 듣는 우리말의 인사가 나를 안심시켰다.



체코에서 외국인으로 산다는 것은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그와 동시에 많은 일들을 경험할 수 있었다.

현지에서 몇 년이상 거주했던 사람들도 항상 시행착오를 거치며 살아가고 있었다.

체코에 온 지 일주일 차가 걱정하기엔 시간이 아까웠다.

그저 반가운 마음만 가지고 잘 헤쳐나가기를 생각하고, 고민하던 1월

그렇게 체코와 만났고, 체코 주민이 되어 첫 출근을 준비했다.


체코와의 반가운 인사는 여기까지, 내일부터 체코 로동자!



    

매거진의 이전글 유효기간 1년짜리 유러피언이 되어보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